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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체제와 한 몸이었던 새마을운동, 이젠 끝낼 때 - (이원영) 사회대개혁지식네트워크 세미나
  • 이원영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21-07-13 16:34:58
  • 수정 2021-07-13 18:5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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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시대에 마을의 역할이 점점 커지고 있다. 생활기초단위로서의 마을이 건강해야 국토와 지구도 건강할 수 있기 때문. 한국현대사에서 ‘마을’이라는 말을 언급하면, 새마을운동을 빼놓을 수 없다. 요즘 들어 지구촌이 한국을 모델로 삼고자 하는 흐름이 도처에서 생기고 있는데, 새마을운동도 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게 과연 지구촌에서 본받을 만한 것인가에 의문이 있다. 우리끼리 문제점이 있을 때는 언젠가 바로 잡으면 되겠지 하는 생각에 덮어두고 있는 편인데, 이게 바깥으로 나간다? 그러면 얘기가 다르다. 


집안 체면이 있지, 손님들께 내놓을 수 없는 음식을 대접할 수는 없다. 평소 새마을운동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던 인사들이 지난 6월 29일, 서울 정동에서 사회대개혁지식네트워크(상임대표 우희종) 주최로 세미나를 가졌다. 제목은 <새마을운동의 진실, 그리고 의문>이다. 본고는 이를 취재한 것이다.


▲ 6월 29일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열린 세미나 모습. 김민웅교수가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 이원영


기조강연에 나선 김민웅 (전)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마을이 곧 미래’라는 말이 있다. 민주시민의 자발성에 기초한 마을 운동의 전개는 대단히 중요하다. 이와는 상반되는 존재가 새마을운동이다. 새마을운동이 내세우는 것은 근면·자조·협동 정신과 ‘잘 살아보세’였는데, 실상은 어떠하였는지 역사적 경로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유럽의 인클로우저 무브먼트가 봉건적 농총공동체를 해체하고 부랑자를 비롯해서 저임 노동생산력을 창출하는 구조가 되었는데, 우리도 이와 동일하게 그 농촌공동체의 희생을 전제로 하는 산업화전략의 모순이 드러나기 시작할 시기에 그 모순을 은폐하고 이들의 불만을 시혜적 지원과 의식개혁을 통한 자생구조 만들기라는 방식으로 호도했던 것이 새마을운동이다.”라고 그 본질을 설파한다.


새마을운동의 뿌리는 일제의 만몽개척이민사업


기실 새마을운동은 지금의 촛불정권 조차 비호해주고 있는, 군사정권시절 형성된 국가동원체제 이데올로기 사업이자 토건사업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 실제로 1973년 1월의 연두 기자회견에서 박정희는 ‘10월유신이라고 하는 것은 곧 새마을운동이고, 새마을운동이라고 하는 것은 곧 10월유신’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박정희의 말이 아니더라도 유신시대는 곧 새마을운동의 시대였다. 김교수는 그 뿌리가 일제강점기의 만주에 있음을 지적한다.


▲ 일제는 20세기 초반부터 본격적인 산업화와 가속화된 새마을운동은 전통적 마을공동체 정신을 변질시켜 유신체제의 몸통이자 하수인이 되었다. (사진출처=민족문제연구소)


“기본적으로 새마을운동은 국가총동원체제의 정체성을 가졌고, 일제의 1930년 만주침략 이후 본격화되었던 일제의 만주 프로젝트의 유사품이라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국민교육현장이 일제 강점기의 ‘민족개조론’개정판이었던 것처럼. 파시즘 정치로 피폐해지고 있던 일본 농촌의 문제를 외부로 돌려 이른바 ‘만몽(滿蒙)개척이민사업’을 시작했다. 이때 만주군 장교로 있으면서 이 과정을 몸소 경험한 박정희와 그의 만주인맥은 바로 이 정치프로그램을 새마을 운동이라는 농촌 재활전략으로 적용했다. 당연히 파시즘적 총동원체제로 추진했던 것은 필연이었다.” 라는 지적이다.


