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바늘구멍을 통과한 낙타’형 인간, 자캐오
  • 이기우
  • 등록 2022-10-29 13:31:51

기사수정



연중 제31주일(2022.10.30.) : 지혜 11,22-12,2; 2테살 1,11-2,2; 루카 19,1-10


오늘 복음은 부유했지만 외톨이로 지내야 했던 자캐오가 뜻밖에도 예수님을 만난 덕분에 횡재한 기분으로 화끈하게 회개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런가 하면 제1독서인 집회서는 “온 세상도 하느님 앞에서는 천칭의 조그마한 추와 같고, 이른 아침 땅에 떨어지는 이슬방울 같다.”고 합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시는 창조주 하느님의 사랑은 크고 높은 데 비해서 그분의 손에서 지음 받은 피조물의 운명은 얼마나 가벼운지를 일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오로는 제2독서에서 피조물의 유한한 운명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생명에로 불리운 신앙인의 특권에 대해 일깨워줍니다. 이 특권을 가능하게 하고 유효하게 하는 유일한 조건은 오직 믿음뿐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자캐오는 예수님께서 만나신 인물 중에 매우 예외적이고 이례적인 인물입니다. 예수님을 쫓아다니며 감시했던 바리사이들도 부자였지만 예수님을 의심의 눈초리로만 보면서 기회만 있으면 트집을 잡기 일쑤였는데 비해서, 자캐오는 부자이면서도 예수님을 기쁘게 맞아들였습니다. 


어느 날 그분의 명성을 듣고 영원한 생명을 얻고 싶어서 예수님을 찾아왔던 부자 청년도 어려서부터 계명을 잘 지켜왔노라며 자신만만해 했지만 가난한 이들에게 재산을 나누어주고 와서 당신을 따르라는 말씀을 듣자 울상이 되어 떠나갔는데, 그래서 그를 보고 예수님께서는 “재물을 많이 가진 자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그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더 쉬우리라.”(루카 18,24-25)고 부자의 회개와 천국 입장 가능성을 비관하셨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러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겠는가?”하고 반문하자 예수님께서는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것이라도 하느님께는 가능하다.”(루카 18,27)고 일깨워주셨습니다. 그런데 과연 재산이 많았으면서도 예수님을 따른 자캐오의 경우에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여 천국에 들어간 경우였고, 하느님께서는 불가능한 일이 없음을 실증한 사례였습니다. 


자캐오는 돈을 많이 긁어모았지만, 예리코의 세관장이었던 직업상 그는 공적인 기피인물로 낙인찍혀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좋아하지 않아서 외톨이로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수님께서 그가 사는 예리코에 오셨습니다. 하지만 키가 작은 게 문제였습니다. 그분을 보려는 인파가 너무 몰려서 군중에 가려 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꾀를 내었습니다. 마을 한복판에 서 있던 돌무화과 나무에 올라간 것입니다.


그 덕분에 예수님의 눈에 띈 자캐오는 그분을 맞아들이고자 했던 마음을 그분께 읽히고 말았습니다. 자캐오가 아무런 청도 하지 않았지만, 예수님께서는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고 알아서 제안하셨습니다. 이를 바라보던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그의 집에서 머무시겠다는 말씀을 듣고 투덜거렸습니다. 직업상 공적인 기피인물이었고 율법상으로도 죄인이었던 그의 집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율법상 부정을 타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반응에도 아랑곳없이 마냥 기뻤던 자캐오는 자기 집에 오신 예수님께 활짝 열린 마음으로 회개한 마음을 드러내었습니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루카 19,8). 구약성경의 율법에 따라 보더라도 ‘네 곱절’로 갚겠다는 것은 규정을 훨씬 뛰어넘는 후한 배상이었습니다. 자캐오가 이렇게 알아서 후한 배상을 하겠다고 제안한 이유는 세관장 노릇을 하면서 자기 자신도 잘 기억나지 않는 횡령도 많을 것이라고 생각해서였을 것입니다. 


그의 마음이 예수님 덕분에 활짝 열린 것 같습니다. 아무튼 모처럼 화끈한(?) 참회자를 만나신 예수님께서도 화끈하게 공개적으로 선언하셨습니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루카 19,9). 여기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말은 혈통을 떠나서 하느님께 구원받은 존재임을 뜻하는 성서적 표현입니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은 것이지요. 


자캐오의 이야기는 네 복음서 중 루카만 전하고 있습니다. 루카가 이 이야기의 바로 앞에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수난과 부활을 세 번째로 예고한 기사를 배치한 것으로 보아, 그는 수난과 부활의 신비를 깨달은 제자의 전형으로서 자캐오를 제시한 것 같습니다. 그가 존경받던 인사가 아니라 그 반대로 경멸받던 세관장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대단한 파격입니다.  


무릇 재산이란 가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지고 있다가 쓰지 못한 재산은 죽으면 단 한 푼도 가지고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준다 해도 문제는 남습니다. 일종의 불로소득 같은 그 유산 때문에 자녀들이 재산다툼을 벌이기 때문입니다. 유산을 많이 남겨준 가정치고 화목한 가정을 저는 아직까지 보지 못했습니다. 


