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3주간 목요일; 2020.4.30 : 사도 8,26-40; 요한 6,44-51
음력으로 사월초파일인 오늘은 불자들이 부처님 오신날로 지내는 날입니다. 이웃 종교인 불교의 최대 경축일을 맞이하여 불자들에게 축하드리며 그리스도인이 보는 불교와 그 가르침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불자들은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를 부처님이라고 부릅니다. ‘석가(釋迦)’는 부족의 이름으로서 Sakya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고 ‘능하고 어진 사람들’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모니’는 성자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석가모니는 샤카족의 성자라는 뜻이 됩니다. 원래 이름은 고타마 싯다르타입니다. 그리고 ‘부처’란 깨달은 자라는 뜻의 Buddha라는 말에서 나온 한자식 표기입니다. 그래서 불교를 서양식으로는 Buddhism이라고 부릅니다.
석가모니에 의해 창시된 불교는 발상지 인도를 출발하여 중국을 거쳐 삼국시대 초기에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진리를 추구하는 사상과 문화의 도구가 되어 주었고, 나라와 사회를 운영하는 기틀이 되어 주었던 종교입니다. 그래서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라 하더라도 불교적인 영향을 알게 모르게 받았고 그 결과 그리스도인이면서도 불교와 불교적 문화 및 사상을 친숙하게 느끼고 받아들입니다.
성당에 와 보지 않은 불자는 있을 수 있어도 절에 한 번도 가 보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없을 겁니다. 그만큼 절이라는 불교의 사찰은 불교라는 종교의 수행공간이면서 문화의 일부분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고 전국의 크고 작은 산마다 절 없는 산이 없을 정도로 많이 세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절을 세울 공간이 없으면 암자가, 암자마저도 마땅치 않으면 바위 아래에 기도하는 불단이라도 만들어져 있는 나라가 한국입니다. 그만큼 불교는 한국인들의 정신세계와 종교심에 깊숙이 들어와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으뜸가는 가르침이라는 ‘宗敎(종교)’라는 말도, 불교가 보기에 유교, 도교, 경교 등이 모두 부차적인 가르침이고 불교가 으뜸가는 가르침이라는 뜻에서 표현된 말이어서, 원래는 불교를 뜻하는 고유명사였을 정도입니다.
이런 점들을 전제로 삼고서 함께 공감할 수 있고 연대하며 협력할 수 있는 점을 먼저 말씀드리고, 서로의 연대와 협력이 지속적이고 공고하기 위해 서로의 고유한 점을 그 다음에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오늘날에 와서 ‘종교’라는 말이 불교만을 뜻하지는 않고 정신세계를 추구하는 문화양식이라는 보통명사로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종교란, 그리스도교와 불교를 포함해서 이슬람교와 유대교 그리고 힌두교와 유교, 그리고 불가지론이나 무신론 또는 무속이라든지 범신론을 표방하면서 특별한 문화적 양식으로 삼고 이를 종교적 열성으로 중시하는 세속주의적 생활양식을 두루 뜻하게 되었고, 종교인 역시 이 모든 삶의 양식을 통해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문명의 한계 너머를 보고자 하는 구도자를 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의 숙제는 각 개인의 인생을 살아내는 일과 각 국가들과 인류가 공존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숙제는 행복이고 인류의 숙제는 평화입니다. 종교와 종교인들이 이 공통의 숙제를 해결하는 데에 도움이 되어야 하고 서로 연대하며 협력해야 합니다. 이 점에서는 종교간 연대와 협력을 막고 있는, 각 종파 내부의 교조적인 근본주의자들과의 내부 투쟁이 불가피할 것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불교와 가톨릭은 서로 연대하며 협력하는 일에 모범적입니다. 정의구현활동에서부터 환경 및 생태 보전, 그리고 민족화해와 평화통일의 과업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불자들과 가톨릭 신앙인들은 서로 손을 잡고 나아가기가 수월합니다.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이 자리잡고 있어서 불자들이 공경하는 부처님과 가톨릭 신앙인들이 공경하는 예수님이 이 점에서는 아주 친한 벗처럼 보입니다.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다거나 자비와 애덕을 실천해야 복을 받는다는 종교적 관념도 공통적입니다. 불자들에게 원효와 사명당 이래 호국불교의 전통이 있다면, 가톨릭 신앙인들에게는 정약용과 안중근 이래 하느님 사랑과 겨레 사랑이라는 경천애인의 전통이 있습니다. 이 점에서는 불교나 그리스도교가 하나의 진리로 수렴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견해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원칙이 아닌 방법에서 발견될 수 있는 것이고 정체성이 아닌 연대방식에서 가능한 선일 따름입니다.
불교와 그리스도교는 서로 다르고 고유한 원칙과 정체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는 서로를 경원시하게 만들기는커녕 오히려 서로를 배울 수 있게 하는 차이점이 되어 주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인생을 고해(苦海)로 간파하시고 인생을 바르게 살 수 있는 팔정도(八正道)를 가르치셨습니다. 하지만 인류의 위대한 성현이신 부처님도 어디까지나 사람에 불과하지만 예수님은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의 계시를 사람이 되시어 하느님 나라의 참된 행복인 진복팔단(眞福八段)을 가르치셨습니다.
또한, 부처님 이후 불자들은 많은 경전을 만들고 선 수행의 기도방식을 개발해 내었습니다. 이는 불교에 고유한 것이기는 하지만 본시 불교적이라기보다는 동양적 정신전통의 하나로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배울 수 있는 수행방식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4복음서를 비롯한 신구약성경을 전수해 주었고, 이를 생활에 옮길 수 있는 기도와 성사를 가톨릭 종교문화로 창안해 내었습니다. 이 모두를 품고 있는 신학사상을 불자들, 특히 학승들이 배우고 있기도 합니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한국 사회에서 불자들과 가톨릭 신앙인들의 연대와 협력으로 겨레를 선도하는 찬란한 정신전통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