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침공으로 벌어진 ‘우크라이나 위기’를 두고 러시아 정교회가 ‘본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하나’라는 논리로 러시아의 침공을 두둔하고, 이번 사태 해결에 서방 국가들이 참여하는 것을 비난했다.
지난 27일 미사 강론에서 러시아 정교회 수장 키릴 총대주교는 우크라이나를 “우리와 가까운 형제 나라”라고 칭하며 “우크라이나의 현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언제나 러시아와 러시아 정교회의 일치를 공격해온 악의 힘이 승리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하느님 보시기에 좋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키릴 총대주교는 모스크바 총대교구청이 관할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정교회 구성원들을 향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우리 형제들의 피로 물든 끔찍한 선이 그어지는 것도 하느님 보시기에 좋지 않은 일”이라며 “우리는 평화로 돌아가, 우리 민족들 간의 형제애적 관계를 다시 세울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러시아 정교회 측은 우크라이나 사태의 해결에 서방 국가들이 끼어드는 것에 큰 반감을 드러냈다. 이와 동시에 러시아 정교회는 역사적으로 우크라이나 민족이 러시아 정교회에 포함되어 있다고 지적하면서, 러시아의 침략적 성격의 침공으로 촉발된 우크라이나 사태를 러시아 땅에서 벌어진 민족 간의 분쟁으로 치부했다.
키릴 총대주교는 “주님께서 동족상잔으로부터 러시아 정교회라는 같은 공간에 속한 민족들을 구해주시기를 기도한다”며 “음침하고 적대적인 외부 세력들에게 우리를 비웃을 기회를 주지 말자, 어떻게 해서든 우리 민족 간의 평화를 지키고 이 일치를 파괴할 수 있는 모든 외부 행동으로부터 우리 공동의 역사적 조국을 지키자”고 주문했다.
우크라이나가 본래 러시아와 하나라는 러시아 정교회의 주장은 러시아 정교회(루스 정교회)가 오늘날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형성되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키릴 총대주교도 강론에서 "주님께서 러시아 영토를 지켜주시기를 기도한다"며 "내가 '러시아'라고 말하는 것은 러시아 땅의 근원을 말하는 것으로 여기에는 벨라루스, 러시아, 우크라이나를 비롯해 여러 민족들이 포함되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후로 러시아와 그 일대 지역에서는 러시아 정교회가 대다수였다. 하지만 2014년 우크라이나 영토였던 크림 반도를 러시아가 무력으로 편입한 사태 이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갈등이 커지면서 2018년 우크라이나 정교회는 두 개로 분열됐다.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의 그리스도교 종파는 총 세 개로 구성된다. 먼저 우크라이나 그리스 가톨릭교회가 있다. 이는 로마가톨릭교회와 완전한 일치를 이루는 교회다.
다음으로는 우크라이나 정교회가 있다. 우크라이나 정교회는 러시아 정교회 산하(모스크바 총대주교청)에 있는 정교회와 동방 정교회 전체를 대표하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청이 인정하는 정교회로 나눠진다.
전세계 정교회를 대표하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청이 2018년 우크라이나 정교회 일부를 러시아 정교회와 독립된 별도의 정교회로 인정하면서 러시아 정교회는 세계 정교회와 성사단절이라는 극도의 조치를 취하고 심각한 대립을 이어왔다.
세계 정교회가 독립교회로 인정한 우크라이나 정교회는 최근 푸틴을 비판했다. 지난 27일 우크라이나 정교회의 수장 예피파니 1세(Epiphanius I) 키예프 총대주교는 푸틴을 히틀러에 빗대어 강도 높게 비판했다.
예피파니 1세는 “적그리스도의 악령이 러시아의 지도자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며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히틀러가 그랬다면, 오늘날에는 바로 푸틴의 모습이 그러하다”고 비판했다.
교황청 국무원장 파롤린 추기경은 최근 인터뷰에서 그리스도교 종파 간 분열에 대한 우려를 표하면서도 일단은 사태의 진정에 기여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27일 이탈리아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교회 역사에서 자치주의가 없었던 적이 없고, 이는 수많은 고통스러운 분열로 이어져왔다”며 그럼에도 “서로 상처를 주었던 기억을 미뤄두고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정교회 수장들의 호소에서 긍정적인 징표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