이어서 발제에 나선 황연수 동아대 명예교수(경제학)은 한국현대사에서의 새마을운동의 지위를 종합적으로 조명했다.


“초창기와는 달리 1973년 이후 추진된 새마을사업은 유신정권이 추진해오던 사업들을 새롭게 명명해 추진한 것들이 많았다. 실적위주의 과당경쟁도 있었다. 어쨌건 새마을운동이 농민들의 잘 살아보겠다는 의지를 자극하여 농촌의 외형적 모습을 일신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부의 지원을 기초로 하면서도 농민들의 노동력과 자금을 반강제로 동원하는 방식이었다. 실제로 1971∼78년 사이 새마을운동에 투하된 총투자액(1971년 불변가격 기준)은 8천 400억 원이었는데, 그 중 정부투자는 전체의 27.5%인데 비해 주민부담은 71.4%나 차지하였다. 결국 새마을운동은 소득증대에는 별로 기여하지 못하고 겉치장에 주력함으로써 과중한 농민부담과 소비성 조장으로 농가수지가 악화되고 농가부채가 급증했다. 1978년 이후 급진적인 ‘개방농정’으로의 전환에 따른 가격파동과 자연재해 등으로 발생한 농민피해 때문에 정부와 농협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서 농민운동이 전국으로 빠르게 퍼져나갔고 유신체제가 종말을 고하기 이전부터 새마을운동은 급속도로 농민적 지지기반을 잃고 추동력을 상실했다. 실제로 당시 어느 조사에 의하면, 새마을운동이 ‘아주 성공적이었다’가 5.7%, ‘다소 성과가 있었다’가 21.7%, ‘전혀 성과가 없었다’가46.7%, ‘모르겠다’가 25.9%였다.”


성과가 없었던 새마을운동


이런 신뢰추락이 작동하였는지 1979년에 유신정권은 막을 내리게 된다. 이어서 황교수는, 새마을운동의 성격을 최문성의 주장을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다. 


“‘새마을운동은 독점자본의 이해관철과 농촌 전반의 통제 메커니즘이라는 이중의 기능을 갖고서 농촌을 행정적으로 조직하면서 농민운동을 원천적으로 봉쇄하였다. 새마을운동은 봉건적 온정주의적 이념(근면·자조·협동)을 전파하면서 일면 수직적 이데올로기(충효 등)를 광범위하게 유포시키는 국가정책의 충실한 수행 기제로서 ‘대항농민운동(Counter Peasant Movement)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토론에 나선 박승옥 햇빛학교 이사장은 농촌에서 오랫동안 지역활동을 해오던 인사로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1950년대와 60년대의 한국 농촌 현실과 농민운동에 대한 재구성과 분석이 필요하다. 오늘날의 농촌과는 완전히 다른 이른바 전근대의 소농 사회, 마을공동체 사회였다. 리동 농협운동과 구판장 설립 운동부터 신협운동 등 청장년들의 다양한 풀뿌리 자립자치운동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최근 세상을 떠난 청년 백기완의 나무심기 운동도 그 한 예다. 민족경제론의 박현채 그리고 원주의 장일순 그룹은 지학순 주교와 함께 강원도 지역의 신협운동과 다양한 지역사회 개발 운동을 펼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풀뿌리 자립자치의 민간 마을공동체운동은 박정희 쿠데타 이후 탄압을 받았다. 게다가 압축성장의 급격한 자본주의 산업화와 함께 소멸되어 가고 말았다. 박정희는 농협법을 제정해 리동 농협운동을 흡수하고 농협을 관변단체로 만들어 버린다. 심지어 박정희 정권은 농협 임원을 일제강점기 친일파들로 임명하기까지 했다.”


