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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비극을 일으킨 사람들을 원망했습니다”
  • 7지구 청년연합회
  • 등록 2019-12-04 16: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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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천주교 서울대교구 7지구 청년연합회 공모전 수상작품이다. 7지구 청년연합회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수요집회와 세월호 월례미사에 참여하고 가톨릭 사회교리 모임을 꾸리는 등 천주교회의 사회참여를 모색하는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 편집자 주


신앙인으로 살아가면서 종종 참기 힘든 유혹과 시련을 마주하게 됩니다. 내 삶에 직접적으로 시련이 찾아오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은 주변에서,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마음 아픈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오히려 죄 많은 저에게 일어나는 일이라면 더 받아들이기 쉬웠을지 모르겠습니다. 시련 앞에 무너지는 순수하고 연약해 보이는 사람들을 바라보면 그 안에 함께하시는 주님을 찾기도, 이해하기도 너무나 힘이 듭니다. 저 시련도 과연 질 수 있는 십자가인지, 너무 가혹한 게 아닌지 되묻게 됩니다. 그 일이 정말 필요한 일인지, 꼭 그렇게 하셔야만 하는지 마음이 산란해지곤 합니다.


『소년이 온다』는 멀지 않은 과거에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고통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슬픈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동호를 비롯하여 그 사건을 겪은, 여전히 겪고 있는 사람들의 시선으로 때로는 순수하게, 때로는 덤덤하게 그때 있었던 일을 알려줍니다. 여전히 그 비극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의 삶과, 그들에게 이제 잊으라고 하는 현실을 그려냅니다. 상처 받은 사람들은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 채 오히려 상처에 소금을 뿌리고, 헤어 나올 수 없는 트라우마 속에 주변 사람들과 자기 자신에게 또 다른 상처를 입히며 살아갑니다. 너무 사랑스럽고 소중한 존재를 잃어버린 채 그 상실감과 분노를 어디에도 제대로 풀지 못하고 마음 아파하며 살아갑니다. 


▲ ⓒ 가톨릭프레스 자료 사진


“어떻게 벌써 분수가 나오나요”라고 묻는 이에게, 마음속에 소중하고 투명한 진짜 영혼을 가졌고, 그것이 부서져버린 이에게 주변 사람들은 이제 다 끝났으니 다시 그 이전으로 돌아가 멀쩡히 살아갈 것을 부탁하고 강요합니다. 어느새 그저 지나간, 나와는 거리가 먼 일인 것처럼 무심하게 그 일을 알고 있던 저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도 합니다. 


신앙인으로서 과연 이 비극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저는 바로 얼마 전까지,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용서할 수 없는 사람에 대한 미움 때문에 힘들어했고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을 향한 미움이 쌓이고 그 사람을 억지로, 성급하게 용서하려 하다 더욱 상처 받고 미움을 키우는 일을 되풀이했고 힘들어했습니다. 매주 미사를 봉헌하면서 주님의 기도를 봉헌할 때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라는 부분에 너무나 마음 아파했고 그렇기 때문에 작품 속 선주의 “난 아무것도 사하지 않고 사함 받지 않아”라는 말이 더욱 마음에 깊이 남았고 제가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저의 미움을 이겨내기 위해서, 제가 살아남기 위해서 읽고 많은 도움을 받은 송봉모 신부님의 『미움이 그친 바로 그 순간』이 떠올랐습니다. 그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과 용서하기 위해 해야 한다고 배운 방법을 적용하는 것이 맞다고 느꼈습니다.


가장 처음으로 해야 한다고 느낀 것은 원망이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이기 힘든 일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가장 먼저 마음속에 격렬하게 피어오르는 분노와 원망하는 마음을 해결해야 했습니다. 이런 비극을 일으킨 사람들만큼이나 전지전능하시고, 정의로우신 분이심에도 이런 비극을 겪게 내버려 두신 주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제가 아는 주님은 저 어리고 순수한 이들이 저렇게 고통 받도록 내버려 두실 분이 아니시라고 믿기 때문에 더욱 원망스러웠습니다. 분명 저희를 누구보다 사랑하시고 항상 함께하시는 분이신데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아는 주님이시라면 의인을 사랑으로 위로하시고 악인을 벌하셔야 하는데, 지금이라도 정의를 세우셔야 한다 생각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고 너무나 미웠기에 다른 생각을 하기보다 먼저 마음껏 주님을, 이런 비극을 일으킨 사람들을 원망했습니다.


원망하는 마음을 조금 풀고 나니 제가 잘못 생각한 것들을 하나씩 바꿀 수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절대 그들을 혼자 고통 받도록 내버려 두시지 않으셨을 것이고 그 고통의 순간을 함께하시면서 저보다, 어느 누구보다 마음 아파하시고 슬퍼하셨을 것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순간이 오기 전 기도하시면서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마태 26,39)”라고 하신 것처럼 이것이 정말 피해 갈 순 없는,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 시련을 통해 생겨난 슬픔과 분노뿐 아니라 그 시련을 통해 이루어지고 지켜진 소중한 민주주의와 그 가치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감히 연약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시련 안에서 무너졌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얼마나 강인하게 소중한 마음을 지켜내고자 했는지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고 너무나도 많이 들었기에 오히려 잊고 있었던 것을 다시 생각해낼 수 있었습니다. 시련 앞에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님 나라에서, 주님 품 안에서 진정한 안식을 얻고 행복할 수 있을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제가 너무 쉽게, 저의 방식으로, 제가 알고 있는 방식으로 시련을 바라보고, 끝내려 하고 너무 쉽게 시련의 당사자들에게 보상하고자 했다는 것을 반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것을 깨닫게 이끌어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신앙인으로 살아가면서 제가 배운 것은 어느 날 마법처럼 짠하고 모든 아픔과 상처와 미움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을 안고 견디고 살다 보면 괜찮아지고 살아갈 수 있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청하지 않아도 그 모든 순간을 함께하시면서 누구보다 더 아파하셨을 주님과 그분의 함께하심을 느끼고 계속 살아가게 하는 것이 바로 기적이고 그 기적이 제 안에서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힘든 시련으로 아파하는 사람들에게, 기적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일어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맞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조급해하지 않고 그들의 속도로, 주님의 속도로 충분히 기다려주고, 공감해주고 위로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저희의 힘만으로는 할 수 없기에 주님께 저희가 그렇게 그들을 사랑하고 도울 수 있게 청하고, 그들의 상처가 치유되길 청하는 것이 맞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이런 시련이 있었다는 것을 더 잘 기억하고 이를 잊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를 후대에 전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그것이 이 시련을 저희에게 주신, 함께하신 주님의 뜻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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