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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차별은 안 되고, 우리 차별은 된다’? - 차별금지법을 대하는 21세기 한국 그리스도교의 자세
  • 강재선
  • jseon@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20-09-18 19:42:02
  • 수정 2020-09-19 13:4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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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말 21대 국회에 발의된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관해 여야를 막론하고 천주교와 개신교 전반이 미온적 태도를 취하거나 오히려 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발의한 의원 수에서 부터 찾아볼 수 있다.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시민을 법의 테두리 안으로 포용하는 성격의 법안임에도 이 입법안은 발의를 위한 최소 위원수인 10명을 간신히 채웠다. 


입법에 참여한 국회의원 10명 중 5명은 가톨릭 신자, 5명은 무교이거나 별도의 종교 활동을 하고 있지 않다.


현재 21대 국회에는 가톨릭신자가 최소 83명, 개신교 신자가 75명으로 확인된다. 국회의원 300명 중 절반 이상이 그리스도교 신자인 셈이고 이는 곧 국회의 절반을 차지하는 종교인 대부분이 차별금지법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심지어 한 여당 의원은 ‘한국교회기도회’라는 것에 참여하여 보수 개신교계의 차별금지법 반대 움직임에 동참하기도 했다. 


한 국가의 헌법은 해당 국가의 시민 모두에게 절대적으로 적용되는 대원칙이다. 헌법은 차별받지 않을 자유를 비롯해 신념의 자유, 종교의 자유 등의 권리를 보장한다. 이러한 원칙은 모든 법의 근간을 이룬다. 


또한 이러한 권리들은 상호배제적이지 않다. 즉, 한 사람의 권리가 다른 사람의 권리를 제약하거나 막지 않는다는 것이다.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는 대다수 국민들의 생명이 위협받는 코로나19와 같은 국가재난 상황에서만 한시적으로 일부 제약될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이번 차별금지법안은 ‘종교를 위협할 정도로’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위협적인가? 


성소수자 반대, 지극히 ‘종교적’이지만 반헌법적 사고


차별받지 않을 권리에 대해 대한민국 그리스도교인들은 왜 이렇게까지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일까? 그리고 어째서 자신과 다른 성적 지향을 가진 이웃 시민의 기본권을 부정할까? 


그 답은 ‘동성애’에 있다. 천주교든 개신교든 그리스도교 교리는 동성애 또는 동성애 행위를 죄로 여기기 때문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들을 ‘일반 시민’과는 다른 ‘2등 시민’으로 여기는 분위기는 종파를 막론하고 교계 전체에서 확인할 수 있다.


먼저 보수 개신교 단체는 전면에 이 법이 ‘동성애라는 죄를 합법화 해준다’고 들고 일어섰다. “동성애, 성소수자를 보호하는 법”(한국교회연합),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결과적으로 동성애를 조장하고 동성결혼으로 가는 길”(한국교회총연합)이라며 해당 법안에 반대 의사를 강하게 표했다.


이러한 입장의 문제는 동성애와 같은 성적 지향이 한 개인의 특성이라는데 있다. 즉, 성적지향성은 종교가 옳고 그름을 판단할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이들이 말하는 ‘동성애는 죄’라는 입장은 종교적 교리에 따른 판단이다.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종교인들은 시민으로서 자기 종교의 교리에 따라 ‘동성애를 반대한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그 책임 역시 온전하게 져야한다. 


성소수자를 비롯한 대한민국 시민들은 서로 매우 다른 특성을 지닌 이질적인 집단이다. 하지만 이들의 시민권은 모두 동일하게 헌법에 근거한다. 그리고 종교의 자유와 신념의 자유는 모든 대한민국 국민이 가진 기본권의 일부다. 


앞서 보았듯 하나의 권리가 다른 권리를 제약하지 않기 때문에, 성소수자를 비롯한 다양한 성적지향을 가진 시민들의 권리는 ‘동성애는 죄다’라고 말할 수 있는 종교인의 권리만큼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그러한 권리가 보장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차별금지법안이 제출된 것이다. 