그러니까 전통을 계승하고자 했던 마을공동체 운동의 흐름까지 짓밟아 버리는 탄압을 자행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박이사장은 그 이유로, “구 소련이 아파트를 지으면서 집에 식당을 만들지 않고 공동 식당만을 지었던 것도 가족이란 자유의 공간을 허용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독재정부가 국가로부터 독립된 종교단체를 국가에 종속된 관변 종교단체로 굴복시키지 못하면 독재정부에는 균열이 생긴다. 일본제국주의가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면서 불교를 완전히 총독부 관리 아래 두고 스님들을 강제로 결혼시켜 대처승 제도를 시행한 것은 이 때문이다. 독재를 제대로 하려면 인민의 자립자치 공간을 하나도 남겨 두어서는 안된다. 농민들의 자발성, 이것을 낚아채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농촌지역의 기반조직으로서 관변단체로 흡수해 버린 것이다.” 라고 갈파한다. 즉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마을자치의 정체성을, 새마을운동이라는 유신체제의 몸통이자 하수인으로 변질시켰다는 것.


이어서 토론에 나선 하승수 농본 법률센터 대표도 이와 비슷한 논평을 한다. “한국의 농촌에는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던 마을자치의 전통이 있었다. 그 전통이 남아 있었기에 관주도의 하향식으로 진행되었던 새마을운동이지만 주민참여라는 측면도 나타날 수 있었다. 새마을운동의 성과라고 주장되는 것은, 유신정권의 성과라기보다는 한국 농촌마을의 자치력이 이룬 성과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박정희 정권 이전부터 존재해왔던 마을자치의 역사를 복원하고 재평가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농민들에 내재되어 있는 풀뿌리 공동체 민주주의의 잠재력을 미리 잠식해서 관변운동으로 징발했다고 할 만하다. 한국현대사에 정통한 한홍구 교수가 새마을운동에 대해 기고한 글을 보면, “‘가난한 농민의 아들’ 구호와 각하에게 부름받았다는 사실은 순박한 농민들을 감동시켰다. 땅·노동력을 조건없이 내놓았다. 장기집권을 위해 시골을 겨냥한 박정희에겐 뜻밖의 성과였다. 정부는 마을에 시멘트 나눠주고 성과를 못 내면 지원을 끊었다. 경쟁심이 불타오르면서 두레·품앗이 공동체가 깨졌다. 게다가 박정희의 공업화는 그들을 더 힘들게만 만들었다.” 라고 설명하는 대목이 나온다.


기록에 보면, 새마을운동은 1970년 정부가 전국 3만5000개 마을에 각각 300여 포대의 시멘트를 무상으로 나누어주면서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그 사연이 재미있다. 당시 박정희의 정치자금을 관리하던 쌍용시멘트 김성곤(당시 공화당 재정위원장)의 호소로 ‘남아도는 시멘트를 부진한 새마을가꾸기운동에 돌릴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라’는 박정희의 지시라는 것.


그래서 2008년부터의 이명박정권의 4대강공사가 토건자본의 횡포에 의한 것이라고 한참 물의를 일으킬 때, 바로 새마을운동이 그 시초라는 말이 떠돌았다.


새마을운동 이전의 마을자치의 역사를 중시해야


▲ 1972년 박정희 대통령 새마을시찰 (사진출처=대통령기록관)


하승수 대표는 계속해서 증언한다.


“박정희정권은 면ㆍ읍을 지방자치단체가 아니라 행정의 하부조직으로 전락시켰다. 이전에는 면장, 읍장을 직선으로 선출하고, 면의회와 읍의회도 주민직선으로 선출해서 면ㆍ읍이 지방자치단체로 역할을 했었다. 이게 농촌지역 지방자치의 보편적인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도 그렇고, 유럽도 면ㆍ읍 정도의 지역을 농촌의 지방자치 단위로 하고 있다. 박정권은 이 자치를 중단시킨 것이다. 그 결과 군 중심으로 돌아가는 한국의 농촌지역 지방자치는 비민주적인 내부지배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한편, 무분별한 개발광풍으로 이어지면서 농촌마을을 파괴해 왔다. 


