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신학위원회 >는 신학 나눔의 새로운 길을 찾아 ‘사건과 신학’이라는 표제로 다양한 형식의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매달, 이 사회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사건 가운데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해 신학 이야기를 나누는 ‘사건과 신학’. 이번 주제는 ‘성착취 폭력사건, n번방’입니다. - 편집자 주
청소년 인권과 섹슈얼리티 의제에 관련하여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청소년입니다. 언젠가 성에 관한 이야기를, 저의 이야기를 많은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욕구가 존재했습니다. 물론 혼자 기록하고 sns상에서 담론을 주고받는 나날 역시 저에게 있어 아주 소중한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욕구를 속에 품고 있는 상황에서 저는 이 연설대전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놀라웠습니다. 세상이 조금은 변화를 따라 걷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청소년 당사자가 작지 않은 힘이 있는 자리에서 성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에 기쁘고 한 편으로는 울컥했습니다. 동시에 ‘이제서야 난 목소리를 낼 기회가 생겼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기회를 통해 또 하나의 변화를 같이 이끌어 내고 싶습니다. 미래에 대한 기대와 상상이 아닌 현실로서 말입니다. (2020 대한민국청소년성문화 연설대전 참가자 지원 동기 中)
대한민국역사상 최초로 18세 선거권이 확보되고 구성된 21대 국회가 개원 준비를 하는 5월 ‘청소년의 달’, 이 달에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리는 ‘대한민국청소년성문화연설대전’에 참여를 신청한 청소년의 지원동기이다. 청소년성문화활동가로서 나는 이 청소년이 함께 변화를 이끌어 내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지 기대되는 마음에 설레이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텔레그램 소위 n번방, 디지털성착취 사건으로 모든 언론과 사회적인 시선은 그 실체의 잔혹성과 26만으로 표현되는 남성 가해자·동조자·방관자들의 규모에 새삼 놀랐다. 더불어 연일 이어지고 있는 주범자들의 신상공개 뉴스는 일반인들의 정신건강에 적신호를 주고 있으며 한국사회성문화 또한 펜대믹 상태로의 진단이 요구되는 상황이 아니냐고 우려 섞인 목소리를 높인다. 디지털이주민인 성인세대의 많은 이들은 이 현상에 대해 적잖이 당황하다가 요즘 젊은이들이 왜 이러는지, 어쩌다가 이지경이 되었는지 걱정을 하며 가해자들을 위해서는 일벌백계 처벌강화를 위해 촉법소년의 연령도 낮추고, 피해자들의 보호를 위해서는 의제강간의 연령도 높여야 한다고 청소년의 사회적 위치성의 변화에 따른 법적장치의 현실화를 요구하기도 한다. 새로운 범죄에 대한 입법공백을 메꾸는 일은 언제나 필요하다. 성폭력특별법, 아동청소년성보호법, 성매매특별법등 젠더관련 기본법은 젠더폭력 피해자들의 크나큰 희생의 대가를 치른 후에야 현실화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처벌 형량을 높이고 법을 만든다는 것으로만 자족하고 ‘팬데믹상태의 한국사회성문화’ 상태에서 살아가는 청소년을 포함한 시민들의 성적 건강성은 어떻게 지킬지, 예방의학적 관점의 무게 있는 대책이 눈에 보이지 않아 답답하다.
지난해 초등학생을 만나는 성교육현장, 특히 초고층아파트가 밀집한 지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던 사례는 “노예놀이”였다. 돈을 지불하면 상대방에게 어떠한 수치심을 주더라도 노동을 제공받을 수 있다는 악질 자본의 법칙이 작동하고 있었고 가볍게는 학용품 심부름부터 물 떠다주기, 대신 욕해주기, 단톡방에서 따돌리기 등 놀이를 넘어서는 인권침해 현상이 고스라니 재현되고 있음에도 누구 하나 이에 대해 이에 이의제기를 하지 않고 교육적 개입도 없었다. 외부에서 들어간 성교육선생님의 또 다른 시선을 개입하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이 아이들의 노예놀이는 지금 n번방에서 명명 지어진 노예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연애에 대한 욕망이 솟구치는 중학교 청소년기로 들어서면 그야말로 대혼란의 전쟁터가 펼쳐진다. 단톡방에서의 얼평·몸평·섹스놀이 모의, 몸캠 유포 등 남학생들의 강간욕망은 자연스러운 호기심의 연애욕망으로 포장되면서 더 쎈, 더 큰 남성성 과시로 여학생들을 전리품(특히 더 취약한)으로 증명한다. 어쩌다가 까칠하게 페미니즘을 장착한 여학생의 존재는 눈에 가시고 꼴페미니, 메갈이니, 워마드로 낙인찍고 대전쟁을 치른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성폭력예방교육은 남학생들에게는 페미니즘교육 한다며 볼멘소리를 하고,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여학생들은 성별이중규범에 갇혀 얌전히 앉아 있거나 낙인을 피하기 위해 침묵을 일관한다.
