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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부활하는 소년을 기다리며
  • 7지구 청년연합회
  • 등록 2019-11-13 18: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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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천주교 서울대교구 7지구 청년연합회 공모전 수상작품이다. 7지구 청년연합회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집회와 세월호 월례미사에 참여하고 가톨릭 사회교리 모임을 꾸리는 등 천주교회의 사회참여를 모색하는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 편집자 주



내가 대학에 입학하던 95년에는 80년 광주, 5․18 책임자처벌 공소시효가 만료되는 해였다. 대학입학 전까지 천진난만, 아무것도 몰랐던 철부지 꼬맹이는 대학에 입학한 후 선배들의 ‘5․18 책임자 처벌’ 외침 속에 실재했던 그 역사가 불과 15년 전에 일어났던 일이었음을 믿을 수가 없었다. 광주에서 일어났던 학살의 현장은 무시무시한 한편의 전쟁 공포물이었고, 그런 상황에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며 힘을 돋우고 협력하는 광주시민들의 모습은 현실에서는 절대 존재하기 어려운 거룩함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것이 100년 전, 50년 전도 아닌 불과 15년 전에 일어난 ‘실재’라니.


『소년이 온다』 

그리 두껍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에 읽어내기 어려웠다. 무자비한 폭력,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총소리, 그 속에서 비참하게 학살당하던 무수한 사람들의 모습을 여실히 드러낸 5.18을 다룬 그 어떤 영화보다 더 힘든 책이었다. 


지극히 평범한 도시 광주에 왜 갑자기 군대가 들어섰고, 왜 총구가 시민들을 향했는지, 왜 그 무수한 사람들이 죽어가야 했는지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이유 없이 피 흘리며 다치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으니 함께 손을 잡았고 항거했을 뿐이다. 죽어서도 내가 왜 죽어야했는지 모르는 죽음, 영혼이 되어 나의 육신을 바라보지마는 정말 모르겠다. 내 죽음의 이유를…


내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죽어간 사람들의 마지막을 최소한의 예의를 차려 시신이라도 수습하는 것. 하지만 왜 우리가 이곳에서 이유 없이 죽어간 시신들을 챙기고 있어야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사람들이 죽었고 죽어가는 수가 너무나 많았고, 하여 지금 해야 할 일은 아니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었기에. 


죽음을 뻔히 알면서도 마지막을 지킨 사람들이 있다. 예상대로 많은 이들은 죽음을 맞았고, 무수한 총알세례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는 채 비참하게 끌려가 수치스러운 고문을 당했다. 그리고 살아남은 것이 죄가 되어 남은 인생을 내내 죽음보다 더한 고통 속에서 버텨야만했다. 


이런 사실을 알리려던 사람들은 그 자체가 죄가 되어 검열, 감시를 당했다. 무수한 사람들이 죄 없는 죄인이 되었던 80년 광주와 그 이후의 시간들. 


일상에서 내게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해 살았던 사람들, 소위 착한 마음씨를 가진 사람들이 더 빨리 죽음을 맞았고, 끌려가 고문을 당했고, 살아남은 것을 자책했다. 의문투성이다. 80년 광주에서 왜 그런 일이 있어났고, 왜 많은 선량한 이들이 죽어가야만 했는지.


하느님이 현존한다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도록 내버려 두시는지. 원망스럽고 하느님이란 존재가 과연 있기나 한 것일까 의구심마저 들었다.


그러다 문득 2년 전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각났다. 


할머니는 살아계시는 동안 어른스럽지 못한 언행으로 줄곧 자식들 사이를 이간질했다. 언젠가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할머니 때문에 벌어진 아버지 형제들의 간극과 종교 간의 문제로 얼마나 큰 분란이 일어날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헌데, 돌아가시기 몇 달 전 할머니는 이미 당신은 하느님 품에 들어갔으니 생명이 다하면 형식적인 절차는 불교신자인 큰형님 말에 따르고 모든 것을 다툼 없이 진행하길 바란다는 말씀을 목사삼촌께 하셨고, 그 덕분인지 장례는 너무나 순조로이 진행되었다. 할머니 마지막 가시는 길 또한 그랬다. 주무시는 잠에 평화로이……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면서 생각했던 짧은 단상 하나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 일 테지만) 인간과 하느님의 시각이 절대 같지 않다는 것이었다. 하느님의 섭리를 인간의 시각으로 해석하거나 재단할 수 없다는 것.


