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의민주주의만으론 사회 난제 해결 곤란”
“21세기 혼합민주주의에 필요한 무기 될 것”
입법화 위한 과제들 종합목록 제시
“시민의회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국민의 주체성을 각성시키고, 국민의 주권을 확장하는 길이다. 이번 새 국회에서 반드시 그 입법이 추진돼야 한다.”
평범한 일반시민들의 토론과 숙의를 통해 정치 사회적 문제들의 해법을 제시하는 '시민의회'의 국내에서의 입법화가 큰 전기를 맞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시민들의 힘으로 전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지난 8일 서울에서 열린 ‘시민의회 국제심포지엄’은 지난 20여 년간 세계 곳곳에서 민주주의의 혁신으로 크게 주목을 받고 있는 시민의회의 국내외 경험과 논의를 공유하고 보완과 개선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전세계적인 민주주의의 위기 속에서 민주적 혁신의 시도가 매우 다양한 갈래로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특히 최근 많은 관심을 받는 대표적 숙의 민주주의 기제인 시민의회의 태동에서부터 성장과 미래 설계까지, 국내외에서의 시민의회 논의와 실천에 대한 한 결산이자 새로운 출발이랄 수 있다.
‘시민의회’의 한국 내에서의 시행과 제도화를 위한 과제들의 종합목록이 이 심포지엄을 통해 제시됐다. '시민의회 입법추진 100인 위원회’가 주최한 이번 행사에는 시민사회, 교육, 문화, 종교, 지역운동, 학계, 언론 등 다양한 분야의 인사들이 참여했다. 지난 20년간 국내에서 시민의회의 실행을 위한 연구와 운동, 정책화를 모색한 이들을 중심으로 시민의회라는 형식에서 민주적 혁신의 길을 찾는 다양한 기대와 바람이 이날의 심포지엄으로 나타났다. 심포지엄에 앞서 출범식을 가진 100인위는 “대리적 민주주의만으로는 숱한 시대적 난제를 헤쳐가기 어렵다”면서 “생존 차원의 정치적 변혁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시민의회를 통해 유권자가 입법을 주도하는 시민주권의 새로운 민주주의 시대를 열 것”이라고 밝혔다.
이래경 100인위 준비위원장은 “현재와 같은 기득권과 엘리트를 중심으로 구성된 정치제도는 문제의 해결능력이 없다는 것이 점차 분명해지고 있다. 이들은 자기들만의 게임에 빠져 있을 뿐이며, 오히려 악성의 포퓰리즘이 이를 대신하고 있다”고 진단해 시민의회 제도화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심포지엄에는 국내에서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이래경 다른백년명예이사장, 추미애 전 법무장관, 김상준 경희대 교수, 이지문 연세대 연구교수, 김의영 · 김주형 서울대 교수, 서현수 교원대 교수 등 시민의회 연구자들이 발제와 발표자로 참여했다.
외국 연사로는 고든 캠벨 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BC)주 총리, <열린 민주주의> 저자인 헬렌 랜드모아 미국 예일대 교수, 아일랜드 시민의회 운동을 주도한 데이비브 페렐 더블린 대학 교수, 벨기에 시민의회 법제화에 참여한 민 르샹 루뱅대 교수 등이 참여했다.
이들은 무엇보다 시민 참여의 활성화와 능동화, 명실상부한 주권자 참여로서의 시민의회의 필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는 데에 일치했다.
깨어 있는 시민에서 자기통치의 주체로
기조강연을 한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은 시민의회 추진에 대해 "선거가 끝나면 맞게 되는 '정치적 무권리의 상태'를 깰 유력한 방편 중의 하나가 시민의회라는 것은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나 입증되고 있다"면서 “21세기 혼합 민주주의 아래서 주권자 시민들은 선거와 국민투표, 시민의회라는 민주주의의 3대 무기를 적절히 사용하며 대의정치의 교착과 담합,무책임을 깨고 역동적인 구조개혁의 길을 열어나갈 것이다”고 말했다.
