지난 5일부터 10일까지 프랑스 루르드에서 열린 프랑스 가톨릭주교회의 춘계총회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는 올해 중순까지 전 세계 가톨릭교회를 뒤흔들었던 ‘성직자 성범죄 문제의 해결’이었다.
리옹 교구의 한 사제가 수십 명의 아동을 20년간 성추행한 일명 ‘프레나 사건’으로 인해, 리옹대교구장인 필리프 바르바랭(Philippe Barbarin) 추기경이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를 선고받는 일까지 벌어진 프랑스 가톨릭교회는 큰 혼란 속에 빠져 있었다.
독립조사기관 설립해 객관적 실태 파악
프랑스 주교회의는 지난해 11월 8일 교회 성범죄 독립과거진상조사위원회(La Commission indépendante d'enquête sur les abus sexuels dans l'Église, 이하 과거진상조사위)를 설립하고 이들에게 1950년부터 현재까지 가톨릭교회에서 벌어진 성범죄 실태 파악 업무를 일임했다.
과거진상조사위는 7일(현지시간) 첫 중간보고서를 프랑스 주교회의 춘계총회에서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6월 3일부터 현재까지 5달 만에 2,500명의 성직자 또는 수도자에 의한 성범죄 피해가 신고 됐다. 과거진상조사위 측은 신고가 더 들어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피해자의 성별은 61%가 남성, 39%가 여성이었다. 피해자 85%가 현재 50세 이상인 것으로 집계되었으며, 피해자의 87%는 당시 미성년자였다.
피해가 발생한 장소 유형으로는 학교(36%), 교리실 또는 사제관(21%), 청년모임 또는 운동 (11%) 등이 있었으며 사제 본인 또는 피해아동 부모의 집도 포함되어 있었다. 피해사실이 발생한 지역은 대체로 가톨릭의 색채가 강한 프랑스 북부의 브르타뉴 지방과 루아르 지방들이었다.
가해자의 성별은 98%가 남성이었으며, 그 중 사제가 70%, 남성 수도자가 30%를 차지했다.
하지만 2,800건 피해 신고 중 12%만이 사법기관에 이러한 사실을 신고한 것으로 조사됐다.
과거진상조사위는 이외에도 각 교구와 수도회에 설문지를 보내 지금까지 어떻게 교회 구성원에 의한 성범죄를 처리해왔는지를 조사했다.
이에 대해 장 마크 소베 과거진상조사위 의장은 “어떤 가해자들의 경우에는 자료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이는 주교가 아예 보고를 받지 못했거나, 해당 사제를 전출시키는데 만족하여 옛날식으로 일을 처리하거나, 또는 신고는 되었으나 교회법에 따라 사제의 관련 자료가 해당 사제 사망 이후 10년 뒤에 폐기된 경우였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피해자들이 거주하고 있는 각 현장으로 가서 피해자들과 청중들의 반응을 직접 듣는 공청회 형식의 ‘투르 드 프랑스’를 기획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교회의 태만’을 인정하는 약정금, 그러나…
이와 동시에 프랑스 주교회의는 춘계총회에서 모든 성직자 성범죄 피해자들에게 피해 정도와 관계없이 피해자 지원의 일환으로 일정의 약정금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법적인 보상이나 배상과는 별도로 "단일하고 약정된 금액의 재정지원"이라며 이것이 “고통의 원인을 인정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프랑스 주교회의 의장 에릭 드 물랭 보포르(Éric de Moulins-Beaufort) 대주교는 피해자들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다”며 “주교들은 성범죄 피해자일 뿐만 아니라 교회의 침묵, 교회의 무시, 교회의 무관심, 교회의 무반응 또는 교회의 잘못된 결정이나 결함의 피해자임을 인정한다는 사실을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싶어한다”고 강조했다.
물랭 보포르 대주교는 춘계총회 폐막연설에서도 “피해자들은 자신들의 고통에 대한 동정이나 보상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원한다는 것을 이해했다”며 “피해자들은 고통 받아왔고, 지금도 그러한 행위로 인해 고통 받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교계 차원의, 교회 당국의 침묵과 몰지각, 의도적이기도 했던 외면에 고통 받고 있다”고 고백했다.
물랭 보포르 대주교는 이 약정금의 성격을 두고 “이는 프랑스 사법체계 또는 교회법과 연관된 보상이나 배상이 아니다”라면서 프랑스 법적으로 공소시효가 지난 성범죄 피해자들이나 판결을 받은 피해자들에게 지급되는 약정금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러한 성직자 성범죄 피해자들에게 지불하는 ‘약정금’에 관해 피해자와 피해자 단체에서는 프랑스 주교들이 지금까지 벌어진 일에 대한 자신들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춘계총회 결과를 전해들은 프랑스 성직자 성범죄 ‘프레나 사건’의 피해자이자 프랑스 성직자 성범죄 피해단체 ‘파롤 리베레’ 대표 프랑수아 드보(François Devaux)는 “(그러한 조치에) 경악했다”며 “여전히 주교들은 상처의 정도를 헤아리지 못하고 교회 전체의 책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