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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죄를 밝히 드러내 보이시는 성령 - [이신부의 세·빛] 회칙「생명을 주시는 주님」(Dominum et vivificantem) 제2장 해설
  • 이기우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21-03-19 16:01:16
  • 수정 2021-03-19 16: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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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4주간 토요일(2021.3.20.) : 예레 11,18-20; 요한 7,40-53 



▲ (사진출처=IOC/MILOS BICANSKI)


하느님의 첫 창조 사업은 우주와 생태계를 조성하시고 이를 돌볼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지닌 육신 생명을 창조하시는 일이었습니다. 이 물리적이고 생리적인 창조에 대해 인류가 노력한 성과로 만들어낸 응답이 우리가 지금 누리는 물질문명인데, 한편으로 물질적인 차원에서 놀라운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만, 정작 창조주 하느님과는 다분히 엇박자를 내는 수준입니다. 


이제 하느님께서는 날로 죄가 늘어가는 인류 문명에 대응해서, 성자 예수님을 보내시어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게 하시고 더욱이 결정적으로는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 인간이 영을 받은 혼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신 후에, 성령을 통하여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고자 하십니다. 그래서 인간은 영적으로 하느님과 소통하는 사랑의 문명으로 응답해야 할 처지입니다. 


무릇 모든 나라에는 백성이 있어야 하듯이, 성령께서 주도하시는 이 두 번째 창조 사업, 즉 새 하늘과 새 땅은 당신의 나라를 세우시는 것이기 때문에 하느님의 백성이 필요합니다. 이 나라를 처음에 선포하신 분은 예수님이셨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거부하는 바람에 하느님의 백성을 온 세상에서 모으시는 일과 그 백성에게 걸맞는 의식을 갖추게 하시는 일은 성령께 맡겨졌습니다. 창조 사업에 있어 성자와 성령의 역할교대 작업은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습니다. 


죽음을 앞두시고 열두 제자와 함께 최후의 만찬을 나누신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다락방에서 당신 생애에 있어서는 커다란 비밀이기도 하고 죽음을 앞두신 입장에서는 엄청난 숙제이기도 한 사실을 한 가지 밝혀 주셨습니다. 


비밀이라 함은 구세주로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 왜 그렇게 짧은 생애 동안만 그것도 억울하기 짝이 없는 처지에서 변변한 저항도 못하신 채로 떠나셔야 했는지에 관한 것이고, 숙제라 함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도 시원치 않고 숫자도 겨우 열한 명으로 남은 제자들이 과연 어떻게 자신들을 추스르고 그 막중한 파스카 과업과 교회 건설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셨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사실 이 두 문제가 남아 있었기 때문에 죽음을 예고하시는 스승도 이 예고를 듣던 제자들도 이 자리에서의 분위기는 착 가라앉은 채 마음들이 모두 심란해 있었습니다(요한 14,1).


이를 눈치 채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희망과 안도감을 주시고자 바야흐로 오실 성령을 알려 주시며 약속하셨는데, 이 약속이 이루어지자면 당신이 먼저 떠나셔야 했습니다. 이 떠나심은 십자가 희생으로 인한 죽음이었는데, 이것이 성령 강림의 대가(代價)이자 전제(前提)였습니다 (요한 16,5.7-8). 


그러니까 교회의 보호자요 진리의 인도자로서 오실 성령께서 제자들을 통해 하느님 나라의 복음선포를 계속 이어가도록 하실 것이기 때문에, 그토록 짧은 생애는 물론 제자들이 아직 믿음이 미덥지 못한 것도 성자의 임무 수행과 성령과의 역할교대 작업에 걸림돌은 아니었던 셈입니다. 성령께서 보충하시고 인도하실 것이기 때문에, 당신이 떠나시고 성령께서 오시는 것이 제자들에게 더 이롭다고 하신 것이시지요.


그래서 남은 제자들이 반드시 명심해야 할 사항은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되는 일에 따라오는 가르침, 즉 죄와 의로움과 심판을 이해하는 것이었습니다. 


첫째,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하느님으로서 믿지 않고 배척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이름이 널리 알려진 오늘날에도 그분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부지기수로 많고, 심지어 믿기는 믿지만 그분을 하느님으로까지 믿지는 않는 그리스도인들도 적지 않은데, 우리가 그들더러 죄인이라고 단정을 짓고 그렇게 말하는 일은 그다지 현명하고 옳은 선교적 판단이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믿지 않는 것 자체가 죄라는 것은 분명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그분을 하느님으로 믿어야 그분이 보내시는 성령께서 우리를 이끌어 주실 수 있습니다. 


둘째, 그렇기 때문에 죄에서 벗어난 믿음의 백성이 사회적으로까지 의로움의 실체를 증거하고 이를 하느님의 빛으로서 세상에 비추어주어야 합니다. 죄투성이 현실에서 의롭게 살자면 십자가 희생이 필연적으로 따라옵니다. 그래도 그 의로움이 새 하늘 새 땅의 창조입니다. 


셋째, 이렇게 믿음의 백성이 의로움을 사랑의 문명 수준으로 사회적으로 드러내서 증거할 수 있을 때, 이 자체가 세상에 대한 심판이 된다는 점입니다. 힘을 우상처럼 숭배하는 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그 같은 우상숭배 행위 자체로 하느님으로부터 버림받는 심판을 당하는 것임을 사랑의 문명이 드러내게 됩니다(요한 16, 9-11).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초막절 축제에서 성령을 염두에 두시고,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 말씀대로 ‘그 속에서부터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올 것”(요한 7,37-38)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도 군중은 섣불리 믿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며 혼란에 빠졌지만, 영악한 수석 사제 사두가이들과 율법 학자 바리사이들은 이제 내놓고 성전 경비병을 보내서 그분을 잡아가두려고 하였습니다.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한 죄악이었습니다. 


성령께서 함께 계시면 이미 여기가 천국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랑의 문명이 내 마음과 내 몸과 내 인간관계와 내 활동을 통해서 시작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죄의 질서를 벗어나서 ‘지금’ 성령과 함께 산다는 현재의식, 그 의로움이 바로 ‘여기에’ 이루어진다는 현장의식 그리고 그 의로움의 심판이 ‘우리’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주체의식이 창조를 실현합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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