1992년 군 부재자 투표 부정을 폭로했던 이지문 교수는 “평범한 시민들이 ‘깨어 있는 시민’에 머물지 않고 자기 통치의 주체로서의 참여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2004년 세계 최초의 시민의회를 소집했던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주의 당시 총리 고든 캠벨은 “민주주의는 구경꾼의 스포츠가 아니다.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참여가 필요하며, 그러한 참여를 통해 더 나은 공적 결정을 내릴 수 있다"며 이를 뒷받침했다. 그는 선거법 개정 시민의회를 11개월 동안 운영한 경험을 소개하면서 평범한 시민의 정책 결정 역량에 대해 증언했다. “시민들이 시민의회에서 의사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확실히 갖고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정치인들이 ‘시민들은 이해하지 못해요, 너무 정교하고 어려워요’라고 말하지만 그건 틀린 것이다. 우리 시민의회는 정말로 훌륭한 일을 해냈고 결정적인 것은 시민의회가 브리티시 컬럼비아 시민들의 신뢰를 얻었고 해야 할 일을 정치적 간섭 없이 해냈다는 것이다.”
최근 펴낸 책 『열린 민주주의』에서 시민의회를 소개한 헬렌 랜드모아 예일대 교수는 ‘열린 민주주의’라고 한 것은 민주주의에서의 새로운 비전을 얘기하려 한 것이며 ‘인민에 의한 통치’에 대한 보다 확실하고 구체적 예시라면서 ‘인민에 의한 통치’에 대해 “이는 직접 통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모든 사람이 권력의 중심, 즉 입법권에 접근할 수 있는 ‘동등한 기회’를 갖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상준 경희대 교수는 기조발제를 통해 “자원, 생태, 기후 위기와 AI혁명, 군사적 충돌 등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는 문명 사조 위기상황에 시민의회가 정치적 대표권을 수평적으로 확장하여 문명전환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해 시민의회가 민주적 혁신을 넘어서는 것이자, 민주적 혁신을 통해 문명전환에 기여할 것임을 얘기했다.
외국의 시민의회 시행 사례에 대한 설명과 평가들에서도 시민의회가 한 나라에서의 민주주의 혁신과 진전을 넘어 세계 민주주의의 진전과 글로벌 난제들의 해결에 대한 모색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의견이 모아졌다. “무기력과 위기에 처한 한국정치에 활력적인 해법을 제공하고, 나아가 한계에 봉착한 인류사회에 미래를 여는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이래경)
‘시민의회 20년’은 그러나 가능성과 함께 한계와 과제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심포지엄에서는 시민의회가 여전히 더욱 숙성되고 발효돼야 하는 단계임을 상호 확인했다. 또 표준적인 시민의회의 제시와 함께 각 나라와 사회, 사안에 맞는 수많은 ‘시민의회들’의 실험과 모델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주에서의 선거법 개정 시민의회 개최는 현실정치에서 첫 시도였는데도 이후 시민의회들의 전범이 될 만큼 거의 완성된 형태로 등장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BC주 시민의회는 1년 동안 지속적으로 학습, 토론, 숙의하며 200시간 넘게 축적의 시간을 가졌다. 그 결과 시민의원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선거제도에 준전문가적 식견을 갖출 수 있었다. 또 이는 그 이전의 배경 논의와 실험이 그만큼 풍족했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같은 모범을 보였음에도 이후 시민의회의 확산은 매우 제한된 범위에 머물렀다.
