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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학교폭력’으로 멍울진 아이들
  • 김한나
  • 등록 2020-07-23 11:34:32
  • 수정 2020-07-23 17:5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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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신학위원회 >는 신학 나눔의 새로운 길을 찾아 ‘사건과 신학’이라는 표제로 다양한 형식의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매달, 이 사회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사건 가운데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해 신학 이야기를 나누는 ‘사건과 신학’. 이번 주제는 ‘가학적 폭력의 사회’입니다. - 편집자 주



“우리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 (창1:26)


성경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크게 기뻐하셨음을 알 수 있다. 그분은 아브라함과 세운 언약을 통해 당신의 사랑하는 백성을 택하셨고 모세를 통해 그들을 이집트의 압제에서 해방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구약의 율법 조항들은 강자로부터 약자를 보호하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반영한다. 결정적으로 그분의 사랑하시는 자녀들을 구속하시고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셨다. 이처럼, 인간은 하느님의 과분한 사랑과 보호를 받는 존재로서 이는 우리의 자격이 충분해서가 아닌 그분의 지극한 사랑과 풍성한 은혜에 기인한 것이다.


우리 사회에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는 사이버 따돌림은 온라인 공간에서 SNS 등을 이용하여 한 개인을 집단으로 따돌리는 것을 말한다. 특히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단체방에 피해자를 초대하여 집단으로 욕설과 협박을 일삼는 ‘떼카’, 반대로 단체방에 한 명의 학생만을 남겨두고 모두 나가버리는 ‘방폭’, 데이터를 상납하도록 강요하는 ‘와이파이 셔틀’, 억지로 게임을 시켜 레벨업과 같은 특정 목적을 달성하도록 강요하는 ‘게임 셔틀’ 등과 같은 사이버 학교폭력이 발생하고 있다. 


또한, 온라인으로 피해자뿐만 아니라 가족의 신상정보를 유출하고 그들에 관한 허위 정보를 퍼뜨려 수치와 모욕감을 주는 사례도 빈번하다. 이는 현실의 전통적인 학교폭력(언어폭력, 왕따, 빵셔틀 등)이 온라인 공간으로 고스란히 이식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이버 학교폭력의 발생 건수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로 지난 3년(2016~2018)간 54.1%나 늘어났고 최근 교육부에서 발표한 보고서를 살펴보면 사이버 괴롭힘의 비중이 신체폭행 비중을 앞서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 사이버 학교폭력에 의해 지속해서 발생하는 청소년 자살 사건은 사태의 심각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현재 청소년 세대는 2000년 이후 출생하여 대부분 온라인 문화의 영향력 아래 성장해왔다. 그들에게 있어서 사이버 세계는 주된 소통 공간이자 놀이 공간으로서 개인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가치관을 형성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는 그들이 이미 성인이 된 이후에 온라인 문화를 경험한 기성세대와는 일부 다른 방식으로 사이버 공간을 경험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들에게 사이버 세계는 현실과 유리된 부차적 공간이 아닌 삶의 연속적 공간이자 타인과의 친밀감을 형성하는 필수적인 사회적 공간으로 간주된다. 그들은 오랜 가상 경험의 내공을 바탕으로 사이버 세계가 자신이 실제 속한 현실 공동체와 두터운 상호 관련성을 가진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이처럼 개인의 삶의 영역에서 온라인 경험의 가치와 영향력의 증대는 사이버 폭력의 피해가 더욱 실질적인 위협과 공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게다가 사이버 학교폭력의 저연령화 현상과 은폐적 성향, 비대면(혹은 익명의) 가해로 인한 윤리의식의 결여,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는 지속적 피해, 제한 없는 가해자의 수적 증대 등과 같은 속성은 더욱 심각한 피해를 양산한다. 또래 문화를 중시하는 청소년기의 특성과 정서적으로 민감한 사춘기의 성향까지 고려한다면 온라인 공동체에서 소외와 폭력의 경험은 파괴적이고도 위협적인 사건이 될 수 있다.


현대 사회는 안타깝게도 인격적 소통 방식을 잊어가고 있다. 인간마저도 살아있는 인격체가 아닌 객관적 실체로서 사물화하는 태도가 원인 중 하나다. 물질 중심의 세계는 인간의 내적 가치보다는 가시적이고 객관적인 이익과 성과를 중시한다. 소유한 자산과 스펙이 가치 평가의 척도가 되어 인격적 실체로서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하고 있다. 


사회가 특정한 기준을 절대적인 표준으로 믿고 맹신하게 되면 자연히 이를 만족시키는 부류는 강자로, 나머지는 약자 혹은 패배자로 규정짓게 된다. 이는 사회뿐만 아니라 교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종교적인 지위와 행위를 참된 신앙의 규준으로 여기는 율법주의적인 태도는 현대 교회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시대에도 비일비재했다.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는 스스로를 유대 사회의 강자로, 세리와 창녀를 약자로 규정하고 정죄했다.


이처럼 고정화된 렌즈에 타인을 투영시키게 되면 상대의 본모습과 인격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개인의 생각과 사회적 편견에 의해 만들어진 허상만을 바라보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강자에게는 자연히 힘과 권력이 부여되고 약자는 무시와 억압의 대상이 된다. 또한, 자신과 비교하여 상대가 우월하다면 강자로, 반대의 경우에는 자신을 강자로 여기는 태도의 전환이 이루어진다.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인 갑질은 이처럼 강자와 약자의 패러다임 안에서 발생한다. 이는 강자가 상대적인 우위와 권력에 의존하여 약자를 괴롭히는 행위이며, 현실보다 윤리적 규범이 느슨한 사이버 세계에서 갑의 횡포는 더욱 자극적인 형태로 드러난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을 통해 우리는 자신과 타인을 ‘강자 아니면 약자’로 바라보는 이분법적 시각을 교정할 수 있다. 그분의 사랑에 대한 확신은 인간의 고유한 정체성과 존엄성을 회복하며, 타인을 향한 사랑과 존중의 마음을 일으켜 인격적 관계와 공동체의 회복을 가능하게 한다.


현재 SNS 문화는 자기중심성과 폭력성으로 인해 관계의 위기를 맞고 있다. 이러한 문화에 익숙해진 세대는 현실에서도 이를 적용할 가능성이 크다. 온라인에서 상대를 대할 때 사이버 정체성의 배후에 하나의 인격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진정성을 가지고 사랑과 배려를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이버 세계는 오히려 익명성과 비대면성으로 인해 외적인 조건보다는 상대의 인격에 주목할 수 있는 이점을 가지고 있다. 


교회는 사랑의 하느님을 통한 인격적 관계의 회복을 위해 사이버 학교폭력 피해자를 위한 온라인 상담 제도나 이를 예방하기 위한 온라인 교육 시스템 개발과 같은 구체적 실천에 힘써야 한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온라인에서의 노력은 현실에서의 인격적 소통과 관계의 갱생을 위한 귀한 마중물이 될 것이다.


김한나 (성공회대학교)


▶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신학위원회 홈페이지 바로가기


‘사이버 공간서 더 교묘해진 학폭’, 한국일보, 2019.10.14.


‘2019년 1차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 교육부, 2019.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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