인간의 역사로 보면 80년 광주항쟁은 민주화의 시발점이자 도화선이 된 사건이다. 많은 사람들을 분노케 했고, 억압당하고 인권이 유린당하는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의식이 성장하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했던가. 그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80년 광주항쟁에 이어 87년 6월 항쟁이 그러했고 2014년 너무나 어이없게 많은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가 그러했다. 굵직한 사건 외에도 얼마나 많은 이들의 억울한 죽음과 희생이 있었는지, 지금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지 우리는 안다. 그리고 딱 그만큼 민주주의는 성장했다. 역으로 말하면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는 지난한 역사 속에서 죽어간 많은 이들이 흘린 피의 대가이다. 여기까지가 내가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는 ‘인간역사’이다. 그 이상에 있는 하느님의 섭리는 내가 감히 가늠할 수 없다. 때론 인간역사에 하느님의 적극적인 개입을 바랄 때가 있다. 억울한 죽음, 고통 받는 이들에게 적극적인 손을 내미시어 그들을 구원해주시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허나 이 바람 역시 한낱 좁디좁은 인간의 시선일 뿐임을 이내 알아차린다.


『소년이 온다』를 읽는 동안 가슴에 강하게 박힌 문장, 읽고 또 읽기를 반복케한 문장.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군인들이 쏘아 죽인 사람들의 시신을 리어카에 실어 앞세우고 수십만의 사람들과 함께 총구 앞에 섰던 날, 느닷없이 발견한 내 안의 깨끗한 무엇에 나는 놀랐습니다. 더 이상 두렵지 않다는 느낌,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 수십만 사람들의 피가 모여 거대한 혈관을 이룬 것 같았던 생생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그 혈관에 흐르며 고동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나는 느꼈습니다. 감히 내가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자신이 완전하게 깨끗하고 선한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이 얼마나 강렬한 것인지. 양심이라는 눈부시게 깨끗한 보석이 내 이마에 들어와 박힌 것 같은 순간의 광휘를.“


죽음을 각오하고라도 함께 하고자 마음먹을 수 있는 이유, 억울하게 죽어가는 이웃을 차마 못본 체 넘길 수 없어 함께 싸우고자 용기를 낼 수 있는 이유가 나는 ‘양심’이란 장치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인간역사에 하느님의 적극적인 개입이 있다면 다름 아닌 ‘양심’의 울림이 아닐까 생각한다. 인간 개개인에게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양심’이란 장치가 있기에 하느님이 만들어 내신 세상이 아직 존재하며, 앞으로도 존재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더불어 하느님이 인간에게 부여한 ‘자유의지’를 생각한다. ‘하느님께 받은 최고의 선물이다’고들 말하지만 나는 아직 이 말이 이해되기도 했다가 때론 이해되지 않기도 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무자비한 폭력, 억압을 만들어 내는 것도 인간이며, 그에 저항하고 바르게 고쳐 나가고자 의지를 내는 이 또한 인간이란 사실이다. 


다시금 지난한 역사를 떠올려본다. 그 속에서 죽어간 (그것도 억울하고 원통하게 죽어간) 이들을 그린다. 그들의 육신은 비록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그들이 만들어낸 순간순간의 역사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 삶의 모습에 고스란히 녹아나고 또 계속 이어질 것이다. 


지난 5월 무수한 인파가 광주 망월동 묘역에 모였다. 80년 광주를 생각하며, 그 이후에도 여러 가지 사건사고로 산화해 간 영혼들을 생각하며 참배하고 묵상했다. 그리고 기억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기를, 그 길에 미약한 힘이나마 보태며 살아가겠노라 마음속으로 다짐했으리라. 「기억하는 한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기억하는 한 그들의 죽음은 ‘사라짐’이 아닌 ‘부활’의 의미로 대대로 함께 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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