청소년 후기 그리고 20대로 넘어가면 성별갈등과 혐오의 생산은 일상이 되어 버리는 듯하다. 남성과 여성은 아예 만나지를 않는다. 일부 유명게임유튜버들은 안티페미니즘으로 장사를 하기 위해 온갖 가짜뉴스에 여성혐오발언을 쏟아내는 사이다로 별풍선에 몰입한다. 반면 레디컬페미니스트라 일컬어지는 일부여성들은 진짜여성, 가짜여성, 생물학적여성만을 구분하고 철저하게 더 안전한 공간 만들기에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붓는다.
다시 n번방으로 돌아와서 이야기를 해보면. 사건이 불거지면 그때만 잠깐 가해자들을 조명하며 제대로 처벌하라는 주장이 더 많은 뉴스재화로 소비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피해자들을 지원하고 안전한 일상으로 돌아 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상식이어야 한다는 뉴스가 더 많이 생산되었으면 좋겠다. ‘김지은입니다’를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얼마나 많은 젠더폭력 피해자들이 공포속에서 일상으로 돌아오기 요원한 환경이 바로 우리대한민국인지, 가해자인 안희정 보다 더 무서운 가해자인 일반시민들이 피해자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지
성폭력특별법이 만들어지고 30년이 지나도록 자본과 성별권력에 의한 성착취는 먼지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다니며 굴레가 되고 멍에가 되어 젊은이들에게 아프게 이어져 오고 있다. 더 이상 병든 자들의 공모를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 병균의 오염과 감염지가 군부정권시절 궁정동 안가에서 이제는 젊은이들의 공간 텔레그램으로 옮겼을 뿐. 코로나 19 전파지가 한국에서 신천지였다면 이후 어디에서 발생할지 피씨방인지 클럽인지 콜센터인지 만반의 준비를 위해 질병관리본부를 질병관리청으로 승격시키는 것처럼!
한국사회의 성문화를 팬데믹으로 선언하자는 전복적 시선, 가해자 피해자를 넘어 모든 시민들의 일상의 성인식과 안녕을 묻는 사회, 학교에서, 마을에서, 교회공동체 안에서 시스템 가동은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난 4월 포괄적성교육권리보장을위한네트워크는 “이번 사건은 성폭력(중략) 주동자, 가담자, 동조자 되지 않기 등 성폭력에 저항할 줄 아는 시민성 교육이 절실히 요청되는 것을 확인했다”며 △가해자가 되지 않는 것 △성차별적인 사회 구조와 강간문화 및 성착취 구조를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것 △통념에 의해 피해자를 탓하지 않는 것 △타인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존중하고 스스로의 성적자기결정능력을 키우는 것 모두를 포괄한 성교육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것은 공교육이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교육행위 만능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성적시민성이란 어른이 된다고 해서 저절로 길러지는 것은 아니다. 금기와 차별을 넘어 성적 주체로서 시민역량을 키우는 곳에 시선이 집중되길 바란다. 우선 젊은이들의 목소리를 공적으로 키우는 일에 사회적 자원이 모아져야 한다. 특히 남자청소년들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감염에 가장 취약한 이들에게 우선적으로 방역대책으로 적극적 조치가 필요하다. 우리 아이들이 또 다른 조주빈, 강훈, 이원호가 되지 않도록!
이명화(한국YMCA 아하!청소년성문화센터 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