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1주간 화요일(2020.06.16.) : 1열왕 21,17-29; 마태 5,43-48
오늘 독서에 보면, 희년법에 명시된 이스라엘의 파스카 정신을 짓밟고 나봇을 죽인 북이스라엘 왕국의 임금 아합에 대해서 하느님께서는 엘리야 예언자를 시켜 왕실 가문이 멸망하리라는 재앙을 예고하셨습니다. 아합을 충동질하여 아합으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한 이세벨도, ‘개들이 이즈르엘 들판에서 시체를 뜯어 먹을’ 비참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는 벌을 받았습니다.
이방인 출신 왕비였던 이세벨은 자신의 모국에서 우상을 숭배하던 사조에 젖어 야만적으로 행사해 버릇했던 정치권력을 감히 이스라엘에 도입한 죄를 저질렀고, 아합은 이스라엘의 전통을 수호해야 할 신성한 의무를 저버리고 아내의 충돌질에 넘어가 나봇의 목숨을 빼앗은 죄를 저질렀습니다. 이 경우에, 하느님께서는 다시는 그런 악이 하느님의 백성을 잘못 이끌고 함께 파멸에 이르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악에 대한 방어적인 차원에서 당신의 힘을 발휘하여 아합 가문과 이세벨을 할 수 있는 한 가장 강한 방식으로 응징하셨습니다.
그런가 하면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선을 실현해야 하는 적극적인 차원에서 하느님의 힘이 어떻게 나타나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그래서 고르고 한결같은 하느님의 사랑에 대해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고 비유를 들어 모든 사람에게 고르게 나타나는 하느님 사랑에 대하여 깨우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또한 언제나 한결같이 나타나는 하느님 사랑에 대해서도,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우리도 완전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이 독서와 복음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세 가지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첫째는 독서에서 확인하신 대로, 하느님께서는 우상숭배에서 나오는 사회적 불의를 용납하지 않으시고 이를 응징하기 위하여 당신의 힘을 엄정하게 행사하신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 힘은 오늘 복음에서 들으신 대로, 모든 사람에게 고르게 나타나고 모든 때에 한결같이 나타나는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이 힘을 행사하는 데 있어서는 하느님과 그 백성의 역할이 분명하게 구분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길을 어긴 자들에 대한 복수와 응징은 하느님의 역할이고 이를 따르고 그 완전함을 본받는 일은 하느님 백성의 역할입니다.
고르고 한결같은 하느님의 사랑은 생명을 기르고 평화를 유지하는 힘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하느님의 완전함을 본받기가 어렵습니다. 하느님의 도우심과 이끄심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생명도 평화도 다 하느님의 선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성체성사로 삽니다. 성체성사를 제정하신 예수님께서,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루카 22,19)하고 말씀하시고 또한 “내가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고 약속하신 바, 교회는 성체성사를 거행할 때마다 그리고 성체성사의 정신에 따라 파스카 과업에 복무하면서 이를 위해 서로 섬기는 삶을 살아갈 때마다 주님을 기억함은 물론 성령의 현존을 강하게 체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빵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몸과 피로 변화되는 성체성사의 은총은 파스카 신비를 믿고 이를 위해 자신을 봉헌하는 신앙인들이 이룩하는 변화와, 그들에 의해 역시 변화되어 가는 세상을 통해서, 그리고 성령께서 이 두 가지 변화를 이끌고 도와주시는 체험도 늘 새롭게 확인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부들도 성체성사가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원천이며 정점”이라고 확인해 준 바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눈길은 언제나 성체성사 안에 현존하시는 주님을 향하며, 우리와 세상 안에서 끊임없이 거룩한 변화로 파스카를 이끄시는 주님의 힘을 발견합니다. 그 힘은 고르고 한결같이 나타나는 생명과 평화의 힘이요 사랑의 힘입니다.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에 비추어 보면, 이 생명과 평화의 힘은 적극적인 차원에서나 방어적인 차원에서 나타나야 함을 절실히 느끼게 해 줍니다. 우리 정부는 남북관계는 물론 한미관계와 한일관계에 있어서도 적극적으로 생명과 평화의 힘을 발휘하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또 앞으로도 그렇게 긍정적인 방향에서 힘을 행사하도록 정부를 응원하는 한편 사회 여론에도 호소하는 역할을 우리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고르면서도 한결같은 하느님의 사랑을 평화 실현을 위해 반영하는 역사가 이 땅에서 계속되어야 함은 기본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처럼 미국이 자신의 국내정세에 맞추어 남북문제를 이용하려 드는 경우, 또 미국과 조율해야 하는 한국의 입장에 만족하지 못한 북한이 평화관계를 깨뜨리고 대결자세로 나오는 경우, 그리고 남북분단에 책임이 가장 큰 일본이 여전히 군국주의적 향수에 젖어 남북대결을 부추기는 경우 또한 마지막으로 친일적인 정치세력과 가짜 보수언론이 여론을 조작하고자 이 세 가지 최악의 상황을 조장하는 경우에라면 하느님께서 평화를 방어하는 차원에서 과오를 응징하시는 역할을 하시도록 청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그런 조짐은 조금씩 나타나고 있기도 합니다. 요컨대, 하느님은 사랑과 평화의 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힘을 자신의 삶에 있어서나 겨레의 삶에 있어서나 그 어느 경우에도 잘 써야 합니다. 힘이 필요합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