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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공동체, 하느님 나라를 창조하는 길
  • 이기우
  • 등록 2023-02-08 09: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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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5주간 수요일(2023.2.8.) : 창세 2,4-17; 마르 7,14-23 


오늘 독서는 창세기의 두 번째 창조 설화입니다. 첫 번째 창조 설화에서 창조의 주체가 하느님이시며, 그 과정도 무상으로 그리고 온전히 하느님의 자유의지로 이루어진 기적이었으며, 그 결과는 피조물 세상이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참 좋았음을 알려주었다면, 두 번째 창조 설화에서는 하느님께서 귀하게 창조하신 그 피조물 세상을 돌보도록 창조된 인간이 어떻게 하느님과 소통하며 생명력을 얻을 수 있고 또 어찌하면 생명력을 잃고 죽게 되는지에 대해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창조의 목적에 따라서 인간이 세상을 하느님의 나라로 재창조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이치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첫 사람들이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는 바람에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었듯이, 하느님과 단절된 사람들이 여전히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계속해서 죄를 짓는 바람에 지옥이 세상에 만들어지고 있음을 예수님께서 알려주셨습니다. 


두 번째 창조 설화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생명이 어디에서 비롯되고 마감되는지에 대한 통찰입니다. 창세기의 저자들은 하느님께서 불어넣으시는 숨이야말로 생명의 시작이며, 하느님께 죄를 지어 그 관계가 단절되면 그것이 바로 죽음이라고 진술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고유명사가 아니라 사람을 뜻하는 대명사이듯이 ‘에덴동산’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나라를 상징합니다. 


세상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나라를 세우시려고 창조하셨으므로 사람이 하느님의 질서에 따라야 하는데 첫 사람인 아담과 하와는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는 바람에 그 질서를 어겼습니다. 이것이 원죄입니다. 


생명 나무와 선악 나무 중에서 생명을 누리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어도 좋지만,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절대로 따먹으면 안 된다고 하느님께서는 명하셨습니다. 이 명령의 핵심은 선악의 윤리적 가치는 하느님께서 정하시는 것이고, 피조물은 이를 따라야 하며 스스로 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마다 양심에 이 질서를 박아주시고 따르도록 창조하셨는데, 사람이 이를 어기면 하느님과의 관계가 단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첫 사람 아담과 하와는 이를 어겼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죽음’이었습니다. 따라서 하느님께서 애초에 불어넣어주신 생명의 숨은 막혀버렸고, 세상에는 죄가 잔뜩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문화인류학자들이나 고고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의 인류 문화에서 하느님을 섬기려던 종교 문화의 흔적은 어느 문화에서나 발견되지만, 하느님의 영을 받지 못한 채 식량과 영토를 둘러싼 다툼이 그치지 않았고, 국제 분쟁이나 전쟁 등의 형태로 오늘날까지도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사탄은 여전히 인간을 하느님과 떼어놓기 위한 계략을 꾸미고 있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하느님과 영으로 소통해서 양심이 회복되지 않는 한, 국가의 사법질서가 생겨나고 법률이 많아지며 법률전문가들이 아무리 늘어난다고 해도 세상의 죄를 없앨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 사회에서도 죄를 방지하려던 율법이 판을 치면서도 죄를 없애기는커녕 온갖 죄가 난무하고 있었고, 심지어 음식을 금하는 규정도 많아서 죄를 짓게 만들던 형편을 지적하시며,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는 음식들은 사람을 죄 짓게 할 수 없고, 오히려 사람의 마음 안에서 나오는 죄가 사람을 죄짓게 하여 더럽히는 것”(마르 7,14-15)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밝히신 바는 당시 사회 현실에서 흔히 발견되던 죄의 목록이었습니다: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마르 7,21-23) 등 악한 것들입니다. 


중요한 것은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근본 대책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실 때 죄도 없으시면서 굳이 세례를 받으신 이유는 세상 사람들에게 근본적인 죄의 대책을 마련하시고자 함이었습니다. 요르단 강에서 물로 세례를 받으실 때, 첫 사람들이 에덴동산에서 추방될 때와는 반대로, 다시 하늘이 열리고 성령께서 내려오셨는데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말을 들으라고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던 것입니다. 이에 따라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 왔고 이는 가장 기본적인 입문 성사입니다. 


그렇게 해서 다시 하느님의 영과 사람의 혼이 소통을 하게 되고, 양심이 살아있게 되면 세례받은 신자들의 가정과 믿는 이들의 공동체에서는 에덴동산이 다시 열립니다. 하느님과 함께 살면서 선행과 나눔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빛이 비추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사람의 혼이 하느님의 영과 소통하는 통공의 원리입니다(시편 104장, 화답송). 


더 나아가서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죄를 없애고 하느님 나라를 창조하는 길을 열어주셨으니, 그것이 사랑과 공동체입니다. 일단 개개인이 세례를 받아 하느님의 영과 소통을 하면서 양심이 살아있어야 하고, 그 다음에 서로 사랑함으로써 공동체가 세워지면 성령께서 현존하셔서 살아있게 된 그 양심을 이끌어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랑과 공동체의 질서가 우리가 사는 세상을 다시금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에덴동산으로 회복시킬 수 있는 길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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