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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역설: 자기를 버려야 자기를 얻는다
  • 이기우
  • 등록 2023-09-03 13:3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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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2주일(2023.9.3.) : 예레 20,7-9; 로마 12,1-2; 마태 16,21-27


말씀의 초점


연중 제22주일인 오늘, 미사의 독서와 복음으로 우리에게 들려오는 말씀은 정체성에 관한 메시지입니다. 먼저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에 대해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 내용이 복음에 있었습니다. 그분이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에게 미움을 받아 죽임을 당하겠지만 되살아나시리라는 놀라운 운명을 밝히신 것이었습니다. 자신들의 스승이 아무런 죄도 없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해야 한다는 운명도 놀랍도록 안타깝지만,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리라는 부활을 예고하신 일은 더욱 놀라운 소식이었습니다. 우리의 경험법칙으로 보아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가장 놀라웠던 소식은, 제자들 역시 스승의 운명을 따라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는 십자가를 짊어지기만 하면 억울한 죽임을 당할 수도 있겠지만, 제자들 역시 다시 살아나게 해주시겠다는 엄청난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베드로에게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하는 호통을 치시면서 상기시키신 ‘하느님의 일’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일’은 사람 누구나 예수님께서 하느님께서 보내신 메시아이심을 믿게 하고 그분처럼 부활하여 영원한 삶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죽기 이전에도 지금 여기서부터 그러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정체성과 운명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아는 일이 이토록 중요했습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마태 16,23)


하느님의 일, 사람의 일


일찍이 이사야가 고난받는 주님의 종의 노래에서 예언했던 바대로, 메시아는 무죄한 고난을 통해서 세상의 죄를 없애는 파스카 과업을 수행하리라는 첫 번째 비밀과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리라는 두 번째 비밀을 밝히고 계신 겁니다. 이 두 가지 천상의 비밀, 즉 파스카 과업과 부활로써 메시아가 누구신지를 인류 앞에 밝히시겠다는 것이지요. 그야말로 천기(天機)를 누설(漏泄)하신 셈인데, 이게 끝이 아닙니다.


세 번째 비밀도 있습니다. 이 첫 번째 비밀과 두 번째 비밀이 메시아이신 예수님에게만 해당되는 운명이 아니라 그분을 메시아로 믿어 고백하고 그 메시아적 삶을 뒤따르는 메시아적 백성 모두에게 가능하도록 열려진 섭리가 밝혀졌다는 것이 그 세 번째 비밀입니다. 이 놀라운 운명에로 초대받고 있음을 알리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려주시는 일이 그토록 중요했던 것이지요.


하느님 나라의 비밀, 예수님은 누구이신가?


예수님께서 작정하고 이 신기한 운명, 즉 하느님 나라의 비밀을 털어놓으시는 데에는 이만한 사정이 숨어 있었습니다. 또한 그 당시에 예수님이 과연 누구이신지에 대해서 그 누구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던 사정도 있습니다. 그분의 정체에 대해서는 논란이 참 많았습니다. 그분으로서는 여러 번 여러 차례 당신의 정체를 밝혀 오셨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복음을 들으러 온 군중이나 심지어 제자들까지도 예수님께서 당신의 정체를 밝히시는 말씀과 기적을 알아듣지 못했다는 데 있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실 때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시는 모습을 통해서 당신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밝히셨을 뿐만 아니라, 제자들에게도 당신의 아버지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무언가 도움을 받으러 당신을 찾아오는 이들을 내치지 않으시고 성심성의껏 맞이하시고 돌보아주셨습니다. 그것이 또한 하느님의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권능을 발휘하셔서 아픈 사람을 낫게 하시고 장애도 고쳐주셨으며 마귀도 쫓아내어 주셨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분은 영락없는 예언자, 구약시대에도 여럿 활약했던 예언자가 다시 나타나신 것 같았습니다.


생명의 빵과 물이시며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


그런데 이런 일들을 통해서만 당신의 정체를 드러내신 것이 아니라 말씀을 통해서도 점진적으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정체를 드러내셨습니다. 처음에는 비유적으로 드러내시다가 나중에는 직접적으로 드러내셨습니다. 즉, 처음에는 당신은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생명의 빵”이시며(요한 6,35.41), “성령을 내려오시게 할 생명의 물”이라고 빵과 물에 비유한 말씀을 꺼내셨습니다(요한 7,37-39).


그러니까 하느님께 청하여 그 권능을 이끌어 들일 수 있는 능력 있는 예언자 정도가 아니라 하느님처럼 생명을 주실 수 있는 분으로 자처하셨습니다. 그러다가 제자 필립보가 하느님을 뵙게 해 달라고 조르니까, 당신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라고 말씀하시면서 “당신을 보았으면 곧 하느님을 뵌 것”이라고 밝히셨습니다(요한 14,6). 이 말씀은 그분의 정체에 관한 말씀으로서는 가장 결정적인 말씀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이신 그분께서 당신 제자들을 위해, 또는 당신 제자들이 저지른 죄로 말미암아 억울한 죽임을 당하시겠지만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이며 게다가 당신을 따른 제자들에게도 같은 운명을, 그러니까 십자가의 죽임을 당하겠지만 부활의 영광도 누리는 똑같은 운명을 예비해 놓고 초대하시겠다는 말씀은 제자들이 듣기에 자신들의 운명이나 정체성과 관련해서도 역시 결정적인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선택은 오로지 제자들의 자유에 맡기셨습니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마태 16,25). 단, 자유로이 결단을 내린 선택에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는 경고도 빼놓지 않으셨습니다: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천사들과 함께 올 터인데, 그때에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을 것이다”(마태 16,27).