이렇게 성적지향성을 가지고 시민을 차별하는 것이 정당하며 차별의 근거라고 주장하는 행위는 더 이상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종교를 헌법 위에 두고 모든 시민이 가지고 태어난 기본권을 부정하는 행위인 셈이다.


나아가 교리에 따라 동성애를 죄로 여긴다고 한들 이것은 특정 공동체만의 규율에 지나지 않는다. 공동체 규율은 공동체 구성원에게만 적용해야지, 다른 공동체에까지 적용하려고 강요할 수 없다. 


하지만 일부 개신교 단체들은 자기 종교와 국가를 동일시하는 신정주의(theocracy)적 사고를 보이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이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를 국법으로 삼는 이슬람 국가들의 사고방식을 닮아있다.


진보 개신교계는 바로 이러한 지점에서 차별금지법에 찬성하는 입장을 내놓았다. “차별금지법은 성서의 약자 보호법이며 모든 생명에 자유와 해방을 선포하는 기독교의 희년법”(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그 누구도 주님의 은혜로부터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는 우리 시대의 ‘포괄적 복음’”(차별과 혐오 없는 평등 세상을 바라는 그리스도인들)


즉, 개인의 성향이나 성격을 떠나서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종교의 언어를 통해 시민이기만 하면, 인간이기만 하면 누릴 수 있는 보편적 기본권을 강조했다.



한국 천주교는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달라’


이렇게 개신교계의 입장을 살펴보고 나서 가톨릭교회의 차별금지법에 대한 입장을 살펴보면 그 논리가 보수 개신교계의 것과 가까워 보인다. 


나름대로 오늘날 사회를 수용하기 위해 고민한 흔적은 엿보이지만, 여전히 수많은 종교인과 비종교인들이 모여 있는 국가에 이념적인 영향을 끼치려 한다는 점에서는 한국 천주교와 보수 개신교는 별반 다르지 않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는 차별금지법안 관련 성명서에서 대한민국 헌법과 프란치스코 교황의 교서를 인용하여 “우리 사회에 만연한 차별·혐오·배척을 반대한다”고 적시한다. 


이렇게 한국 천주교는 모든 차별을 반대한다고 무척이나 강조하면서도, 성명서의 대부분을 특정 성적지향으로 인해 사회 문제가 야기 될 것이라고 비난하는데 할애했다. 하지만 정말로 성소수자 때문에 사회 문제가 발생할까.


주교회의는 입장문 말미에 “차별금지법안이 혼인과 가정 공동체에 대한 인간학적 기초를 무력화하고, 교육 현장에서 동성애 행위를 정당하고 합법적인 것으로 가르치지 않는 것을 차별이라고 인식해서는 안 될 것이다”라며 차별금지법안이 동성혼 법제화, 낙태와 같은 생명의 파괴, 인공 출산의 확산, 유전자 조작, 동성커플 입양 문제 등 차별금지법안이 말하는 기본권의 보장과는 매우 동떨어진 문제를 제기했다.


하나씩 살펴보자. 낙태를 비롯한 생명의 파괴는 남녀 간 혼인 과정에서 한쪽, 또는 양측의 무책임으로 인해 벌어지는 것이 아니던가? 


마찬가지로 인공 출산은 물리적인 이유로 아이를 갖지 못하는 부부를 위한 해결책이었다. ‘대리모’라는 용어가 처음 사용된 것은 1978년 불임으로 인해 아이를 갖지 못하는 부부의 아이를 대신 낳아준 여성을 다룬 미국 < Times > 지의 기사에서였다. 한국 전통에도 이러한 인공 출산과 유사한 ‘씨받이’, ‘씨내리’ 등의 제도가 존재했다.(이인영, 2005 서론 참조)


인간에 대한 유전자 조작은 애초에 대한민국 법제상 금지되거나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다. 성소수자 차별을 금지한다고 유전자 조작이 더 많이 발생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마찬가지로 입양 문제 역시 1970-80년대 ‘남녀’ 부부들에게서 탄생한 수많은 아이들이 미국, 유럽 등지로 ‘수출’되었던 우리 사회의 역사적 문제와 오늘날의 한 부모 가정을 생각하면(김유경·임성은, 2011 3장 참조) 동성 커플이 아동을 입양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러한 입양이 발생하게끔 아이가 ‘버려진 것’이 문제인 셈이다. 