‘시민의회 20년’의 가능성과 성공, 한계
캐나다에 이어 두 번째로 시민의회를 도입한 ‘아일랜드 시민의회’는 상당한 성공을 이뤄냈다. 이를 소개한 데이비드 페렐 더블린대 교수에 따르면 아일랜드가 시민의회의 세계에 진출한 것은 2011년, 이 나라가 겪은 최악의 경제위기 와중이었다. 선거에서 여당이 전례 없는 붕괴를 겪었고, 주요 정치 및 제도의 개혁을 약속하는 새 정부가 선출되었다. 여러 측면에서 새 정부는 아일랜드 정치학계가 제시한 제안을 따랐다. “정치학자들은 2009년부터 정치 시스템의 문제를 해결하고 향후 유사한 위기의 재발을 방지하려 고안된 새로운 형태의 정치를 장려하기 위해 일련의 개혁을 요구해왔다. 아일랜드는 국민투표의 전통이 있으며, 국민투표를 통해 세계 최초로 동성애자 결혼제도 개혁을 이루었고 시민의회를 통해 헌법개정까지 이뤄내는 성과를 올렸다.” 페렐 교수는 “그러나 아일랜드 시민의회는 아직도 정치인이 더 많은 권한을 갖고 있는 것이 한계”라고 했다.
민 르샹 교수도 그 자신이 참여한 벨기에 시민의회 법제화 과정에 대해 설명하면서 가능성과 함께 위험을 동시에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르샹 교수에 따르면 원래 참여민주주의와 숙의민주주의를 위한 비옥한 기반이 될 운명이 아닌 벨기에에서는 참여적, 심의적 민주주의의 첫번째 초석이 의회나 시민사회가 아닌 님비(NIMBY)현상에 대응한 전문행정관료에 의해 놓여졌다. “그러나 시민 G1000이니셔티브(1000명 시민대표의 이니셔티브)가 만들어져 벨기에 전역에서 무작위로 선택된 704명의 시민이 모여 사회보장, 위기상황에서의 부의 분배, 이민문제 등 세 가지 중대사안에 대한 광범위한 심의가 이뤄진 것은 벨기에처럼 분열된 사회에서도 대규모 시민의회를 조직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G1000은 시민의회 제도화를 향한 중요한 전환점이 됐고 ‘일회성 시민의회’의 경험의 축적 위에서 시민의회의 상설화가 이뤄졌다. 르샹 교수는 “벨기에 내의 가장 작은 지역인 독일어권 공동체를 제외하고는 완전히 실현되지 못했지만 2019년 5월 총선 이후 벨기에의 다른 지역의회도 그 선례를 따르게 됐다”고 설명했다.
시민의회의 실행과 제도화에서 앞선 이들 나라에서의 경험은 시민의회의 성공을 위한 조건을 설명해줬다. 한 번의 성공과 모범이 곧 다음번의 성공으로 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 그러나 선행 경험은 어떤 식으로든 자산으로 축적된다는 것을 보여줬다. 또한 민주주의의 혁신으로서의 시민의회도 끊임없는 혁신 즉, ‘혁신의 혁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민주주의와 문명전환에 대한 학술담론을 지속적으로 제기해 오면서 20년 전부터 시민의회에 꾸준히 주목해 온 김상준 교수는 기조발제를 통해 한국의 시민의회 역사와 현황에 대해 소개하면서 “한국에서의 시민의회 논의는 세계의 큰 흐름과 같이 하지만 동시에 한국 정치의 고유한 맥락 속에서 전개되어 왔다”고 요약했다.
“1998년 최초로 야당이 집권에 성공함으로써, 대의민주주의의 외적 형식은 완성된 것으로 평가받게 된 새로운 상황 속에서 비로소 대의민주제의 한계에 대한 인식과 이를 극복하는 방법에 대한 실제적 모색이 시작될 수 있었다. 기존의 표준적 대의민주주의에 참여, 결사, 심의 민주주의 요소를 가미해 민주주의의 틀 자체를 확장하자는 제안이 한국에서 나올 수 있었다.”
