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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선의 손길을 소중하게 가꾸는 일
  • 이기우
  • 등록 2024-08-21 09:5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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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비오 10세 기념일(연중 제20주간 수요일, 2024.8.21.) : 에제 34,1-11; 마태 20,1-16


요즘 우리나라의 정치 현실이 아주 어지럽습니다. “눈 떠보니 선진국”이라던 대한민국이 어느 새 “눈 떠 보니 후진국”이 되어 버렸습니다. 국민이 주인이 된 민주공화국에서 대통령의 리더십은 국민 다수의 지탄을 받고 있습니다. 마치 절대왕정으로 나라를 망친 조선 시대의 폭군처럼 군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절이 하수상한 이 때, 마침 오늘 독서와 복음의 초점은 리더십입니다. 성경에서는 목자론(牧者論)이라 합니다.


오늘 독서인 에제키엘 예언서 34장에 나오는 예언자 에제키엘의 목자론은 그의 예언 활동 중에서 가장 빼어난 대목이며, 오늘 복음인 마태오 복음 20장에 나오는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는 하느님 나라의 복음이 경제 현실에서 어떻게 실현되어야 하는지를 일깨워주는 독보적인 가르침입니다.


교회는 하늘 나라의 포도밭입니다. 세상에서도 목자들은 양 떼를 잘 보살펴야 하거니와 교회라는 포도밭에서 목자들은 더 그렇습니다. 교회의 목자들은 세상의 목자들에게 빛이 되어야 하고 심판의 도구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나 교회에서나 진정한 목자는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양 떼를 돌보지 않는 목자들에 대해서는 하느님께서 몸소 대적하시고 내치십니다.


그리고 하늘 포도밭의 목자이신 하느님께서 가장 많이 신경 쓰시는 것은 모든 양 떼이자 일꾼인 신자들이 빠짐없이 최소한의 몫을 나누어 받는 일입니다. 그래서 가장 늦게 와서 일을 적게 한 일꾼에게도 최소한의 몫은 챙겨주십니다. 물론 먼저 와서 일을 더 많이 한 일꾼들에게는 기쁨과 보람이라는 성과급 수당을 더 가져가게 하십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가르침에 담긴 이치를 식물을 관찰하다가 깨달은 사람이 있습니다. 독일의 식물학자 유스투스 리비히(Justus Liebig, 1803~1873)입니다. 그는 필수 영양소 중 성장을 좌우하는 것은 넘치는 요소가 아니라 가장 부족한 요소라는 ‘최소량의 법칙’을 발견했습니다. 최대가 아니라 최소가 성장을 결정한다는 그의 이 발견은 비단 식물을 기르는 원예 분야에서만이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입증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인터넷 검색 속도는 컴퓨터의 기종과 수명, 회선의 품질, 모뎀 성능, 사용자의 관심과 능력 중 가장 뒤떨어지는 요소에 의해 결정됩니다. 음향 기기의 음질도 스피커의 품질, 파워 엠프의 용량, 음향 재생기기의 성능과 수명, 음반의 품질 중 가장 성능이 떨어지는 기기에 의해 결정됩니다. 회의를 할 때에도 맨 나중에 도착하는 사람이 와야 시작될 수 있고, 공동체의 분위기도 가장 경쟁력이 낮은 소수에 의해서 달라집니다.


사회 전체의 삶의 질 역시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사회에서는 국민총생산(GDP)이 높으면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고 단언해 버리지만, 실제로는 폭우가 쏟아질 때 침수가 되어서 반지하셋방에서 죽어가야 하는 국민들의 삶의 수준만큼만 발전한 것입니다.


사회를 복음화시켜야 할 교회에도 이 법칙은 어김없이 적용됩니다. 교회에서 존재이유라 볼 만큼 중요한 것이지만 늘 모자라는 요소가 선교 의식입니다. 그리고 선교 의식 안에서도 가난한 이들의 복음화가 가장 맨 나중에 순위가 매겨지는 분야입니다. 그래서 주일미사 참석율 통계는 해마다 집계가 되지만, 그 나라에서 가난한 이들 중 신자인 비율이 얼마인지는 관심도 없고 따라서 통계에도 잡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러 세상에 오셨고, 공생활 중에도 당신에게 몰려드는 가난한 이들을 돕고 치유하고 마귀를 쫓아내시느라 바쁘셨으며, 결국 그로 인해 뒤집어쓰신 혐의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부활하신 그분은 모든 사람을, 신자들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최후의 심판에서 심판하시겠다고 미리 언질을 주시고 가셨는데, 그 심판에서 핵심이 되는 기준이 바로 가난한 이들에게 얼마나 복음을 전했고 얼마나 사랑을 실천했는지 또 그러기 위해서 얼마마한 희생의 십자가를 짊어졌는지 하는 것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이 잣대가 예수님께는 최후의 심판을 시행하시기 위해 미래에 필요한 잣대이지만, 우리에게는 현재부터 적용하고 명심해야 하는 기준입니다.


