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4주간 수요일(2023.11.29.) : 다니 5,1-28; 루카 21,12-19
성서 주간의 셋째 날인 오늘은 성서가 증언하는 정치과 종교의 길과 그 관계에 대해 묵상해 보겠습니다. 정치는 사회의 공동선을 위해 존재하며, 종교는 최고선을 위해 존재합니다.
인류가 큰 집단을 이루어 모여 살기 시작한 이래로, 정치는 사회의 공동선 질서를 유지하는 힘으로서 사회 모든 영역과 분야에 그 영향을 미치는 근본 영역이 되어 왔습니다. 종교도 정치의 영향을 받지만, 종교의 본질인 신앙은 그 정치가 본래의 사명대로 공동선에 기여하는지 혹은 거스르는지를 최고선에 입각해서 판단합니다. 정치의 영향력이 그 사회에 모여 사는 사람들의 육신 사정에 관여한다면, 종교의 영향력은 영혼 사정에 관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치와 종교가 모두 사회에 전반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가운데, 종교는 정치에 이용당하기도 하고 박해를 받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종교가 정치를 세우기도 하고 폐하기도 했던 일도 있습니다. 그 결과 숱한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인류가 발견한 지혜는 정교분리 원칙입니다. 정치와 종교가 각자의 영역을 지키되 사회의 구성원인 사람들의 공동선을 증진시키고 최고선을 보호하기 위해 견제와 균형의 원칙에 입각하여 서로 협력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다니엘은 바빌론 제국의 종말을 예언하였습니다. 그리고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정치권력이 종교 신앙을 박해할 때 해야 할 처신에 대해 일러주셨습니다. 말하자면 독서는 기울어진 권력을 신앙이 판단하고 있고, 복음은 권력의 박해에 대해 신앙이 저항하고 있습니다. 바빌론의 벨차사르 임금은 부왕 네부카드네자르 임금이 이스라엘을 정복하면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져온 금은 기물로 술을 마시며 잔치를 벌이고자 했습니다.
이런 행태에서 드러나는 것은 그가 아버지의 죄악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었고, 이를 다니엘은 하늘의 주님을 거슬렀다고 비판하였습니다. 그 강성하던 바빌론 제국이 멸망하게 된 것은 최고선에 어긋났기 때문입니다. 즉, 우상숭배를 자행하며 공동선까지도 파괴했기 때문에 정치 권력으로서의 바빌론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었습니다. 그 한참 뒤에 이스라엘을 정복한 로마 제국 역시 비슷한 운명에 놓였습니다만, 로마는 그리스도교를 박해함으로써 오히려 신앙을 제국 강역 전체에 퍼뜨렸습니다.
정치와 종교의 관계에 있어서 우리가 성서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알려면, 사무엘 예언자 이전 열두 지파 체제에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문제에 관해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바도 이 당시의 이스라엘을 기준으로 삼으셨습니다. 여호수아서와 판관기가 기록하고 있는 열두 지파 체제의 이스라엘에서는 신정일치로 정치와 종교가 한 몸처럼 이루어졌고, 하느님만이 유일한 목자이셨습니다. 하느님께서 보내시는 영을 받은 판관들이 백성을 다스렸습니다.
이들은 백성의 송사를 맡아 처리하는 판관으로서의 역할만 한 것이 아니라 전시에는 백성을 이끌고 전장에 나아가 적과 싸우기도 했었습니다. 판관기가 기록하고 있는 판관들은 오트니엘, 에훗, 삼가르, 기드온, 입타, 삼손, 툴라, 야이르, 입찬, 엘론, 압돈 등 모두 열두 명이었습니다. 이 판관들은 백성에게 하느님의 뜻을 전하여 그 뜻대로 살게 했으며 그것이 정치였습니다. 그런데도 백성이 하느님의 뜻대로 살지 않고 죄를 지으면 하느님께서 바로 벌을 내리셨고, 회개하면 구원해 주셨습니다.
판관기의 이러한 신학 사상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시고 따라서 교회가 계승해야 할 원칙으로 보완하자면, 정치든 종교든 지도자의 역할은 하느님의 뜻을 받드는 일이며 이에 따라 백성을 섬기는 일이며, 또한 백성 사이에서도 서로가 서로를 섬기도록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판관기 이후의 역사는 물론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의 역사는 이 원칙과 가르침을 구현하기가 만만치 않음을 보여줍니다. 사무엘 이후 이스라엘은 이방인들의 왕정체제를 도입함으로써 신정일치 체제 속에서도 기능적으로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기 시작했는데, 정치 지도자인 왕들은 상비군 제도와 세금 제도를 도입하여 백성을 섬기기보다 다스렸고 종교 지도자인 사제들은 제사 봉헌으로 백성을 하느님께로 이끌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신분이 지니는 기득권을 누리기에 바빴습니다.
이 과정에서 만민의 빛이 되어 만민을 하느님께로 이끌라는 소명을 받은 이스라엘은 자신들만이 선택된 민족이라는 편협한 선민의식으로 하느님께로부터 멀어져갔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로마제국에 의해 멸망당하고 전 세계로 흩어져 무려 2천 년을 이방인으로서 떠돌아 다녀야 했습니다. 반면에 그리스도교는 로마제국의 박해를 받다가 국교가 되는 대역전 상황이 발생했지만 로마를 복음화시키기 전에 오히려 그리스도교가 로마화되어 제국교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는 정치현실에서도 최고선과 공동선 사이에는 긴장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정치권력들은 하느님의 뜻을 받드는 일에 무능하고 오로지 국가이익만을 최고로 삼습니다. 국제적으로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국내에서도 최고선은 물론 공동선에도 관심 없이 오로지 자신들의 집권만을 목표로 모든 정치적 현안에 대해서 반대만을 일삼고 몽니를 부리는 정치인들이 분탕질을 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치 현실에 대해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시대의 징표를 잘 살펴서 악에는 맞서고 선에는 앞장서라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최고선을 짓밟고 공동선 질서도 무너뜨린 바빌론 제국이나 로마 제국이 한때 흥하기는 했어도 머지않아 멸망의 길로 들어선 것처럼, 최고선과 공동선의 가치를 구현하지 못하는 정치권력이나 세력은 쇠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하느님 심판의 도구입니다. 이와 함께 중요한 것은, 그렇게 멸망하는 정치 세력 이후에 새로이 들어설 정치 세력으로 하여금 최고선과 공동선의 가치에 복무하게 하는 일입니다. 이야말로 깨어 있는 시민들이 주권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고, 깨어 있는 시민들 가운데에서도 신앙인들은 이 ‘최고의 정치’ 실현에 앞장 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