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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사회교리, 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인가
  • 이기우
  • 등록 2022-08-26 16: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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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모니카 기념일(2022.8.27.) : 1코린 1,26-31; 마태 25,14-30


사도 바오로는 코린토에서 만난 교우들에게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부르심에 대해 상기시키면서 그 부르심에 담긴 하느님의 선택을 알려주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부르심과 선택에 따라서 우리가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지에 대해 가르치셨는데, 그 가르침의 내용이 탈렌트의 비유였습니다. 


코린토는 항구 도시였고, 당시 동방에서 수탈된 물산들이 알렉산드리아 항구에서 배에 실려지면 로마로까지 가기 전에 반드시 중간 기항지인 코린토에 들러야 했으므로, 교역이 활발했는데 그 결과로 부유해진 사람들이 많았고 또 윤리적인 타락상도 극심했었습니다. 따라서 사도 바오로는 지혜롭다고 자부하거나 유력하다거나 좋은 가문 출신의 부유한 코린토인들에게는 선교를 포기하다시피 하고는 배우지도 못하고 내세울 것도 없고 가문도 초라한 코린토인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즉, 가난한 이들을 선택한 것이지요. 

 

그런데 사도 바오로는 자신의 이러한 선택 행동이 자신의 판단이나 경험에 따른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택에 따른 것이었다고 토로합니다. 아마 그가 그 반대로 했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그가 숙고하여 깨달은 예수님의 뜻도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야말로 하느님 나라를 세상에 세우는 지름길이라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19세기 이래로 가톨릭교회가 공식적으로 천명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선택’은 예수님께서 공식적으로 밝혀주신 하느님의 계시입니다. 교회는 마치 2천 년 동안 믿어오던 천동설 대신 숱한 의심과 시행착오 끝에 지동설을 믿게 된 것처럼, 2천 년 동안 가난한 이들을 자선의 대상으로만 삼아 오다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열리고 나서야 그들이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하느님께로 이끌어주는 천사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이들의 사회적 처지를 기준으로 법률과 정책을 개선하는 것이 인도주의적인 문명사회를 이룩하는 모범 답안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2천 년 만에 비로소 알아들은 이 계시 진리를 이 복음화 제3천년기에 제대로 실천할 수 있게 되었다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그리스도인들을 격려해 주었습니다(회칙 ‘교회의 선교 사명’, 1항). 예수님께서 이미 비유로 일깨워주신 지혜, 즉 탈렌트의 비유를 사도 바오로는 일찌감치 자신의 사도직 생활과 선교 활동으로 응답하였습니다. 


이방인들에게, 그것도 가난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겠다는 지향으로 그 어떠한 보수도 받지 않고 노동으로 자신에게 필요한 경비를 조달하면서 자신의 삶을 사도직으로 승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복음을 전하려던 선교 활동에서도 손쉽게 세례를 주지 않고 공동체를 형성하게 해서 하느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삶을 살도록 자신의 모범으로 감화를 주고자 애를 썼기 때문입니다. 


그가 체험한 그리스도의 부활은 신비적인 것이 아니라 이렇듯 실제적인 십자가 체험 속에서 이룩된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를테면 다섯 탈렌트를 받아서 열 탈렌트로 늘린 사도입니다. 


우리들 그리스도인들과 우리 교회 역시 오늘 미사에서 들려오는 말씀의 도전과 사도 바오로의 응답 그리고 예수님의 비유 가르침에서 배우는 바가 큽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보편교회의 주목과 여망을 받고 있는 ‘잘 나가는 교회’입니다. 하지만 지난 2014년에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간곡하게 충고했듯이, 모든 분야에서 좋은 여건을 이룩했음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가 되어야 하는 숙제입니다. 


가난한 이들을 불쌍한 ‘거지’쯤으로 취급하고 장애인들을 2등인간처럼 여기는 ‘천동설적 오류’는 우리 사회는 물론 우리 교회를 발달장애 교회로 만들 뿐입니다. 리비히가 발견해 낸 ‘최소량의 법칙’이 말해주듯이, 생명체에 필요한 필수 영양소들 가운데 최소량이 투입된 꼭 그만큼만 생장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에도 가난한 이들을 돕기 위한 ‘특별 헌금’도 때마다 실시하고, 또 이렇게 마련된 재원을 합리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사회복지 차원의 노력도 커졌지만 문제는 이러한 봉헌과 노력이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이기 이전에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의 계시 진리를 따르는 길이 된다는, 결국 우리의 구원을 위한 길이라는 의식이 모자랍니다. 


라틴 아메리카 주교들은 1968년과 1979년의 총회를 통해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을 결의하고, 이 분야에 가장 우선적으로 인력과 자원을 배치하겠다고 천명했습니다. 탈렌트의 비유를 실천하겠다고 다짐한 셈입니다. 


이러한 다짐의 목소리에 교회역사상 처음으로 교황청을 움직여서 교황의 회칙에서도 그 메아리가 나오게 만들었습니다. 오늘날 가톨릭 사회교리의 기본 원리로서, ‘인간의 존엄성’에 버금하는 명제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이 확고하게 자리잡게 된 배경이 이것입니다. 


이 명제는 모든 사람이 하느님을 닮도록 창조되었으므로 존엄한 존재라는 ‘인간 존엄성’ 원리에 따라서 모든 재화는 이를 창조하신 하느님의 것이므로 그분의 뜻에 따라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분배되어야 한다는 ‘재화의 보편성’ 원리를 발견한 데 따라 나오게 된 것입니다. 하느님의 선택에 따라서 우리의 탈렌트를 쓰는 응답이 필요합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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