진정한 자기 재산은 자신의 자유의지로 쓴 것, 가난한 이들에게 나눈 것, 필요한 이들에게 베푼 것만이 진정으로 자기 재산이라고 하느님께 인정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사람을 평가하면서 그가 얼마나 벌었고 그래서 자신을 위해 얼마나 쓸 수 있는지를 보지만, 하느님께서는 그가 다른 사람을 위해 얼마나 쓸 수 있었는지를 보신다는 것이 루카가 자캐오 이야기를 통해 주려고 했던 교훈입니다. 


루카는 라자로와 함께 등장했던 부자의 이야기를 16장에 소개한 바 있었는데, 그 부자와는 매우 대조적으로 운명이 엇갈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돌아온 탕자를 기다리던 아버지처럼, 또는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되찾은 양치기처럼 또는 잃어버린 은전을 되찾은 부인처럼(루카 15장), 어렵사리 회개한 자캐오를 아주 기쁘게 맞이하셨습니다. 


루카만이 취재하여 발굴해 낸 두 부자 이야기, 즉 회개한 자캐오와 회개를 거절한 익명의 부자의 운명은 하늘과 땅 차이로 갈렸습니다. 


피조물인 인간에게 가장 귀한 존재는 창조주 하느님이시고, 가장 필요한 일은 하느님께서 마련해 놓으신 나라에 들어가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당신의 인격과 생애로 보여주셨고, 이를 바탕으로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으니 기꺼이 들어와서 그 기쁨을 누리라고 초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을 알아보지 못한 악인들이 그분을 모함하여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부활하셔서 당신을 믿고 따르는 이들이 천국으로 들어가도록 이끄셨습니다. 


과연 초대교회의 사도들과 신자들은 성령을 듬뿍 받아서 공동생활 양식이라는 기적을 실현하였고 여기서 그들과 주변 사람들까지 천국을 맛보았으며, 박해하던 로마제국을 신앙 앞에 끝내 굴복시켰습니다. 


그런데 로마화된 교회는 천국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니 세상 사람들도 천국은 죽어서나 가는 나라로 생각하게 되었고, 혹시 운이 좋으면 이 세상에서는 마음속에서나 누릴 수 있는 ‘내심낙원(內心樂園)’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다가 1,500년이 지나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열리면서 모든 생각들이 바뀌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셨던 바를 복원하고자 했고, 초대교회가 깨닫고 실현한 바를 회복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천국은 지금 여기에 이미 다가왔으며, 인간의 의지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얼마든지 가능하게 하실 수 있음을 예수님을 따라서 선언하였습니다. 천국 혹은 그 복음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자비로운 마음으로 베풀어지는 선물이여 기적임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또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2천 년 전처럼 그리고 세상 끝 날까지도 우리와 함께 하고자 하시며 이를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이 천국의 기적을 선사하시고자 하신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게다가 성령의 이끄심을 충실히 따르기만 한다면 인간의 눈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오히려 하느님께서는 천국을 세우시는 기적을 행사하기가 더 쉽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은 하느님을 닮을 수 있는 존재로서 존엄하다는 깨달음을 인간의 존엄성 이라 합니다. 또 그런 만큼 하느님께서 세상에 마련해 주신 재화는 하느님의 소유이니만큼 그 보편적인 성격에 맞게끔 하느님의 뜻에 따라 써야 한다는 깨달음을 재화의 보편성 원리라 합니다. 이 두 원리가 다 천국의 진리입니다. 


교우 여러분, 낙타도 천국의 바늘구멍을 통과할 수 있음을 입증한 자캐오처럼 하느님께 불가능한 일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청하기도 전에 먼저 자비로우신 마음으로 천국의 문을 열어주고자 하십니다. 그것이 당신이 세상과 인간을 지어내신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문을 통과할 수 있는 자격 조건은 딱 하나, 예수님을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믿음뿐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처지가 아무리 어렵더라도 성령께서 우리를 이끌어주십니다. 


기적은 하느님께서만 일으키실 수 있는 일이지만, 그분의 자비는 언제나 준비되어 있는 상수이기 때문에 그 기적을 알아볼 수 있는 눈만 뜨면 됩니다. 사실 눈을 뜨고 보면 우리네 일상에는 하느님께서 일으키시는 기적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모두 다 무상으로 주시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니 여러분께서도 하느님께서 천지창조 이전부터 마련해 놓으신 그 복된 나라에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죽은 다음에 들어가려 하시지 말고 지금 여기서부터 천국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는 이 천국에 초대받은 귀한 존재들이며 하느님을 닮도록 세상에 나온 존엄한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어진 그 모든 여건과 재화들 역시 이 천국을 위해 쓰여지도록 마련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편리한 여건과 풍요로운 재화가 인류 모두에게 허용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피조물로서 지닌 유한한 운명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생명에로 불리운 신앙인의 특권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TAG
키워드관련기사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가스펠툰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