김 교수는 “그러나 첫 제안 이후 10여 년 동안 한국에서의 시민의회론은 뚜렷한 반응을 끌어내지 못했고 ‘비현실적인 논의’라는 반응이 대체적인 분위기였는데, 그럼에도 이 기간 중에 소수의 연구자들이 이 주제에 관해 꾸준히 제안을 했고 참여정부의 사법개혁 노력이 국민참여재판제 도입으로 나타난 것은 ‘시민심의제도’의 인식 확장을 위한 중요한 진일보가 되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시민의회의 또 한 번의 진전이 이뤄진 것은 2008년의 촛불집회 때였다. 시민항의의 지속성 담보를 위해 시민의회와 같은 기구가 필요하다는 제안이 일부 학자와 활동가들에 의해 제기됐고, 일부 시민운동가들과 진보정당 활동가들은 각종 시민정책 토론패널과 대의원 구성, 정당 공천에 시민의회적 방법을 적용하기도 했다. 일부 지방자치단체 민선 수장들이 지자체 정책 수립과 평가 과정에 시민의회적 방법을 응용하기도 했고, 일부 지역 사회 갈등 해결에 시민배심원이나 공론조사 방법이 적용되기도 했다.
김 교수는 “한국에서 이론적인 ‘시민의회’ 제안은 세계적으로도 이른 편(2004~2005년)이었지만 국민적 관심의 대상이 될 정도의 본격적인 제도적 실험은 2017년 <신고리 5, 6호기 건설/폐기 여부에 대한 공론화위원회를 통해 비로소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고, 이후 2023년까지 중앙과 지방정부 주도의 크고 작은 ‘공론화위원회’가 70여회에 걸쳐 시행됐다”고 설명했다.</p>
김 교수의 말대로 한국에서 시민의회는 이론적 논의와 실천 간의 격차 속에서 본격적인 실행이 서서히 시도되고 있는 상황이다. 아직은 한국사회에서 큰 사회적 여론을 형성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같은 상황에서 시민의회 입법화 추진은 시민의회의 본격적인 도입과 제도화를 위한 작업이다. 시민의회의 법정기관화는 벨기에 외에서는 실현되지 못하고 있으며, 시민의회법은 어느 나라에서도 제정되지 않았다. 심포지엄에서는 최소한 국회가 시민의회법을 제정해서 시민의회를 법정기관으로 만들도록 시민적 압력을 조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치된 의견으로 나왔다.
추미애 당선자, “검찰·언론개혁 위해서도 필요”
새롭게 구성되는 22대 국회에서 국회의장으로 유력시되는 추미애 전 법무장관이 추진위에 참여해 온 것은 입법화의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높여주고 있다. 추 전 장관은 “정치적 무지성과 사회적 무지성의 극복을 위한 ‘진화된 민주주의 제도’로서의 시민의회의 시급한 도입이 필요하다”면서 22대 국회에서 시민의회의 입법화를 적극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추 전 장관은 이를 22대 국회의 주요한 과제인 검찰개혁과 언론개혁의 한 방도로도 제시했다.
“시민의회가 활성화 되면 언론의 병폐도 고칠 수 있고 검찰개혁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언론개혁, 검찰개혁을 위해서도 시민의회가 아주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곽노현 교육감은 “시민의회의 결정에 구속력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개헌이 필요한데, 개헌 전에는 일단 권고적 효력을 갖는 시민의회를 만들 수밖에 없다. 개헌을 하기 위해서도 시민의회가 필요하다. 시민의회법 제정이 가장 우선이다”고 말했다.
이같은 시민의회의 제도적 입법화는 ‘촛불 혁명’의 광장에서 확인된 시민의 개혁동력을 에너지로 삼을 때 더욱 가속될 수 있다는 데에 참가자들은 일치했다. 촛불의 시민 열기가 그때까지 일부 사람들의 구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시민의회를 현실적인 대안으로 불러낸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상준 교수는 “한국 민주주의의 특징은 마그마처럼 억눌렸던 민의가 주기적으로 폭발한다는 점에 있다”면서 “시민의회 논의도 2016~2017년의 촛불혁명 때 '탄핵은 국회에서 하고, 개헌은 시민의회에서 하자'는 제안이 촛불 공론장에서 큰 주목을 받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촛불 공론장에서 힘을 획득한 시민의회론은 탄핵 이후 대선국면에서도 영향력을 발휘하여 2017년 4월 문재인, 안철수, 심상정 세 대통령 후보로 하여금 ‘헌법개정 시민의회 또는 국민참여개헌기구를 통한 개헌’을 공약하도록 하는 데에까지 이르렀다.
