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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신성을 공현하는 두 가지 방식
  • 이기우
  • 등록 2023-01-04 12: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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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공현 대축일 전 금요일(2023.1.6.) : 1요한 5,5-13; 마르 1,7-11 


주님 공현을 앞두고 오늘 우리가 들은 말씀은 예수의 신성을 공현하는 두 가지 방식, 즉 세례자 요한이 물의 세례로 예수님을 준비한 방식과 사도 요한이 예수님을 증거한 방식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시대적으로 예수님을 앞뒤에서 준비하고 증거한 이 두 요한은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의 신성을 어떻게 공적으로 드러내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나침반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물의 세례로 예수님께서 베푸실 성령의 세례를 준비하였습니다. 그가 베푼 물의 세례는 에세네파 사제 공동체에서 매일 행하던 정화의식을 발전시킨 것인데, 세례자 요한은 유다 광야에서 예언자적인 생활양식대로 살면서 여기서 나오는 도덕적 권위로 일생에 단 한 번의 정화의식으로 이전에 지은 죄를 다 씻어버릴 수 있다고 선언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의롭게 살아가는 회개를 행실로써 보이라고 요구했습니다. 말하자면 세상을 죄로 지배하는 마귀의 권세를 끊어버리라는 도덕적 요구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사도 요한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는 진리를 증거하였습니다. 그는 이 진리를 증거하기 위해 초대교회 공동체에서 이루어지던 성령 강림의 체험과 공동생활 양식으로 로마제국의 박해가 치열하게 벌어지던 한복판인 소아시아에서 에페소를 비롯한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돌보았습니다. 또한 외부적으로 로마의 박해와 맞서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입양설(入養說), 가현설(假現說), 영지주의(靈知主義, Gnosticism) 등 온갖 이단적 풍조와도 맞서 강생의 신비를 옹호하였습니다. 


여기서 초대교회를 내부에서 사상적으로 위협하던 이단 사상들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자면, 입양설은 주로 해외 디아스포라에서 살던 유다인들이 입교하여 퍼뜨린 이단으로서 성부 하느님과 성자 예수님이 같은 반열일 수는 없고 워낙 예수님께서 메시아로서 훌륭히 사셨고 십자가 죽음으로 이를 입증하셨으니 그 공로를 보아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아드님으로 입양해 주셨으리라고 추정하는 이단 사상입니다. 


이에 대해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서문에서 천지가 창조되기 이전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시던 하느님의 말씀이신 분이 사람이 되시어 오셨으며 자신은 그분으로부터 은총과 진리를 보았다고 증언하였습니다. 이른바 강생의 신비에 대한 도전이었습니다. 


가현설은 아무리 예수님께서 훌륭하신 분이라 해도 인간으로서 그 같은 십자가 고통을 겪으면서 당신을 죽음으로 내몬 모든 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그런 영웅적인 죽음을 견딜 수는 없다고 본 나머지, 그분은 본시 하느님이시기는 한데 가짜로 인간으로 현현하셔서 십자가 죽음을 겪으신 것이라고 추정하는 이단 사상이었습니다. 


그러니 이 이단은 인간으로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셨다는 부활의 신비를 정면으로 부인하는 것으로서, 요한은 요한복음의 18-19장에서 예수의 죽음을, 20-21장에서 예수의 부활과 발현을 증언하는 한편 실제로도 초대교회 신자들이 로마제국의 폭압적인 박해에 맞서 당당하게 신앙을 증거하며 죽음을 맞이하는 실제 치명 사례들로 이 가현설의 부당함을 폭로했습니다. 


아리우스 등이 퍼뜨린 영지주의 이단은 예수는 실제로 사람이 되신 하느님이 아니라 영지를 지닌 신적 존재가 잠시 인간 세상에 다녀가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강생과 부활의 신비를 믿기 어려워하던 초대교회 신자들을 현혹시켰습니다. 


이러한 이단 사상들과 맞서면서 사도 요한의 초대교회 공동체들은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사기지은(四奇之恩)을 받은 기적들을 도처에서 일으켰는데, 가장 큰 기적은 신자들이 빵을 나누어 먹는 성사생활을 하면서 가진 것을 내어놓아 공동소유의 금고를 만들어놓고 가난한 이들을 공동체에 합류시켜 궁핍하지 않도록 도와주었다는 데 있었습니다(사도 2,42-47; 4,32-37). 이를 두고 사도 요한은 ‘새 하늘과 새 땅’(묵시 21,1)을 보았다고 증언하였습니다. 


‘새 하늘’로 내려오신 예수님을 초대교회 공동체가 성령 강림과 공동생활 양식으로 ‘새 땅’을 이룩함으로써 공적으로 드러낸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영원한 생명이 사회적으로도 생생하게 나타난 실체였으며, 하느님 나라가 역사적으로도 시작되어 바야흐로 파스카 과업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진군나팔이었습니다. 


이 같이 두 요한의 사전 공현과 사후 공현은 오늘날 우리가 과연 어떻게 예수의 신성을 공현할 수 있는지에 대한 길잡이가 됩니다. 우선 우리는 현대 세계를 마귀의 권세로 끌어들이는 자본주의적 물신신앙에서 벗어나는 물의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현대에 요청되는 의로움은 자본이나 온갖 재화를 주인으로 섬기지 말고 하느님 나라를 위한 도구로 다스리는 것입니다. 


가난한 이들과 나눌 수 있도록 소박하고 근면검소한 생활양식을 살아가는 것이 그 첫 번째입니다. 그 다음 성사생활을 종교의 기본양식으로 삼고 공동의 소유를 마련함으로써 물신적 우상숭배의 망령에서 벗어나 가난한 이들이 궁핍함에서 해방될 수 있는 물적 토대를 형성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부활 신앙을 증거하는 공동체요, 예수 신성을 공현하는 복음화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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