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교황청 국무원과 재무정보국 관계자들이 교황청 자금을 유용하여 영국의 고가 부동산에 투자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당시 투자를 관장하던 국무원 국무부 고위성직자를 상대로 바티칸 경찰이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부동산 투자 자금 유용 비리와 관련해 지난 10월 해당 비리에 연루된 국무원 국무부와 재무정보국을 압수수색한 이후 두 번째로 이뤄진 압수수색이다.
바티칸 경찰은 잔 피에로 밀라노(Gian Piero Milano) 바티칸 검사장의 지시로 영국 첼시 슬론 에비뉴(Sloane Avenue, Chelsea)에 위치한 2억 2천만 달러(한화 약 2,600억 원) 상당의 부동산에 투자된 교황청 재정이 어떻게 마련되었는지를 조사 중이다. 해당 부동산은 187,000 제곱피트 규모의 부지로, 약 5,000평에 달하는 규모로 알려졌다.
교황청 공보실은 입장문을 내고 “압수수색 차원에서 교황청 국무부 전 행정부장 알베르토 페를라스카(Alberto Perlasca) 몬시뇰의 사무실과 자택에서 문서와 컴퓨터 파일을 압수했다”고 발표했다.
페를라스카 몬시뇰(59)은 이탈리아 코모(Como) 출신의 고위성직자로 2019년부터 교황청 대심원 검찰관 대리직을 수행해왔다.
교황청은 “국무원의 투자와 부동산 조사 차원에서 취해진 이번 조치는 정직 처분을 받은 국무원 관계자들의 심문 결론과 연관이 있다”며 교황청 재정이 불투명하게 영국 부동산 투자에 사용된 것이 위법 행위일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이번 조사는 바티칸 은행(IOR)과 바티칸 감사원장의 신고로 시작되었고 이 같은 사실이 이탈리아 언론에 공개되면서 사건이 공론화되었다.
특히 이번 조사가 언론의 주목을 받은 것은 영국 부동산에 투자된 금액 일부가 교황주일에 모금된 일명 ‘교황성금’이라 불리는 베드로 성금(이탈리아어: Obolo di San Pietro, 영어: Peter’s Pence)에서 나왔다는 의혹 때문이었다. 대체로 이 성금은 교황청 사업 전반에 쓰이며, 자선 사업에 주로 쓰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무원 국무부 행정부장을 지낸 페를라스카 몬시뇰의 담당 업무 중에는 베드로 성금 관리 업무가 포함되어 있었다.
< Vatican News >에 따르면 조사는 올 여름 전에 끝날 것으로 보인다. 교황청 공식 홍보매체는 파를라스카 몬시뇰의 혐의에 대해 “횡령, 권위 남용 및 부정”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게다가 얼마 전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황청 재정비리 사건을 언급하며 “바티칸 재정개혁은 필수”라고 발언하는 일이 있었고, 해당 시기에 국무원 국무장관직을 맡고 있던 현 시성성 장관 안젤로 베치우(Angelo Becciu) 추기경은 자신이 교황청의 돈을 유용한 적이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 출판행사에 참석한 베치우 추기경은 기자들의 질문에 “우리는 그 돈(베드로 성금)을 쓴 적이 없다”며 “우리는 (부동산을 매입하기 위해) 대출을 했다”고 주장했다.
베치우 추기경은 “은행 이자율이 낮아 우리가 보기에는 국무원이 사용할 수 있는 재산을 더 잘 사용할 수 있는 적합한 기회처럼 보였다”며 “(영국 부동산 투자가)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좋은 기회였던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더해 “브렉시트와 함께 건물 가치가 3배로 올랐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교황청 국무원장 피에트로 파롤린(Pietro Parolin) 추기경이 이 재정비리 의혹에 대해서 “불투명했다”고 인정한 상황인 만큼 베치우 추기경의 주장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지는 미지수다.
베치우 추기경은 “나는 용의자 선상에 없다”며 현재 재정비리 혐의로 정직된 5명을 두고도 “뭔가 일이 잘못되기는 했지만, 내가 아는 바로는 의혹이 있는 인물들은 모두 바티칸 외부 사람들”이라고 선을 그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15일, 이 의혹이 조사되고 있음을 언급하며 “이러한 의심스러운 재정 상황은 위법성과 별개로 교회의 성격과 목적에 부합하지 않으며 이로 인해 신자 공동체에 혼란과 불안을 야기했다”고 비판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