이후 1991년 지방자치 부활당시에서도 군(郡) 단위로 부활되면서 지금까지도 면ㆍ읍단위의 자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심지어 농촌지역 지방자치단체 내에서도 농촌마을과 소농은 홀대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만약 면ㆍ읍의 자치가 살아있다면, 한국의 농촌은 지금보다는 ‘내발적 발전’의 방향으로 가고 있을 가능성이 높고, 농촌마을의 활력도 살아있을 것이다. 따라서 박정희정권이 면ㆍ읍 단위의 지방자치를 말살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하향식ㆍ관주도의 새마을운동을 추진한 것이 지금까지 농촌지역의 민주주의와 자치를 망치고 있다.”


그렇다. 과거 새마을운동 이전에 읍면단위의 자치제도가 실현되고 있었다. 농촌지역의 동일 수계유역을 중심으로 하는 기초적 동네단위가 리(里)이고 그위에 읍면(邑面)이 있는데, 그 정도라면 생태적 방식의 농사를 추진하는데 긴밀한 동일수계의 공동체적 자치체가 운용될 수 있다. 온실가스를 저감할 수 있는 토양력 회복의 농사를 추구하는 기초단위로 성립되는 것이다. 


현재의 도농통합시나 군(郡)은 통치의 단위로는 기능하겠지만 협치(거버넌스)의 대상으로는 지나치게 크고 결속력이 없어서 기후위기대응에는 부적합하다. 읍면위주의 자치체가 활성화된다면, 군수는 따로 선출할 필요가 없다. 명예직에 가깝도록 바뀔 것이니 읍면장이 반년씩 돌아가면서 맡거나 군의회에서 맡으면 된다. 당시의 자치 단위로 회복한다면 제대로 된 마을공동체로서의 기능이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하승수 대표는 이어서 새마을사업과 관련한 최근 상황이 우려스럽다고 걱정한다.


“1970년대에 진행된 새마을 운동과 그 이후 지금까지 남아 있는 새마을운동조직을 구분해서 평가할 필요가 있다. 새마을운동은 박정희 정권에서 시작했지만, 현재의 새마을운동 조직은 신군부의 쿠데타로 헌정이 중단된 1980년 12월 13일 <새마을운동조직육성법>이 국가보위입법회의에서 통과되면서 시작되었고, 이후 여러 특혜를 받으면서 도시 지역에까지 깊이 뿌리내렸다. 그리고 보조금지원, 새마을회관 건립비 지원 등 각종 특혜를 누려왔고, 새마을 조직을 통로삼아서 지역 토호들이 지방의원으로 진출해 오기도 했다.” 


그는 이어서 그 사례를 증언한다. “특히 경북지역에 ‘새마을세계화재단’이 설립되었고 지방자치단체들의 출연금이 매년 이 재단으로 들어가고 있는데, 이 구조가 근본적으로 문제다. 게다가 재단 운영의 투명성도 의심받고 있다. 제가 정보공개청구를 해서 받은 새마을세계화재단의 결산자료를 보면, 경상북도와 시군으로부터 최근 10년간 약 1천억원 가까운 지원을 받은 것으로 나온다. 더욱 문제인 것은, 운영은 투명하지 않다는 점이다. 정산서류도 없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용됐는지를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다. 가령 새마을세계화재단은 2019년에 8개국 34개 마을(아프리카 3개국 9개마을, 아시아 5개국 25개 마을)을 지원했다고 하는데, 그 예산이 실제로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행정사무감사 과정에서 많은 문제점들이 지적된 바 있다. 사실을 밝히고 바로잡아야 한다.” 


이 문제는 새마을운동의 정체성과 별개로 특혜와 공적 자산의 유용에 관한 것이라서, 사실이라면 심각한 사건이다. 왜 이런 부조리가 만연하고 있는 것일까.


기후위기시대를 헤쳐가려면 새마을운동을 해체하고 마을자치의 공동체 정신을 되살려야


새마을운동을 돌이켜보면,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이민진의 한국현대사를 그린 소설 ‘파친코’ 첫 문장이 생각난다.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그렇다면 새마을운동이 전통적인 마을공동체 정신을 훼손한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은 길일까? 박승옥 이사장이 갈파한다.