세상에서는 물론이지만 교회라는 하늘 나라 포도밭에서도 목자들이 제대로 양 떼를 돌보지 않으면 쫓겨납니다. 쫓겨나지 않더라도 부활하신 예수님의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그 목자란 지위는 고위 성직자이거나 사제들이거나 높은 지위를 차지한 신자인 것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나서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은총들, 예를 들면 시간이나 재능, 지식이나 기술, 영성이나 덕행 모두를 지닌 부자들이 다 해당됩니다. 그 은총을 주신 분의 뜻에 따라 쓰지 않고 자기만을 위해 쓰는 부자들은 모두 거짓 목자로 취급됩니다.


또한 눈을 돌려 대륙으로 향해 보면, 우리나라의 가난한 이들보다 훨씬 더 가난한 이들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아시아의 복음화 과업이 사실은 가난한 이들의 복음화 과업의 연장이요 확장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많은 아시아인들이 한국 문화를 일컫는 한류의 겉모습만을 보고 화려하고 재주와 기술도 최첨단이라며 부러워하지만, 정작 필요한 한류는 아시아의 가난한 이들을 도울 수 있는 손길입니다. 그리하여 많은 아시아 나라들이 한국처럼 발전해 보겠다고 손을 내밀고 있습니다. 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성장한 그 신화를 부러워하면서 ‘코리아 드림’을 꾸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난한 이들이 어디에 있건,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수단은 돈이 아닙니다. 사랑의 마음입니다. 지금 여기서 가난한 이들을 도울 수 있는 사랑의 마음이 있다면, 먼 데 있는 가난한 이들을 도울 수 있는 길은 하느님께서 마련하십니다. 돈이 많다고 해서 가난한 이들을 돕지 않습니다. 부자 청년처럼 자기 혼자 영원한 생명을 차지하고 싶어 하는 인색한 욕심쟁이들이 수두룩하게 많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나라와 영원한 생명은 독차지할 것이 아니라 함께 차지해야 하는 보물입니다.


그리고, 또 그래서 하늘 나라의 포도밭인 교회는 가장 모자라는 필수 요소를 찾아내서 보충해야 하고, 학습해야 하며, 우선 순위도 조정해야 하고, 상황이 가장 열악한 만큼 가장 뛰어난 인재를 배치해야 하고 가장 좋은 자원을 지원해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의 경쟁력이 살아나고 하느님의 구원 경륜이 제대로 작동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늘 나라의 포도밭에서 일어나야 하는 일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포도원 일꾼의 비유에 관해서 깊이 있는 사색을 했던 인물이 있습니다.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중요한 예술 평론가이자 후원가, 소묘 화가, 수채화가, 저명한 사회운동가이자 독지가이면서, 지질학부터 건축, 신화, 조류학, 문학, 교육, 원예와 경제학에 이르는 다양한 주제의 글을 써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깊은 울림을 주고 있는 존 러스킨( John Ruskin, 1819~1900)입니다.


그는 19세기에 가장 성공한 국가, 대영제국의 전성기에 드리워진 불평등과 도시 빈민 문제, 환경 오염을 직시하며 전통 경제학에서 벗어나자는 논리를 펼쳤습니다. 러스킨은 ‘우리가 배운 경제학대로 세상이 굴러간다면 국가적 파멸의 길이 있을 따름’이라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영국 주류사회는 러스킨에게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을 야기한다는 비난을 퍼부었고, 그 결과 그는 살해 위협까지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저술한 책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은 ‘성서 경제학’이라고 불리우면서 세월이 흐를수록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생명의 경제학’을 펴고 있는 그의 통찰은 가톨릭 사회교리의 경제 윤리를 탁월하게 담고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복음 진리에 명백하게 어긋나는 사회악이 횡횡하는 이 때, 하느님의 섭리는 공동선을 다지는 손길을 소중하게 가꾸시는 일입니다. 가라지는 쳐내시고 밀곡을 보호하시고 가꾸시어 거두실 것입니다. 그러니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되리라.”(마태 20,16) 예수님의 말씀을 잘 새기고, 여러분의 묵상과 실천에서 드러내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세상과 교회의 진정한 목자이신 하느님을 증거하는 리더십입니다.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내 양 떼를 찾아서 보살펴 주겠다.”(에제 34,11)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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