결국 이러한 관점에서 천주교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의 입장문을 다시 읽어보면 기존 가정에서 발생한 수많은 문제들의 원인이 동성애 때문에 일어난다고 주장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가톨릭교회는 결혼하고서도 의도적으로 아이를 낳지 않는 딩크족(DINK)도 성소수자들과 마찬가지로 차별할 것인가? 가톨릭교회는 부부에게 있어 피임이 “근본적인 악”(교회법 2370조)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시민으로서 차별할 수 있을까?


이것만 보더라도 종교 교리를 국가라는 공동체에 일괄적으로 적용하려 하는 것이 얼마나 합리적이지 않은가를 쉽게 알 수 있다.


심지어 이 입장문 발표 이후 천주교 교계신문에서는 사설을 내고 “인공 출산이 확산되고, 유전자 조작을 통한 생명의 선별적 선택이 활개칠 게 뻔하다”며 매우 노골적인 어조로 주교회의 입장을 뒷받침했다.


성소수자는 그저 대한민국 시민일뿐


사실 성소수자 역시 엄연한 대한민국 시민이다. 이는 매우 복잡한 성(sex)과 젠더(gender)의 정의 문제를 제기하지 않더라도 납득 가능한 문제다. 성소수자가 사회에 끼치는 영향의 문제가 논쟁적이려면 최소한 성소수자의 존재가 국가 체제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친다는 근거가 있기라도 해야 할텐데, 그런 것은 찾아볼 수 없다.


결국 ‘동성애’라는 이념적 문제를 통해 결집하여 정치사회 영역에 종교적 색채를 입히려는 ‘이념적 시도’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는 종교가 노사갈등, 생태문제, 청년문제 등과 같은 사회 이슈에 참여하는 것과 정반대의 행동이다.


이러한 성소수자 혐오에 근접하는 입장을 통해 종교는 자신과 다른 공동체와 대화하거나 교류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정체성을 절대화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더해 한국 천주교는 성소수자들에게 매우 무관심한 편에 속한다. 당장 한국 천주교 신자 성소수자들의 모임에 대해 제도교회는 어떠한 지지도 표명하지 않고 있으며, 개별 구성원들 역시 여러 우려로 인해 비공개적으로 성소수자 지지활동을 이어갈 뿐이다. 그나마 천주교인권위원회와 같은 가톨릭 시민단체만이 이들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있을 뿐이다. 


외국 가톨릭계에서는 성소수자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많은 평신도, 수도자, 성직자의 이름을 찾아볼 수 있다. 성소수자와 가톨릭교회의 대화를 촉진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미국 예수회 사제 제임스 마틴(James Martin)이 가장 대표적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5월 11일 성녀 마르타의 집 미사 강론에서 "신앙과 교리는 정적인 것이 아니다. 신앙은 성장하는 것"이라며 "신앙은 나무가 자라나 조금 더 커지고 열매를 맺더라도 여전히 같은 나무인 것처럼, 언제나 같은 방향으로 성장한다"고 말했다. 


그리스도교의 뿌리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 40)가 말하듯 가난한 이, 소외받는 이들과 같은 "가장 작은 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다. 신앙과 교리의 나무는 오늘날 "가장 작은 이들" 중 하나인 성소수자들을 포용해야하지 않을까. 


* 참고문헌


이인영, 2005. 대리모 관련 문제점 고찰 및 입법정책방안 모색. 보건복지부.


김유경·임성은. 2011. 해외입양 줄이기 종합대책 연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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