“현재의 풍요는 미래세대와 지구호의 다른 생명체와 함께 나누어야 할 자원을 약탈한 약탈경제의 댓가다. 인간의 몸과 마을까지 상품화해 영혼까지 팔아 넘긴 극단의 마몬 경제의 결과다. 임계점을 이미 넘어 선 기후위기와 불평등은 심각한 정도를 넘어 혁명을 기다리고 있다고 본다. 하루라도 앞당겨야 할 시급한 기후위기 극복 체제로의 생태적 전환은 지금의 기득권 엘리트 정치 체제로는 불가능하다. 


국가와 사회를 바꾸는 한국의 기후정치는 풀뿌리 지역에서부터 시작될 수밖에 없다. 밑바닥 풀뿌리 지역에서는 연대와 연합의 기후정치 활동을 벌일 수 있는 근거지로서 수많은 작은 네트워크와 지역 소공동체들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위기와 동시에 들이닥칠 식량위기 앞에서 인민이 생존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은 마을공동체와 농사다. 구소련이 식량문제로 망하고 국가의 식량배급 체제가 작동하지 않을 때 그나마 구소련 인민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다차의 존재와 공동체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런던의 시민들이 독일의 공습 아래 식량 공급 체계가 마비되었을 때 생존해 나갈 수 있었던 것도 도시텃밭으로 농사를 지었기 때문이다. 구소련이 무너지고 난 뒤 쿠바에 닥친 식량위기 상황 속에서 쿠바 인민들이 가난하지만 그대로 아사자가 나오지 않았던 것은 국가의 지시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텃밭을 만들어 식량 작물을 심었기 때문이다. 기후위기 시대 노아의 방주는 다름 아닌 도농 공동체와 소농의 농업사회다.”


기실 이런 소농의 공동체 농업사회는 지구촌의 보편적 모델이 될 수 있다. 물과 토양의 생태적 관계를 소중히 여기면서 어떠한 위기에도 생존해갈 수 있는 이런 공동체가 활성화 되어야, 온실가스를 근원적으로 줄여가면서 기후위기의 해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김민웅 교수도 기조강연내용에 이런 뜻을 담았다.


“새마을운동은, 농촌의 생태적 환경을 전근대로 낙인찍고 이를 폐기하는 것이 근대로 가는 길이라고 한 대목은 우리에게 소중한 것을 막무가내로 지워버린 뼈아픈 역사다. 지향해야 할 마을공동체 운동의 본질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이 운동에 가장 선도적으로 눈을 뜬 정치인은 작고한 박원순 시장이다. 박시장은 중앙과 지방정부가 자발적 환경이 가동할 수 있도록 지원한 무대 위에서 시민들이 자신들의 꿈을 이루어내는 방식을 주도하도록 노력했다. 그러나 이 역시도 지방정부의 하부조직이 가지고 있는 관료적 경직성과 성과주의 그리고 마을 운동의 주체 형성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어왔다. 


이젠 지구위기 대응의 근거지를 마을 단위로 새롭게 확보해나가야 한다. 이제 우리는 기후위기라는 인류멸종의 재앙 앞에서 마을 공동체의 복원이 소득증대니 하는 수준이 아닌, 지구촌 살리기의 너무나 중요한 근거지의 확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마을 공동체의 공공성 확보, 공공재 커먼스의 확대를 이루기 위한 근거지로 만드는 작업, 이것이 우리의 미래 프로그램의 기조가 아닐까.”


그렇다. 유신체제와 한 몸이었던 새마을운동, 이젠 끝낼 때가 되었다. 더욱이 다른 나라에 전파해서는 더욱 안 된다. 그건 독재적 민중동원체제를 전파하는 것이요 토건부패의 메카니즘을 알려주는 것이다. 이젠 중단시키고 없애야 한다. 민족이 물려온 풀뿌리 마을공동체 정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이원영(수원대 교수, 생명·탈핵실크로드순례단장)


[덧붙이는 글]
이 글은 < 미디어오늘 >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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