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위법은 관습을 뛰어넘고, 상대방의 삶에 끼어들면 안 된다는 두려움과 편견을 극복할 수 있게 해주는 사랑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4일 삼종기도 연설에서 나병환자를 고치신 예수의 일화를 들어 “예수께서는 하느님이 무관심한 분이 아니라, ‘안전거리’를 넘어 다가와 우리 삶을 어루만져 치유해주시는 분임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이날 복음(마르 1, 40-45)에 나오는 시대의 나병환자는 부정한 사람으로 여겨졌고 율법에 따라 사람들과 격리되어 살아가야 했다. 교황은 “나병환자들은 모든 인간, 사회, 종교 관계에서 배제되어 있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들이 자신에게 다가오도록 하셨고, 손을 뻗어 그를 만지셨다”고 말했다.
당시에는 생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라면서 “그는 자신이 선포하고 있는 ‘하느님이 우리 곁에 오셨으며, 상처 입은 인류의 운명을 가엾이 여기시어 그분을 비롯하여 이웃과 우리 자신과의 관계를 체험하는 것을 가로막는 모든 장벽을 무너트리러 오셨다’는 복음을 실현시킨 셈”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교황은 이 만남에서 예수가 나병환자에게 보여준 모습을 ‘우리 곁에 있음’, ‘가엾음’, ‘온유’라는 말로 표현했다.
교황은 이야기 속에서 “그럴 자격이 없었으나 예수께 다가간 나병환자의 위법과, 마찬가지로 그래서는 안 됐으나 가여운 마음에 나병환자를 어루만져 그를 치유한 예수의 위법을 볼 수 있다”면서 “이 둘은 모두 위법자였다”고 지적했다.
교황은 나병환자의 위법에 대해 “그는 율법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고립에서 빠져나와 예수에게 다가왔다. 그의 병은 하느님의 형벌로 여겨졌지만, 그는 예수에게서 하느님의 또 다른 얼굴, 즉 벌하는 하느님이 아닌 가여움과 사랑이신 하느님,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키시고 우리를 그분의 자비에서 빼놓지 않으시는 하느님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교황은 훌륭한 고해사제라면 나병환자를 치유한 예수처럼 “자신이 쓸모없으며 자기 죄 때문에 ‘길바닥에 내쳐졌다’고 느끼는 수많은 사람들을 온유와 가엾음을 통해 이끌어내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교황은 “이 훌륭한 고해사제들은 손에 채찍을 쥔 사람이 아니라 그저 사람들을 맞이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하느님께서는 선하신 분, 언제나 용서하시는 분, 용서하기를 즐기시는 분임을 말해주는 사람들”이라고 강조했다.
두 번째로 교황은 예수의 위법에 대해서는 “예수께서 법이 금하는 행위를 했기에 그분이 위법자라고 할 수도 있겠다”며 “그분께서는 말에 그치지 않고 나병환자를 어루만졌다. 사랑으로 어루만진다는 것은 관계를 쌓고, 친교하여, 상대방의 상처까지 나눌 정도로 그의 삶에 애써 동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황은 “이러한 행동으로써 예수께서는 하느님은 무관심한 분이 아니라, ‘안전거리’를 지키지 않고 그 반대로 가여운 마음으로 우리에게 다가와 온유한 마음으로 우리 삶을 어루만져 치유해주시는 분임을 보여준다”며 “이런 의미에서 하느님은 중대한 위법자”라고 비유했다.
사회적 편견은 ‘불경한 사람, 죄인, 위선자’와 같은 말들로 사람들을 갈라놓는다.
교황은 이같이 말하며 “우리 모두는 죄로 인한 부끄러움, 모욕으로 인해 자기 안에 갇혀 하느님과 이웃으로 향하는 문을 잠궈버리는 상처, 실패, 고통, 이기심을 경험할 수 있지만, 하느님께서는 우리 마음을 열고자 하신다”고 설명했다.
교황은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은 추상적인 개념이나 교리가 아니라 인류의 상처에 스스로 ‘감염’되어, 우리 상처를 만지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분임을 선포하는 것”이라고 다시 ‘우리 옆에 계신 하느님’의 모습을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오늘 복음을 통해 자기 평판과 사회적 관습을 이유로 자기 고통을 숨기거나 남의 고통을 외면해서는 안된다고 다시 한 번 당부했다.
교황은 “나병환자의 위법행동처럼 우리도 용기를 내어 있는 그대로 예수께 나아가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예수님의 아름다운 포옹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예수의 위법은 관습을 뛰어넘고, 편견과 상대방의 삶에 끼어들면 안 된다는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게 해주는 사랑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