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8주간 토요일(2023.8.12.) : 신명 6,4-13; 마태 17,14-20
오늘 독서는 유다인들이 안식일 저녁마다 가족이 한데 모여서 기도하는 말씀으로서, 앞머리에 나오는 짧은 문장을 따서 히브리어로 “셰마, 이스라엘!”이라고 부르는 유명한 대목이었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신명 6,4).
유다교의 기도 전통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이것입니다. 신앙은 무슨 취미생활처럼 개인의 자유와 선택에 맡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 가문의 전통이며 가정의 문화라는 것입니다. 안식일 저녁마다 가족이 모여서 바치는 이 기도의 전통이 대표적입니다. 이 말씀을 읽으면서 기도를 바치고 공동 식사를 하는 것이 유다교에 충실한 유다인들의 전통입니다.
이를 통해 마음과 목숨과 힘을 다하여 사랑해야 드려야 할 하느님께 대해서 가장으로부터 도움말을 들으면서 이스라엘의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은 자연스럽게 신앙에 젖어들게 됩니다. 이 같은 기도의 전통은 모세가 하느님께로부터 계시 받아 백성에게 전해 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 전통에도 이 유다교 전통이 들어와서, 이 기도문은 교회의 성무일도에서 토요일 끝기도에도 들어와 있습니다.
18세기 명 왕조 시절에 중국에 파견된 서양 선교사들로부터 유럽의 전통적인 신앙 행태를 전해 받았던 박해시대 교우촌에서도 이 같은 기도의 전통은 살아있었습니다. 평일에 아침 기도와 저녁 기도를 바치지만, 특히 주일 전날 저녁에는 온 가족이 모두 모여 기도를 바치고 나서 함께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주일 아침에는 교우촌의 모든 신자들이 공소에 모여서 공소예절을 함께 거행하였습니다. 사제가 없어서 성사생활을 하기 어려운 형편이었던, 이른바 ‘말씀의 교회 시기’였던 때여서 기도생활이 그들에게는 신앙생활의 거의 전부이다시피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신앙 현실에서 이 교우촌의 기도 전통을 계승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고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가족이 한데 모여 바치는 기도야말로 가문의 전통으로서 대대로 물려받는 것이고, 가정의 문화로서 신앙을 생활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족이 모여서 기도를 바치지 않은 채 주일미사 참석이 목표인 지경에서는 냉담자를 양산하는 현 추세를 막을 수가 없습니다. 이제 가까운 거리에 성당들이 들어서 있고, 성당마다 사제들이 파견되어 있어서 성사도 자유롭게 받을 수 있게 된 지금 이 ‘성사의 교회 시기’에는 신앙생활이 훨씬 더 편리해졌으니, 성당에서는 성사 위주로 하고 가정에서는 기도 위주로 하되 가족이 한데 모여서 사는 리듬이 정상입니다.
이는 비단 신앙이 식지 않기 위한 소극적인 대책인 것만이 아니라 신앙의 은총을 누리기 위한 적극적인 대책입니다. 말씀에 맛 들이고 성사적 열망에 가득 차서, ‘사도직 교회 시기’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 현 시기 우리 교회의 좌표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허약한 믿음을 굳세게 해주시기 위한 대책을 내놓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 제자와 함께 타볼 산에 오르시어 거룩한 변모의 기적을 일으키시는 동안, 나머지 제자들은 산 아래에 모여 있었는데, 마귀 들려 고생하는 아들을 둔 아버지가 찾아와서 도움을 청했지만 제자들은 아무 도움도 주지 못했습니다. 이를 두고 예수님께서는 호통을 쳐서 마귀를 쫓아내서 그 아이를 고쳐주셨습니다만, 제자들에게는 마귀도 쫓아내지 못할 정도로 허약한 믿음을 나무라셨습니다.
“너희의 믿음이 약한 탓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산더러 ‘여기서 저기로 옮겨 가라.’ 하더라도 그대로 옮겨 갈 것이다. 너희가 못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마태 17,20). 나중에,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사도가 되어서 아픈 사람을 낫게 해주거나 마귀를 쫓아내거나(사도 5,12.16; 8,7) 심지어 죽은 이도 소생시키는 기적까지 행할 정도로(사도 9,40) 믿음이 굳세어졌습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표현하신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은 비록 크기는 작지만 그 속이 꽉 찬 밀도 100%의 믿음을 상징합니다. 그러기에 그 씨앗이 땅에 심겨지면 공중에 나는 새들이 깃들여 쉬어갈 만한 큰 관목으로 자라날 수 있는 것입니다. 가정에서의 기도생활과 본당에서의 성사생활이 신앙인들에게 줄 수 있는 은총이 바로 밀도 100%의 믿음입니다. 믿고 안 믿고는 선택의 대상이 아닙니다. 오히려 믿음을 굳세게 하여 자신의 인생에서 하느님의 선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를 선택하고, 이에 필요한 은총을 성사에서나 기도에서 청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실제로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믿음을 굳세게 하셨고, 그래서 당신보다 더 큰 일도 해낼 수 있으리라고 장담하셨습니다(요한 14,12). 세상 끝날까지 성령으로 제자들 안에 현존하시면서 이끄시고 도와주시겠다는 뜻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현존을 믿어야 성령의 이끄심도 받을 수 있습니다.
그 믿음만 있으면, 비록 크기가 겨자씨처럼 작아도 믿음의 밀도가 100%이기만 하면, 얼마든지 당신보다 더 큰 일도 해 낼 수 있게끔 도와주시겠다는 뜻입니다. 교우 여러분, 본당에서 성사를 받고 가정 기도를 실천하되 마음과 목숨과 힘을 다하여 하십시오. 그분 약속대로 더 큰 일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