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2020.1.24.) : 1사무 24,3-21; 마르 3,13-19
오늘은 16세기 말과 17세기 초에 걸쳐서 스위스 제네바 교구에서 활약한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의 기념일입니다. 프란치스코 살레시오가 활약하던 당시 유럽은 여러 가지로 대단히 혼란스러웠고 그 혼란상은 복합적이었습니다. 첫째, 종교적으로는 루터와 칼빈으로 인한 교회 분열이 시작된 데다가, 정치적으로는 절대왕정이 강화되고 있어서 전통적으로 가톨릭을 옹호하던 국가들과 개신교를 새로이 택한 국가 간의 대립으로 번지는 바람에 가톨릭과 개신교의 대립이 종교적 갈등의 양상을 넘어 국가 간 대립으로 격화되고 있었습니다.
둘째, 대양을 항해할 수 있는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유럽 이외에 다른 대륙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면서 유럽에 못지않은 오래된 문명과 마주치게 되었으며 그 문명에는 그리스도교보다 더 오랜 역사를 지닌 다른 고등 종교들도 있다는 사실이 알려짐으로써 유일신으로 알고 있었던 하느님 신앙 자체가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중국의 명청 교체기에 조상제사로 말미암은 선교 실패로 인해 유럽으로 추방당한 선교사들이 역으로 중국의 유학을 유럽의 지식인 사회에 소개함으로써 인간 이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 무신론적인 계몽사상이 파급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셋째, 자연과학과 특히 천문학적 발견으로 천동설이 지동설로 교체되면서 하늘에 계시다고 믿어온 하느님 신앙이 상대화되기에 이르게 되자 이 신앙에 입각하여 정신적 영향력을 발휘하던 가톨릭교회의 권위도 추락되고 있었습니다. 이런 복합적 혼란상을 정리해 낸 학자가 데카르트입니다. 그는 혼란스러운 모든 것을 의심한 끝에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명제를 확립하고는 가장 확실한 진리를 수학에 의해서만 성립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래서 ‘방법서설’(方法序說)이란 책을 써서 방정식 개념과 미적분 원리, 좌표 개념 등 철학을 위한 수학적 기초를 고안해 내어 대수학(代數學)과 기하학(幾何學)의 기초를 형성했습니다.
그런데 일반 학문 분야에서 데카르트가 이룩한 업적으로 근세의 기초가 닦였다고 보는 학계의 정설처럼, 신학과 종교 분야에서는 프란치스코 살레시오가 그러한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그래서 프랑스와 이탈리아, 특히 스위스 제네바 등지에서 정신적으로 방황하는 많은 이들을 올바른 신앙으로 이끌고자 노력했는데 그 결과물이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에 필적하는 ‘신심생활 입문’입니다. 그는 당시 루터 등으로 인한 개신교 출현에 대응하여 열렸던 트리엔트 공의회의 가르침에 기초하면서도 전통적 가르침을 주입식으로 가르치기보다 상당하러 오는 신자들의 문제의식이나 상황에서부터 출발하여 스스로 올바른 신앙에 이끌리도록 도와주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인격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을 취함으로써 많은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 결과 칼빈주의가 지배하던 스위스 제네바에서 수많은 개신교 신자들을 가톨릭으로 개종시키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 가톨릭과 개신교는 서로가 서로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있었던 시절이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지금까지도 비공식적으로는 서로를 이단시하는 분위기가 남아 있지요. 일치 주간을 맞이하여 공동 기도회를 하기는 하지만 그 일은 담당 교직자들의 몫일 뿐 대다수 일반 신자들이나 가톨릭 사목자 내지 개신교 목회자들의 관심을 끌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 이를 반영합니다. 이런 상황과 분위기 속에서 갈라진 형제들의 일치를 모색한다는 것은 양쪽 그리스도인들의 의식 속에서 기적이 일어나야 하는 상황이라고 보여집니다.
그런데 오늘 독서와 복음이 들려주는 성서의 상황은 이런 기적이 꼭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필리스티아인들과의 대결에서 혁혁한 전공을 쌓아 백성으로부터 인기를 얻은 반면 사울왕으로부터는 죽음의 위협을 받아 쫓기고 있던 다윗이 결정적인 기회에 사울왕을 죽이지 않고 오히려 살려두는 행위를 한 것이 그 첫 번째 기적입니다. 그러기가 쉽지 않지요. 다윗이 신앙을 간직한 사람이라는 증거입니다.
그런가 하면 예수님께서는 열두 지파로 시작된 이스라엘이 거의 찢겨지다시피 했던 당시 상황에서 새로이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셨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열두 지파의 새로운 소집으로 보였을 이 행동은 갈라지고 찢겨진 이스라엘을 새로운 하느님 신앙으로 재건하시겠다는 예언자적인 행동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열두 제자들의 면면도 갈라지고 찢겨진 이스라엘의 상황을 반영하듯 제각각이었습니다. 정치적으로 친로마적 성향이었던 세리 출신들과 반로마적 성향을 띤 혁명당원 출신이 섞여 있었는가 하면, 지식적으로도 당시 국제공용어였던 그리스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줄 알았던 이스카리옷 유다 같은 지식인과 갈릴래아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던 무식한 어부 출신들이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듯 콩가루 집안 같은 열두 명의 유다인을 불러 모아서 예수님께서는 삶의 모범과 복음의 가르침, 특히 십자가 고난과 부활로 하나의 교회를 세우는 사도단으로 변화시키셨습니다. 공생활 동안 보여주신 그 어떤 기적들보다 더 뛰어난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서로를 경원시해온 가톨릭과 개신교의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존중하며 일치를 모색하는 일도 이와 비슷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종교적 대체재처럼 이단시하거나 적어도 경원시 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윗처럼 자신이 운명을 결정하려 들지 말고, 예수님처럼 사람들의 다양한 조건은 오직 하느님께서 일치시키실 수 있다는 믿음이 발휘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다음 세대에 가서라도 하느님께서 필요하시면 기적도 일으켜주시겠지요.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