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성 요한 사제 학자 기념일 (12월 14일) : 집회48,1-4.9-11; 마태 17,10-13
오늘은 십자가의 성 요한 사제 학자 기념일입니다.
16세기 중반 그가 태어난 스페인은 전 지구에 걸쳐 세력을 넓힌 최초의 근대적 제국이었고 경제적으로나 종교적으로 황금기를 누렸습니다. 그 시기에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대항해 시대를 열고 대범선으로 대서양과 태평양을 누비며 남북 아메리카 대륙을 점령하여 식민지로 삼고, 인도의 고아와 중국의 마카오 그리고 필리핀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물자를 교역함으로써 동서양의 문물을 실어 나르는 번영을 구가했습니다. 아즈텍, 잉카, 마야 문명을 무너뜨리는 한편 식민지로 삼은 필리핀에도 가톨릭을 전파했습니다. 스페인과 포루투갈의 통합으로 이 제국은 16세기와 17세기에 걸쳐 세계 최강대국의 지위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로 오늘날에도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나라들은 23개국에 이르며 그 인구는 5억 명 가까이 됩니다.
하지만 양지를 비추는 빛이 짙을수록 음지의 그늘은 어두운 법이어서, 식민지 경영으로 인한 수탈과 막대한 은의 유입으로 그 당시 왕실과 귀족들은 어마어마한 부와 사치를 누릴 수 있었으나 식민모국의 백성들과 식민지의 백성들은 그만큼 비참한 가난에 허덕여야 했습니다. 최초의 근세인으로 평가받는 세르반테스가 풍자소설 ‘돈 키호테’를 쓴 것도 이 시기였습니다.
오늘 교회가 기억하는 요한은 제국의 풍요로움 속에서도 어린 시절 극심한 가난을 체험했습니다. 이 체험은 그가 가르멜 수도회에 입회하여 사제된 후 ‘아빌라의 성녀’로 알려진 데레사 수녀와 함께 가르멜 수도회의 개혁을 추진하는 가운데 원동력으로 작용하였습니다. ‘가르멜의 산길’, ‘영혼의 어두운 밤’, ‘영혼의 노래’ 등 그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시대적 상황과의 모순 속에서 식별해 낸 사색은 그를 교회의 위대한 신비가로 만들었고 그 작품들을 영성 신학의 고전으로 인정받게 만들었습니다.
자신의 체험을 영적으로 식별하는 그 과정이 그야말로 십자가 투성이의 길이었기에 ‘십자가의 요한’으로 불리었던 그는 한 마디로, 중세 스페인의 엘리야 예언자였습니다.
시대가 화려하면서도 내적으로 공허했기에 자신이 겪어야 했던 가난한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사색은 그만큼 깊어졌을 터입니다. 엘리야가 우상을 숭배하던 이방인 제국의 문물을 받아들여 번영을 구가하던 북이스라엘 왕국의 왕실 예언자들 450명과 가르멜 산에서 대결을 벌인 것처럼, 세속에 물든 채로 귀족 신분을 유지하며 수도생활을 하던 가르멜 수도자들을 개혁하려던 데레사와 요한도 30여 년 동안 영적 투쟁을 벌였습니다. 그 이후 예수님께서 오신 이스라엘에서도 세례자 요한이 당시의 부패한 이스라엘의 지도층과 백성을 상대로 세례 운동을 전개하며 영적 투쟁을 벌였습니다.
구약의 엘리야와 신약의 엘리야로 불리운 요한의 영성이 스페인의 엘리야로 부를만한 요한과 데레사에 의해서 가르멜 영성으로 집약되었습니다. ‘가르멜’이라는 이름도 그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주어진 체험을 하느님께 대한 신앙으로 식별하여 처음 한 번 거르고, 다시 교회가 전해준 신앙의 해석으로 다시 또 한 번 걸른 다음에, 몸소 자신이 삶에서 실천함으로써 그 식별된 깨달음을 정화시키는 사색이 가르멜 영성입니다. 이 마지막의 정화 과정에서 자신이 겪게 되는 십자가는 체험을 영성으로 승화시키는 데 필수적인 요소가 됩니다.
가르멜 영성의 이 3단계 식별과정은 근세 이후 가톨릭교회가 벌어져가기만 하던 빈부격차 속에서 갈수록 세속화되어 하느님을 잊어버려 가던 세상을 향하여 가톨릭 사회교리를 반포하게 된 영성적 원리와 상통하는 바가 있습니다.
사회 현실을 바라보되 가능한 한 객관적 사실을 토대로 그러나 하느님의 눈으로 관찰하는 것이 그 첫 단계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 긍정적인 진보이고 무엇이 부정적인 퇴보인가를 사색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관찰된 선과 악 가운데에서 악을 물리칠 수 있는 선의 조건이 무엇인지를 교회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그 두 번째 단계입니다. 무릇 모든 악은 개별적이든 구조적이든 선의 결핍에서 생겨났다고 보는 것이 교회의 윤리적 전통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판단된 공동선의 과제에 대하여 누가 누구와 연대해서 무엇을 어떻게 그리고 어디서 실천할 것인지를 숙고해서 사도직 활동으로 지속하는 것이 그 세 번째 단계입니다. 정확한 목표를 향해서, 연대할 수 있는 이들과 할 수 있는 만큼만 조금씩 그러나 포기함이 없이 대를 이어서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것이 사도직 활동입니다.
로마 제국이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받아들이면서도 세속화되어 가던 모습을 바라보면서 이집트와 소아시아 카파도기아의 사막에서 은수생활에서 공주생활 그리고 공동생활로 나아가던 신앙생활이 발전된 형태가 오늘날의 수도생활입니다. 각 시대와 각 사회의 공동선 요청을 받아들여 응답한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거기서 평신도 사도직의 여러 활동들도 같은 원리로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사회교리 주간을 마치면서 가르멜 영성으로 수도회 개혁은 물론이요 가톨릭 영성의 깃발을 들었던 교회학자로서 십자가의 요한으로 불리었던 그의 사색에 힘입어 가톨릭 사회교리의 형성원리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