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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네 스승은 어째서?”
  • 이기우
  • 등록 2023-07-07 10: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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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3주간 금요일(2023.7.7.) : 창세 23,1-4.19; 24,1-8.62-67; 마태 9,1-8 


오늘 복음은 마태오 복음사가 자신이 예수님께로부터 제자로 부르심을 받게 된 경위를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그가 이 대목을 기록함에 있어서 작지 않은 용기를 내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부끄럽게도 공식적으로 기피인물이었을 만큼 부도덕했던 세리 출신이었음을 굳이 숨기지 않고 기술하고 있으며, 심지어 자신이 부르심을 받던 자리에는 율법상으로 문제가 많았던 다른 죄인들도 많이 끼어 있었다는 사실까지 밝히고 있습니다. 


이로써 마태오는 세리 시절에 감추어두었던 양심을 회복시켰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마르코나 루카 복음사가들이 같은 내용의 기사를 보도하면서, 동료인 마태오의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그저 레위라는 세리가 제자로 부름 받았다고만 드러내고 있는 것과 대조적입니다(마르 2,13-17; 루카 5,27-32). 이로써 우리는 마태오가 세리로 활약하던 당시에 지니고 있었을 세속적 영민함이 제자로 부르심을 받은 이후 영적인 지혜로 승화되어 복음적 영민함으로 변화되어 있음을 확인합니다. 


그 반면에 같은 사안을 두고 바리사이 유다인들은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네 스승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그들은 율법을 대단히 중시하던 자들이었으므로 율법을 잘 지키지 않는 세리와 죄인들을 멀리 하고 있었고, 예수님께서도 멀리 하기를 바랐을 터인데 느닷없이 세리와 죄인들을 불러 잔치를 벌이고 있으니 궁금해서 질문을 한 것이 아니라 반공개적으로 험담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니 이를 눈치 채신 예수님께서 해학성 답변을 하신 겁니다. “당신네들은 스스로 의롭다고 자처하고 있으니 내가 당신네 편을 들 필요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세리와 죄인들은 당신네 기준으로 볼 때 율법상 죄인들이니, 나 같은 의사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쓸데없는 소리 지껄이지 말고 꺼지시오!” 그들 바리사이 유다인이 마태오처럼 복음적 영민함을 갖추었더라면, 그렇게 말고 이렇게 물어야 했습니다. “당신네 스승은 어째서 가난한 이들을 친구로 삼는 것이오?” 


사람이 자기라는 기준을 벗어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자기의 정서와 감정을 감추고 말하거나 억지 표정을 짓기 어렵고, 자기자신은 물론 자기가 속한 집단의 이해관계를 초월하는 입장을 견지하기 어려우며, 이로운 방향으로 생각하고 움직이면서 해로운 방향으로는 가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이를 바로 잡아 주는 나침반이 양심이요 이 양심을 살아있게 해 주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래서 사람들 각자의 양심이 신앙을 통해 하느님을 반영하고 가리키면 자기의 정서와 감정과 이해관계가 하느님의 관심사에서 벗어나지 않을 수 있게 됩니다. 여기서 바리사이들이 지녔던 한 가닥 남은 양심을 발견합니다. 예수님께서 주도하신 이 자리인 줄을 뻔히 알면서도 제자들에게 물었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그분에게 대놓고 따지지는 못하고, 제자들에게 묻는 형식으로 항의하였습니다: “당신네 스승은 어째서?” 


이렇듯 초라해 보이는 바리사이들의 양심보다 아브라함의 양심이 훨씬 크고 살아있었습니다. 그는 우상숭배 풍조가 판 치던 칼데아 우르에서 자기 양심으로 하느님의 부르심을 들었던 수메르 문명권의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양심에는 흠도 있었으니, 자손을 주시겠다시던 하느님의 약속을 기다리다 못해 하가르를 첩으로 들였습니다(창세 16,2). 


그의 의중을 꿰뚫어본 아내 사라가 권했다고는 하나, 그는 거절하지 않고 고민도 하지 않은 채 이스마엘을 첫아들로 얻었습니다. 이런 행동이 사라와 하가르, 이사악과 이스마엘, 더 크게는 셈족과 헴족 사이에 부족 간 갈등의 씨를 뿌린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아브라함의 미덥지 못함을 시험하시려 하셨는지, 그의 나이 백 살, 아내 나이 아흔 살에 가까스로 주신 아들 이사악을 당신께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브라함이 주저함이 없이 그 외아들을 바치려고 들었습니다. 그러자 칼을 들어 찌르려던 찰나에 천사를 시켜 막으셨습니다. 아마 이 행동으로 그는 하가르와 이스마엘로 말미암아 잃어버렸던 양심 점수를 만회했을 것입니다. 


몸종 하가르를 남편에게 맡겨놓을 때는 언제고, 막상 하가르가 아들을 낳고 그 아들 이스마엘을 남편 아브라함이 이뻐하는 눈치가 보이자 하가르를 구박하던 모순적인 행태를 보인 사람은 사라였는데, 그렇게 너무도 인간적이었던 사라가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되자 아브라함은 정성껏 장례를 치러주었습니다. 원주민인 히타이트 사람들에게 가서 좋은 묘지터를 잡아서 안장해 주었던 아브라함의 양심이 돋보입니다. 


교우 여러분!


복음적 영민함으로 양심을 회복시킨 마태오와, 조강지처(糟糠之妻)에 대한 의리를 지킴으로써 양심을 회복한 아브라함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세리이건 가난한 이들이건 죄다 죄인으로 낙인찍고서는 차마 예수님께 대놓고 따질 수 없어서 애먼 제자들에게 “당신네 스승은 어째서?”라고 묻던 바리사이들의 알량한 양심은 반면교사로만 삼으십시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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