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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손으로 만질 수도 있는 무지개
  • 이기우
  • 등록 2023-02-15 17:58:05
  • 수정 2023-02-21 17: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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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6주간 목요일(2023.2.16.) : 창세 9,1-13; 마르 8,27-33


노아는 주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고, 정결한 짐승들을 골라서 번제물로 바쳤습니다(창세 8,20). 신앙의 향기가 가득했던 이 제사를 받으신 하느님께서 노아에게 그에 맞갖은 축복을 내리셨습니다: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워라.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이 너희의 양식이 될 것이다”(창세 9,1.3). 이 축복은 한처음에 아담과 하와에게 내리셨던 축복(창세 1,28)과 같은 것이었으니, 대홍수 심판으로 죄악이 씻겨나가 새로워진 세상에서 노아는 아담처럼 다시 시조(始祖)가 된 것이었습니다.


다만 원 시조와 새 시조 사이에는 하느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변화가 생겼습니다. 아담과 하와에게는 선악 나무 열매를 따먹으면 당신과 함께 살던 에덴동산에서 추방시켜서 관계를 단절하는 사실상의 죽음을 벌로 내리셨었다면, 이제 노아에게는 살인죄에 대해서만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 달랐습니다: “나는 남의 피를 흘린 사람에게 사람의 생명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이다(창세 9,5).


이렇게 높아진 관계의 격을 반영하여, 옛 벌을 거두신 하느님께서 노아에게는 다시금 관계를 회복한 축복의 표징으로 무지개를 보여주셨습니다. 무지개가 뜨는 한 하느님께서는 노아와 그 후손들과 함께 하심을 믿어도 좋다는 약속을 계약으로까지 맺어주셨습니다.


이렇게 관계가 발전하게 된 배경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갔던 아담과 하와보다는 노아가 더 의롭고 흠 없이 살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내가 너희와 너희 뒤에 오는 자손들과 내 계약을 세운다. 내가 무지개를 구름 사이에 둘 것이니, 이것이 나와 땅 사이에 세우는 계약의 표징이 될 것이다”(창세 9,13). 이로써 분명해진 것은, 무지개는 하느님께서 아담의 후손보다 더 큰 책임과 더 큰 자유를 노아와 그 후손 전체에게 부여하신 계약의 가시적 표징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무지개는 대기 중에 있는 수증기에 의해서 빛이 굴절되고 반사된 후 분산되어 보이는 현상이어서, 비가 그치고 개었을 때 구름 사이에 세워진 무지개를 쉽게 관찰할 수 있습니다. 홍수 이전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노아도 보지 못했던 신기한 표징이기는 한데 눈으로 볼 수 있어도 손으로 만질 수는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무지개는 실현되기 어려운 꿈과 희망과 평화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믿음을 확인해 보시기 위해 모처럼 군중을 떠나 호젓한 여정에서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과연 제자들이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물어보신 겁니다. 여러 제자들이 뜬 구름 잡듯이 대답하는 가운데, 마침내 베드로가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마르 8,29).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내심 바라시던 이 정답을 들으시고도 칭찬을 아끼시는 대신 함구령을 내리셨습니다(마르 8,30). 왜 그러셨을까요?


핵심은 십자가였습니다. 당신이 짊어지실 십자가를 세 번이나 예고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도 당신처럼 십자가를 짊어질 각오를 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마르 8,34). 그리고 그 십자가를 짊어져야 할 때가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르니, 깨어서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노아 때처럼 사람의 아들의 재림도 그러할 것이다. 홍수 이전 시대에 사람들은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면서, 홍수가 닥쳐 모두 휩쓸어 갈 때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사람의 아들의 재림도 그러할 것이다. … 그러니 깨어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마태 24,36-39.42.44).


그러니까 하느님께서 노아에게 보여주신 무지개라는 표징은 꿈과 희망과 평화를 상징하는 신기한 표징이지만, 정작 그 희망과 평화를 실현시킬 수 있는 실제적인 조건은 십자가였던 것입니다. 아담보다 더 큰 자유와 책임을 부여받은 노아와 그 후손들에게 주어진 신기하지만 막연한 표징은 십자가를 짊어져야 하는 책임과 부활에 참여하는 자유의 이름으로 손으로 만질 수도 있도록 구체화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로써 하느님과 인간이 맺는 관계의 격이 한층 더 높아진 것입니다.


이제 모든 인류를 한꺼번에 심판하는 일은 없을 것이고 더구나 물로 심판하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 하느님께서는 장담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각자가 부여받은 책임과 이를 위해 주어진 자유를 어떻게 행사했느냐에 따라서 개별적인 심판이 주어질 것입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십자가를 멀리하고자 하면,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한다는 이유로 예수님께로부터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마르 8,33) 하는 꾸지람을 들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노아처럼 의롭고 흠 없이 책임과 자유를 행사한다면 꿈과 희망과 평화를 실현하는 새로운 세상을 이룩할 것입니다. 책임의 십자가를 기꺼이 짊어지는 이들이 그 새로운 세상에서 자유라는 부활을 누릴 것입니다. 십자가는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그때에 주어지는 표징으로서 손으로 만질 수도 있는 무지개입니다. 이는 또한 십자가를 짊어질 때마다 그분이 함께 하셔서 새로운 세상을 이룩하도록 이끄시겠다는 희망의 표징이기도 합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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