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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구현 활동의 목표는 하느님 사랑을 실천하는 것
  • 이기우
  • 등록 2025-02-06 17:10:12
  • 수정 2025-02-06 17: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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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탄핵심판 6차 변론기일 (사진출처=오마이TV 영상 갈무리)


연중 제4주간 금요일(2025.2.7.) : 히브 13,1-8; 마르 6,14-29


요즈음 헌법재판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연일 시중의 화젯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지난 12.3 계엄 때 최정예 특수부대원들이 한밤중에 국회에 난입한 일을 두고 “국회의원을 체포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국회요원을 끌어내려 했다”느니, 내란 수사에 온 국민의 관심이 쏠린 일을 두고 “호수 위에 떠 있는 달 그림자를 찾고 있다”고 비아냥거리는 등의 터무니없는 변명들이 헛웃음을 자아내고 있지요. 내란수괴가 되어 버린 현 대통령이나 그 변호인들, 또 내란에 동원되었던 장성급 사령관들이 늘어 놓는 억지 변명이나 거짓말들도 쓴 웃음을 짓게 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헌법재판이 희화화되고 있습니다.


헌법은 모든 법률의 근본이 되는 최상위 규범으로서 우리 사회의 공동선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헌법 조항에서는 국가가 보장해야 할 국민의 기본권 규정이 가장 중요하고, 그 수단 가치로서 국가의 권력구조가 어떠한 질서로 운영되어야 하느냐 하는 규정이 이에 버금가게 중요합니다. 기본권 보장과 권력구조 운영에서 본질적인 공동선의 가치가 바로 정의입니다. 그런데 작금의 헌법재판 과정에서는 이 가치에 대한 논의가 실종되어 버리고, 위에 언급한 대로 웃음거리가 될 만한 말들만 무성합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이들을 두둔하고 있는 여당의 주장이나 기성 언론의 논조는 또 얼마나 허접하고 유치한지 모릅니다. 헌법이 구현해야 할 가치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이, 그저 국민 여론을 갈라치기 하기에 바쁩니다. 우리 사회가 어쩌다가 이토록 한심할 정도로 수준이 낮아졌을까요? 우리 사회는 언제나 공동선에 대한 격조 높은 토론을 보게 될까요? 아무튼, 정의라는 가치를 실현함에 있어서 우리 사회는 갈 길이 멉니다.


오늘 복음은 세례자 요한의 죽음에 관련된 헤로데의 에피소드를 전합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복음선포 활동에 대한 소문이 널리 알려지다 보니 헤로데 영주의 귀에까지 들어갔는데, 요한을 참수한 바 있었던 헤로데는 연일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기적을 일으키시는 예수님을 두고도 요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 났다고 여겼습니다. 그만큼 의로웠던 예언자 요한을 터무니없는 상황에서 죽인 죄책감이 헤로데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다고 봐야지요.


이 참에, 마르코는 요한의 최후를 예수님의 활동에 관한 보도의 뒷이야기로 삼아 전해주고 있습니다. 유다 지방에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고 회개를 이끌어내어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주던 요한은 갈릴래아 지방을 다스리던 헤로데 영주도 회개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했었습니다. 왜냐하면 헤로데는 동생인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를 빼앗아 혼인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비판에 대하여 헤로데는 마음이 찔려서 괴로워할 뿐 감히 요한을 건드릴 생각을 하지 못하다가 비판을 받아 약이 오른 헤로디아의 충동질에 못 이겨 요한을 가두었고, 생일 잔치날에 요한을 미워하던 헤로디아의 교활한 술수에 넘어가 참수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참수 사건은 혼인 윤리를 정면으로 어긴 헤로데 영주의 불의 때문에 일어났으므로 세례자 요한이 외쳤던 하느님의 정의는 오히려 사람들의 입에 더욱 널리 오르내리게 되었습니다. 마르코는 헤로데가 요한을 막무가내로 참수한 보도를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을 선포하는 예수님의 활동의 배경에 하느님의 정의를 외쳤던 세례자 요한이 있음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구세주가 오실 길을 준비하러 왔던 예언자는 정의로 사랑을 준비한 셈입니다.


