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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자유는 믿음을 실천하기 위해 주어진 것
  • 이기우
  • 등록 2023-06-30 13:5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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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2주간 금요일(2023.6.30.) : 창세 17,1-22; 마태 8,1-4 

 

아브람은 아흔아홉 살이 되었을 때, “나는 전능한 하느님이다. 너는 내 앞에서 살아가며 흠 없는 이가 되어라”(창세 17,1) 하는 말씀을 하느님께로부터 들었습니다. 또한 어떤 나병환자는 군중에 둘러싸여 산에서 내려오시는 예수님께 엎드려 절하면서 낫게 해 달라고 청하자, “내가 하고자 하니 너는 깨끗하게 되어라”(마태 6,3) 하는 말씀을 그분으로부터 들었습니다. 


아브람 이래로 이스라엘 민족은 하느님 앞에서 살아가며 흠 없는 이가 되겠다고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런데 이 계약은 남자들에게만 적용시켰고, 특히 갓 태어난 아기 시절에 성기의 표피를 자르는 할례 형식으로 행했습니다. 그 이전부터 중동 지방에서 위생상의 이유로 행해 오던 관습을 모세가 하느님과의 계약이라는 거룩한 목적으로 활용한 것이었고, 요셉과 마리아도 아기 예수에게 베풀었습니다(루카 2,21). 


하지만 그 당시에 할례 의식은 대단히 형식에 치우친 종교행사로 전락해 버렸기에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음을 선포하시며 근본적인 쇄신을 부르짖으셨습니다. 이러한 취지에 충실하고자 했던 스테파노는 자신을 죽이려던 유다인들 앞에서 이렇게 형식화된 할례 관행에 대해 대놓고 비판하였습니다: “목이 뻣뻣하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여, 여러분은 줄곧 성령을 거역하고 있습니다”(사도 7,51). 


모세의 관습에 따라 할례를 받지 않으면 여러분은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완고하게 고집을 피우던 유다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바오로도, “겉모양을 갖추었다고 유다인이 아니고, 살갗에 겉모양으로 나타난다고 할례가 아닙니다.”(로마 2,28-29) 하고 할례 의식의 개혁을 부르짖었습니다. 그리하여 ‘조상들도 다 감당할 수 없었던 멍에’(사도 15,10)를 새로 하느님께로 돌아오려는 이방인 신자들에게는 지우지 않기로 초대교회 사도들이 합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들은, “성령으로 마음에 받는 할례가 참할례”(로마 2,29)이며, “사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는 할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만이 중요할 따름”(갈라 5,6)임을 깨닫고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추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자유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고자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임을 깨달았기에 바오로는 이렇게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할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새 창조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갈라 6,15). 


구약시대 이스라엘의 할례 제도와 의식에 대해 반성하고 새롭게 터득한 깨달음으로 사도들은 세례성사를 제정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께서 이 깨달음을 주셨다고 확신했기에 세례성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제정하셨음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고 입교자들에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 왔고 이는 사도들의 후계자들을 통해서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세례성사를 받아 원죄를 씻고 나서도, 세상을 하느님으로부터 떼어 놓으려는 마귀의 집요한 권세로 말미암아 우리가 자유의지를 약화시킬 때마다 본죄의 유혹에 노출되게 됩니다. 그래서 로마인 백인대장의 기도를 본받아서,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 하고 미사 때마다 기도하고 있습니다. 육신이 흉하게 일그러진 나병환자처럼 죄에 물들어 흉하게 일그러진 우리 영혼 역시 깨끗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고백에 이어서, 우리가 미사 때에 영성체를 하는 의미는 거듭거듭 계약을 새롭게 갱신하여 깨끗하게 살아가기 위한 것입니다. 


이 계약은 예수님의 피로 맺어진 ‘새롭고 영원한 계약’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축성된 성혈을 받아 마실 때마다 그 의미는 더욱 살아있게 됩니다. 그래서 그분은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루카 22,17) 하고 명령하셨습니다. 그 까닭은 당신의 뜻과 삶과 희생을 기억하여 우리로 하여금 같은 뜻과 같은 삶과 같은 희생으로 계승하기를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과 혼이 하느님의 영으로 깨끗하게 치유되는 일은 우리가 행하는 사도직 활동의 성패보다 더 중요합니다. 깨끗해진 처지로 행하다가 실패한 활동은 다시 성공시킬 수 있지만, 더러워진 처지로 행하다가 얻은 성공은 이미 하느님께 바칠 만한 깨끗한 제물도 아니려니와 그 성공에 취해서 교만해지면 더러워진 처지가 더 나쁘게 추락할 수도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나병환자에게 손을 내밀어 깨끗하게 해 주시고나서,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부실한 이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고 명하셨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살아가며 흠 없는 이가 되어야 하는 이유, 또 그를 위해 계약을 맺고 이를 거듭거듭 갱신하는 이유 또한 하느님의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받는 축복은 하나의 덤이요 선물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자유를 남용하는 동안 하느님 나라도 폭행을 당하고 있습니다(마태 11,12). 하지만 인간의 자유는 욕정이나 재물욕이나 권세욕 또는 명예욕을 채우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을 실천하라고 주어진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이런 의미에서 하느님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을 한마디로 줄여서 말씀드립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어라.”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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