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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알아본다는 것, 육신 부활과 통공
  • 이기우
  • 등록 2023-04-11 15: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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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팔일 축제 화요일(2023.4.11.) : 사도 2,36-41; 요한 20,11-18


오늘 복음에서는 빈 무덤을 찾은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시신이 도난당한 줄 알고 슬피 울다가 정원지기 차림으로 나타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독서에서는 사도로서 담대한 용기와 굳센 믿음을 갖추게 된 베드로가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에 부화뇌동했던 유다인 군중 앞에서 회개하라고 권고하는 설교를 하는 장면이 나오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그 누구보다도 따랐던 막달라 마리아가 막상 자신의 눈앞에 나타나신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다는데, 이런 일이 상식적으로 가능할까요? 


그런데 이미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영적인 몸으로서 사기지은을 충만히 입으신 처지이시기 때문에 육신의 한계와 제약을 넘어서서 자유롭게 움직이실 수 있으셨습니다. 육신의 욕망에 따른 죄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워지셨음은 물론이요 죄로 말미암은 죽음도 이겨내신 상태로 초월해 계셨습니다. 


또한 육신을 지니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나타나는 일이나 사라지는 일, 또는 다양한 모습으로 자유자재로 나타나시거나 동시에 여러 장소에서 나타나시는 일까지 모두 가능한 상태에 들어가 계셨습니다. 이렇게 육신의 제약을 벗어나서 시간을 초월하여 현존하실 수 있는 능력은 이미 타볼산에서 서로 다른 옛 시대에 활약했던 모세와 엘리야를 한 자리에 불러 모으시고 당신 자신도 거룩하게 빛나는 모습으로 변모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신 기적에서도 이미 발휘하신 바가 있습니다. 


영적인 몸을 지니신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는 이러한 은총 상태는 아직은 온전치 못한 영적인 몸을 지니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 역시 생전의 그분이 보여주신 대로 육신의 욕망이 유혹하는 죄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서 사랑을 실천할 용기를 발휘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의미합니다. 세속의 온갖 유혹에 시달리며 자유롭지 못한 처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전혀 낯선, 그래서 거룩하게 변화된 상태로 들어간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전혀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는 일이 얼마든지 가능한 것입니다. 


‘육신 부활’ 교리를 잘 믿지 못하는 신앙의 풍토가 여전히 남아있는 현실에서 오늘 말씀의 빛은 육신의 영향을 받아 저지르는 죄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는, 거룩한 변화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신앙의 신비로 올바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게 합니다. 그렇게 되면 부활하신 예수님과 통공하는 일도 자연스럽게 가능해집니다. 


사실 오늘 독서인 사도행전 2장에서 사도로서 설교하는 베드로의 모습도 예수님과 함께 지내던 공생활 당시의 모습과는 완전히 딴 판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수난의 의미도 깨닫지 못했고, 열두 명밖에 되지 않는 제자들을 챙겨야 할 책임을 지고 있는 수제자로서 유다가 그 위험한 밀고를 마음먹고 있다는 사실조차 전혀 눈치 채지 못했는가 하면, 체포되신 예수님께서 대사제의 저택에서 거짓 재판을 받으실 때 정작 자신도 사람들의 추궁을 받자 세 번이나 스승을 모른다고 잡아떼기까지 하는 배반의 길을 걸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겠지만 실제로는 알아보지 못한 사람처럼 행동한 것입니다. 그 일이 아주 먼 옛날의 일이 아니라 불과 며칠 전의 일이었습니다. 달라진 것은 그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뵈었다는 것, 한 가지뿐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스승의 영적인 몸을 체험하고 나서는 비록 스승처럼 온전한 영적인 몸 상태를 갖출 수는 없었으나 그에 대한 믿음만큼은 철썩 같이 굳게 지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부활이 가져다 준 거룩한 변화와 통공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지향해야 할 본보기 중의 하나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 일어난 영적인 몸의 변화와, 그분을 만나 뵈온 후에 베드로의 마음에 일어난 믿음으로 가능해진 통공, 이것이 사람들에게 요청되는 회개였습니다. 이제 그분의 부활로 알게 된 예수님의 참모습은 이런 것들입니다. 예수님께서 그토록 겸손한 자세로 사람들을 섬기시면서 줄기차게 진리와 정의와 사랑의 길을 걸어가실 수 있었던 비결도 하느님께서 함께 하심을 느끼는 현존 의식이었다는 사실, 그분이 보여주신 섬김의 리더십도 이러한 현존 의식에서 나오는 부활의 영성이 투영된 결과라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그분의 참모습을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깨달아야 그분의 섬김의 리더십이 지닌 위력까지 깨닫게 되어 기쁨으로 서로 섬기려는 역량도 갖출 수 있게 될 것이고 따라서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회적 약자들을 해방시키려는 파스카 과업을 수행할 역량을 지니게 될 것입니다. 이 또한 우리 곁에 성령으로 현존하시는 그분을 알아보고 그분과 통공한 결과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요한 11,25)이라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는 또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한 14,6)이시라고 당신 자신을 드러내어 주신 바 있습니다. 성체성사에 참여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이 부활과 생명, 길이요 진리를 위한 거룩한 변화에 초대받는 것이고, 그렇게 변화할 기운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를 만나러 오시는 그분을 알아뵈옵는 눈을 뜨고 그분과 통공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파스카 과업을 위한 섬김의 리더십을 발휘할 수도 있겠습니다. 우리가 선포할 수 있고, 또 선포해야 하는 하느님 나라의 현실이 이것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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