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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 주신 면역력을 회복해야
  • 이기우
  • 등록 2024-06-28 09:4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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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2주간 금요일(2024.6.28.) : 2열왕 25,1-12; 마태 8,1-4


오늘 독서에서는 남 유다 왕국이 바빌론의 군대에 의해서 멸망당하던 역사적 장면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바빌론 임금은 유다 임금 치드키야와 함께 도성에 남아 있던 자들 가운데 쓸모가 있을 법한 기술자, 지식인 등을 모두 끌고 갔고, 그들의 눈에 별 쓸모가 없어 보이는 가난한 사람들만  일부 남겨서 포도 농사를 짓게 하였습니다.  오늘 미사의 화답송에서 들으신 시편 137편의 노래는 바빌론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유다인들이 유배기간 내내 지녔던 절절한 그리움을 말해줍니다. 


“바빌론 강기슭, 거기에 앉아, 시온을 그리며 눈물짓노라. … 우리 어찌 남의 나라 낯선 땅에서, 주님의 노래를 부를 수 있으랴? 예루살렘아, 너를 잊는다면 내 오른손이 굳어 버리리라. 내 혀가 입천장에 달라붙으리라.”


사실 바빌론에서 유배당하던 유다인들은 강제 노역을 해야 했던 이집트 종살이에 비해서는 비교적 편하고 자유롭게 지낼 수 있기는 했으나 마음은 결코 편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느님을 마음 놓고 찬양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빌론 궁정에 뽑혀 들어가서 불가마 화형을 당할 뻔 했다가 하느님께서 보내신 천사의 도움을 겨우 살아났던 예언자 다니엘의 이야기라든지, 바빌론의 왕비 자리에까지 올랐으나 모함에 빠져 동족과 함께 죽임을 당할 뻔했다가 목숨을 건 기도로 살아났던 에스테르가 남긴 수난 이야기에서도 보듯이, 유다인들은 못내 하느님과 고국 이스라엘을 그리워했습니다.


그러다가 유배생활 70년만에 내려진 해방령에 따라 이스라엘 땅으로 귀환한 후에 즈루빠벨과 에즈라와 느헤미야 등의 지도자들이 발벗고 나섰고 돌아왔거나 남아있던 온 백성이 합심하여 노력한 결과로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축하고 신앙 공동체로서 재건하기까지, 유다인들의 이 민족적 위기를 극복하도록 이끌었던 힘은 자신들은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유다인들의 정체성이었습니다. 민족적 위기 속에서도 발휘된 유다인들의 집단적 정체성과 신앙심이라는 힘은, 나병이라는 개인적 질병과 극한의 불행 속에서도 역시 그 진가를 발휘합니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나병을 악성 피부병으로 불렀습니다. 이 병에 걸린 사람은 피부를 나병균이 갉아 먹는 고통을 겪어야 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전염되지 않도록 공동체에서 격리되어 살아야 했고, 죽을 때까지 복귀할 수 없는 저주를 받아야 했습니다. 레위기에서는 나병 환자를 율법상 ‘부정한 자’로 규정하고 있습니다.(레위 13,45-46) 욥도 이 몹쓸 병에 걸렸었는데, 어찌나 고통스러웠던지 “살갗은 문드러지고 죽음의 맏자식이 사지를 갉아먹는”(욥 18,13) 병이라고 토로한 바 있었습니다. 


그래도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대개는 가족들이 음식을 조달해 주었겠지만, 그것도 어려워지면 스스로 먹을 것을 구하러 마을로 찾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럴 때면, “나는 부정한 사람이오, 멀리 떨어지시오!” 하고 외치며 다녀야 했습니다. 그러니 그 수치심이야 이루 말할 나위가 없었을 테지요. 말 그대로, 죽지 못해 사는 신세였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을 찾아온 나병 환자는 “주님!”이라고 부르면서 엎드려 절한 데에서도 나타나듯이 그분께 대한 믿음을 깍듯하게 고백하였습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마태 8,2ㄴ) 그러자 다른 병자에게는 무엇을 원하느냐고 묻기도 하셨던 예수님이시지만, 이 나병 환자에게는 그 절박한 신앙심을 보시고는 묻지도 않으시고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마태 8,3)는 한 말씀으로 당장 깨끗하게 고쳐주셨습니다. 이렇게 유다인들의 정체성과 나병 환자의 신앙심에 공통으로 담긴 고백에는 절박함입니다. 


사실 나병 같이 고약한 질병으로 고통받던 사람이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깨끗한 사람’이 되려면, 단지 병고에서 벗어나기만을 바라서는 어렵습니다. 삶과 죽음을 포함한 생명이 하느님의 선물임을 진정으로 깨닫고 하느님께로 돌아서야 합니다. 생명 현상의 좌표상 원점이신 하느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나병뿐만 아니라 모든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길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연 치유력 즉 면역력을 회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 면역력이 약해지면 한 번 치유되었다가도 언제든지 다시 감염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근본적인 치유는 하느님 안에 사는 것입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풍조에 물들어 죄악의 유혹에 노출된 처지에서는 분명하게 벗어나야 하는 것이지요.


마태오 복음사가 역시 이러한 의도를 지니고 이 ‘나병 환자의 치유 이야기’를 산상설교의 바로 다음에 배치해 놓았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참된 행복에 관한 가르침을 실행하는, 그래서 반석 위에 집을 짓고 좋은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야, 나병이 사람의 몸을 갉아먹듯이 사람들의 마음을 갉아먹는 죄에서 벗어나 깨끗해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 당시 유다인들의 마음을 갉아먹던 죄들은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마르 7,21-22) 예수님께서는 이런 악한 것들이 사람을 더럽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다 왕국이 멸망 당하던 당시에 남겨진 가난한 이들 곧 ‘암하렛츠’들이 예언자들이 전해준 메시아 대망 신앙을 지니고 살아남아서 ‘하느님의 경건한 이들’ 곧 ‘아나빔’으로 성장하여 메시아 예수님을 알아보고 맞이하였듯이, 바빌론에 끌려갔던 유다인들이 그곳에서 물든 우상 숭배 풍조에서 비롯된 죄악에서 벗어나 깨끗해지기 위해서도 자신들이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회복하려는 절박한 믿음이 필요했습니다.


마태오 복음사가가 편집해 놓은 구도에서 드러나듯이, 이에 대한 처방이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여덟 가지 덕목입니다. 마음이 가난할 것, 불의를 보고 슬퍼할 줄 알 것, 하느님께 온유할 것, 의로움을 행할 것, 자비를 베풀 줄 알 것, 평화를 위하여 일할 것 그리고 의로움을 행하다가 받는 박해를 견디어 낼 것 등입니다. 이 덕목을 진복팔단이라고 하는데, 이는 죄악으로 어두운 세상을 진리와 사랑으로 비추는 하느님의 빛입니다. 그러므로 이를 행하는 사람들은 자신들도 몸과 마음이 깨끗해질 뿐 아니라 세상도 밝게 비추게 될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나병 환자를 치유하신 예수님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처럼, 그분은 우리를 – 몸도, 마음도, 영혼까지도 - 깨끗하게 해 주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는 이 세상도 밝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예수님과 그분이 가르치신 복음에 대한 절박한 믿음입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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