예언자의 정체성, 사도의 정체성


예레미야도 예언자로 부르심을 받으면서 겉껍데기로 알고 있었던 자기 정체성이 깨지는 아픔을 겪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예언자로 받은 부르심을 후회하면서 이렇게까지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 당신께서 저를 꾀시어 저는 그 꾐에 넘어갔습니다”(예레 20,7). 그가 예언자로서 자부심을 느끼지 못하고 이렇게까지 막말을 하느님께 늘어놓는 이유는 하느님의 예언자라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받은 대접 때문입니다. “당신께서 저를 압도하시고 저보다 우세하시니, 제가 날마다 놀림감이 되어, 모든 이에게 조롱만 받습니다”(예레 20,7).


예레미야의 얄팍한 신앙이 눈에 보입니다. 그나마 “뼛속에 주님 말씀을 가두어두었다.”든지, 그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오른다.”(예레 20,9)는 자기 정체성을 고백한 덕분에 그 얄팍함 때문에 잃어버린 점수를 조금은 만회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바오로 역시 사도요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고 20년을 살고 나서 비로소 알게 된 자신의 실존적 정체성을 바탕으로 로마 공동체의 교우들에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느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드려야 하는 합당한 예배입니다”(로마 12,1). 그 어느 유다인보다도 율법에 열성적인 그입니다. 따라서 율법이 명하는 제사의 중요성에 대해서 잘 알았을 그입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자기 인생을 180도로 바꾸었습니다. 이방인을 위한 선교사로 나섰고, 비주류 출신이지만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부르심을 받은 사도로 자처했으며, 그 명예가 어찌나 소중했던지 사도로 일한 보수를 절대로 받지 않고 무보수로 헌신했습니다. 이 선교 활동 과정에서 그가 겪어야 했던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선교사의 삶과 사도로서의 활동, 그러니까 20년에 걸친 그 숱한 고생길이 바오로가 바친 예배요 제사였다는 고백을 이제 로마 공동체의 교우들에게 털어놓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그의 결론은 이것입니다: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로마 12,2).


정체성의 위기를 겪는 사람들


정체성을 찾아가는 인생길에서 예레미야가 어리숙한 초보자의 면모를 보이고 있다면, 바오로는 원숙한 프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체성이란 실제 이루어진 삶에 진정성 있는 마음이 녹아 들어서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정체성을 담은 이야기에는 울림이 있습니다. 감동을 줍니다. 예수님의 이야기만 해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듣고 또 들어도 물리지 않는 것이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기준이자 목표로 삼고 자기 정체성을 그분 안에서 찾고자 정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체성의 구도자입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하도 자기 정체성의 위기를 겪는 사람들이 많고, 또 그런 위기를 겪고 있는지 조차도 모를 정도로 먹고 사는 데 바쁘게 사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정체성의 심리학’이라는 새로운 분야까지 생겨났습니다. 최근 출판계가 불황이라고 하고, 더욱이 인문서적은 더 심한 불황이어서 처음에 1천부를 인쇄해도 다 팔리기가 어렵다고 하는데, 무려 200쇄를 넘긴 책이 있습니다. 그 제목이,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입니다. 그 전에 출판계 집계상으로 베스트셀러 1위가, “미움받을 용기”였고, 그 전 해의 베스트셀러 1위는,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었습니다.


재미있는 판매 통계도 있습니다. 헬조선 탈출기로 알려진,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가 또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습니니다. 이런 출판계의 현황과 정체성 심리학자들의 연구 보고에 따르면, 누구나 ‘나’답게 살기를 원하는 시대이고, 이런 주제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린다는 것입니다.


자기 정체성을 찾는 구도자


이제 마무리하겠습니다. 정체성이란 화두로 오늘의 독서와 복음 말씀을 비추어 본 바로는 정체성이란,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이고 자신에게 의미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삶의 방향에 대해 내린 결단을 의미합니다. 예레미야는 아직 어리벙벙해 하고 있지만 바오로는 이미 잘 정리된 이해와 판단을 가지고 있고 또 권유하고 있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예수님에게서 보듯이,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인생 좌표를 찾는 일이며, 의미 있는 일은 지금의 처지를 원점으로 삼아서 그 좌표로 이동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필요하다면 결단을 내려야 할 수도 있을 겁니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정체성이 잘 형성되어 있는 사람은 다음의 세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첫째, 이들은 '영혼의 엑스레이 사진'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무엇이 정말 중요하고, 자신이 행복한 순간은 언제이고, 자신의 삶에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자신의 목적지가 찍힌 내비게이션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어떤 삶을 살 것인지에 대한 결정을 상당 부분 내렸다는 것이지요.


셋째, 삶에 대한 지침, 가치판단의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특성뿐만 아니라, 삶에서 이루고자 하는 것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올바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 모두 예수님께 정확하게 적중하는 현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두어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심리학자들 대부분이 프로이드처럼 무신론자들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프리즘을 한 번 통과시켜서 봐야 제대로 볼 수 있는데, 정체성이 뚜렷하게 인생을 살아가는 이들은 예수님께서 살아가신 것처럼 ‘내 삶의 주인은 바로 나’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그렇게 원하십니다. 단, 그에 대해 책임에 대해 돌보아주시기도 하지만 인생이 끝나면 엄정한 심판을 하기도 하실 겁니다.


그러자면 지금껏 집착해 온 자기 겉껍데기를 버려야 참된 자기 정체성을 얻을 수 있습니다. 자기를 버려야 자기를 얻는다는 구원의 역설로, 정체성이 흔들리는 우리네 위기에 예수님께서 개입하셨습니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며, 예수님 때문에 자기 목숨을 버린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구도정신으로 추구해야 할 우리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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