추미애 전 장관은 “세계사에 유례없는 광장의 촛불이 고에너지 민주주의의 폭발력을 보여주었다면 그것을 사회 개선과 민생 개선을 위한 지속적인 숙의 공간을 마련해 사회변혁의 에너지로 이어지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곽노현 전 교육감 역시 “한국의 민주주의는 현대 선진민주주의 동향에 비춰볼 때 대의민주주의의 제도 혁신 속도가 구미 선진국에 비해 느린 편”이라고 진단하면서도 “광장과 길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능동적 시민의 수가 많고 저항성이 강한 것으로 나타나는 한국 민주주의의 건강성과 개혁동력에서 민주주의 제도혁신과 정치개혁의 에너지로 삼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100인위 출범선언문에서는 이에 대해 “시민의회의 실현을 추구하는 것은 동학에서 촛불에 이르기까지 민주주의의 세계사적 핏줄을 이어가는 역사의 순리이자 현실의 필연”이라고 밝히고 있다.
시민은 시민의회 ‘참가자’ 아닌 ‘참여자’ 돼야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한국에서의 시민의회에 대한 높은 기대만큼이나 선결돼야 할 과제가 적잖음을 확인했다. '시민의회 제도화를 고려사항'을 발표한 서현수 김주형 교수는 “민주적 혁신 중에서 최근 세계적으로 가장 활발히 시도된 것은 시민의회와 같은 미니공중이지만 국내에서 시도된 숙의적 미니공중은 중요한 한계를 보였다”면서 “정형화된 숙의 절차, 관 주도로 시민들의 역할은 ‘참여자’라기보다는 ‘참가자’에 가까웠다”고 평가했다.
서현수 김주형 교수는 "당면한 정치적, 정책적 목표에 매몰되지 말고 민주주의 정치의 넓은 지형과 장기적인 과정 안에서 시민의회의 위상과 역할을 적절히 설정해야 한다. 특히 이런 시도가 기존의 대의제 정치 제도 및 과정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협력적이고 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시민의회에서 도출된 결론이 그 자체로 최종적인 결정권을 행사해야지만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며 여러 경로로 정치과정에 연계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의제의 설정에서부터 결론 도출에 이르기까지 시민들의 참여를 다층적으로 강화하고 구상에서 설계, 운영에 이르는 과정에까지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자칫 부실한 운영으로 시민참여 무용론에 힘을 실어주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론화위원회’ 실험으로 주로 나타난 한국에서의 시민의회 시도는 아직 정부가 주도하는 정책논의에 시민의회 방식을 축약적 방식으로 결합시키는 수준에서 이뤄져왔다는 것이 이날 심포지엄에서의 대체적인 평가다. 시민주도 방식으로 주요 헌법조항과 주요 국가 정책을 심의하고 변경하는 ‘민주적 혁신’의 수준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의 '한국 시민의회' 앞에 놓인 과제다. 100인위 출범선언문에서 선포하듯 밝힌 "다양한 사회적 약자, 소수자는 물론 미래세대와 지구의 모든 생명까지도 의사결정 과정에 포함하는 대안적 민주주의의 가능성"의 한국에서의 실질적인 구현에 이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인 것으로 보인다.
일정한 재정적 뒷받침, 운영 매뉴얼 확립, 정치적 변화에 영향받지 않는 제도화의 필요성은 그래서 더더욱 필요해 보인다. OECD가 이미 미래정치 거버넌스의 중요한 방식으로 강력하게 추천하고 있는 시민의회의 입법화가 22대 국회의 과제, 최소한 한 의제가 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시민의회 100인위는 앞으로 시민의회 입법화를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펼치기로 하고, 22대 국회 입법 운동, 2026년 지방선거에서 시민의회의 공약화를 위한 캠페인과 협의, 시민의회 논의 확산 등의 활동을 벌일 계획이다.
이 기사는 <시민언론 민들레>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