히브리서의 저자도 오늘 독서에서 형제애로 사랑을 실천해야 할 그리스도인들은 기본적으로 정의로 윤리를 실천해야 함을 상기시켜주고 있습니다.


“형제 여러분, 형제애를 계속 실천하십시오. … 감옥에 갇힌 이들을 여러분도 함께 갇힌 것처럼 기억해 주고, 학대 받는 이들을 여러분 자신이 몸으로 겪는 것처럼 기억해 주십시오. … 혼인은 모든 사람에게서 존중되어야 하고, … 돈 욕심에 얽매여 살지 말고 지금 가진 것으로 만족하십시오. … 하느님의 말씀을 일러 준 여러분의 지도자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십시오.”(히브 15,1.3.4.5.7)


이렇게 초대교회 신자들의 실천 현실을 토대로 히브리서의 저자가 권고한 대로, 정의를 실천하는 일은 사랑을 실천하는 일에 앞서서 증거해야 할 기본이요, 사랑을 실천하는 일은 정의를 실천함으로써 지향해야 할 목표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사랑과 정의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성경의 계시에 입각해서 정리해 보겠습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사랑은 신앙의 목표가 되는 상위 가치요, 정의는 윤리의 목표가 되는 기본 가치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을 모르거나 믿지 않는 세상에서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이 기본 가치인 정의를 시금석으로 삼아 목표 가치인 사랑의 진정성을 평가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회적으로 정의롭게 처신하지 않는 한 종교적으로 선포되는 진리의 진정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하느님의 사랑을 선포하는 도구로서의 열린 교회를 천명하고 나선 이후, 이 기본 명제를 확인하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1971년도에 로마에서 열린 제2차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였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세계 안에서의 정의’를 주제로 열띤 토론이 이어졌고, 그 결론을 문헌으로 펴냈는데 그 이름이 ‘세계 정의’ (DE IUSTITIA IN MUNDO)입니다. 이 문헌에서는, 앞서 말씀드린 대로, 정의 구현이 복음선포의 필수적 요건임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려는 교회는 세상 사람들 안에서 이루어져야 할 정의 문제에 무관심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기본적으로 정의부터 구현해야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실천하는 사랑이 효과있게 선포될 수 있음을 교회의 교도권적 가르침으로 선언한 것입니다.


이에 따라서, 최근의 헌법재판에서 확인할 수 있었듯이 아직도 정의라는 가치에 대한 인식이 태부족한 한국 사회에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정의가 실현되지 못하여 그 불의에 희생당하고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관심과 투신의 요청이 뜨겁게 고조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에 맞갖게 요청되는 바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정의 구현에 투신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 정의 구현 활동의 목표가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데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요청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이 문제의 선후(先後)와 비중(比重)이 이치에 맞아야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복음선포는 설득력 있게 세상에서 들릴 수 있을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복음선포는 정의와 사랑을 다 같이 실천하는 일입니다. 정의 구현 없는 종교적 처신은 공허하고 사랑을 목표로 하지 않는 사회적 투신은 하느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정의를 외쳤던 세례자 요한이 여자의 몸에서 나온 그 누구보다도 위대하다고 치켜세우시면서도, 하느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는 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서 하느님의 정의는 복음선포의 저변임을 강조하는, 정의와 사랑과 관한 교회의 가르침을 소개해 드립니다.


“역사가 불명확하고 발전하는 인간 공동체의 집단 노력이 곤란을 동반한다는 이 사실은 거룩한 구세사에 우리의 눈을 돌리게 한다. 구세의 거룩한 역사 속에서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을 보여주시고, 해방과 구원의 당신 계획을 우리에게 알려주시고, 단계적으로 그 계획을 실현시키시다가 마침내 그리스도의 부활로써 모든 시대를 위하여 한번 완성하신 것이다. 따라서 정의를 위한 행동과 세계 개혁 활동에의 참여는 복음 선포의 본질적 구성 요소임이 명백하다. 즉, 인류를 구원하고 온갖 억압에서 해방시켜야 할 교회 사명의 일부인 것이다.”(세계 정의, 6항)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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