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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룰을 선수가 정하는 정치, 이대로 둘 것인가
  • 이원영
  • 등록 2026-05-01 12: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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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4월 24일, 전태일기념관 교육실에서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이 4·19 66주년 기념 초청강연을 하고 있다. 주제는 `국회의 헌법·선거법 셀프입법 특권, 어떻게 해체할 것인가` ⓒ 시민인권위원회



2026년 4월 24일 금요일, 오후 청계천 곁의 전태일기념관 교육실에는 20명 남짓의 시민이 앉아 있었다. 스크린에 떠 있던 강연 포스터의 제목은 평범하지 않았다. 「국회의 헌법·선거법 셀프입법 특권, 어떻게 해체할 것인가」. 그리고 「국민발안과 시민의회가 해법이다」. 4·19혁명 66주년을 기념하는 초청강연이었다. 공동주최는 시민의회 전국포럼, 시민인권위원회, 촛불행동.


김정희 시민인권위 공동위원장의 인사말에 이어 강단에 선 사람은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 2010~2012년 서울시 교육감으로서 무상급식과 학생인권조례의 시대를 연 그 사람이다. 이상한 판결로 오랜 야인의 시기를 거친 뒤, 이제는 정치개혁의 이론가이자 시민의회 운동의 선창자로 돌아와 있었다. 그는 두 시간 동안 멈추지 않고 이야기했다.


강의의 구호는 단순했다. "대리운전 권력을 주인이 되찾자." 그러나 그 단순한 구호 뒤에는, 한국 정치가 지난 40년 동안 왜 바뀌지 않았는가에 대한 꽤 긴 설명이 필요했다.


검찰개혁 다음의 전장


2024년 말의 '빛의 혁명' 이후 한국 사회는 숨 가쁜 제도 개혁의 시기를 통과해 왔다. 검찰의 수사권은 거의 전면 이관되었고, 사법부를 겨냥한 법왜곡죄와 재판소원 제도가 신설되었으며, 대법관 수는 증원되었다. 언론과 유튜브는 이 격변의 주인공들 — 대통령과 법무장관, 총리와 정당 대표 — 을 돌아가며 비추었다. 그러나 곽노현이 보기에, 한국 정치의 가장 견고한 성채는 아직 손도 대지 못한 채 남아 있었다.


그 성채의 이름은 '국회'다. 정확하게 말하면, 국회의원들이 스스로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정하고, 스스로 게임의 룰을 바꾸고, 스스로 자신들의 월급을 정하는 — 한마디로 셀프 입법(self-legislation)의 체제다. '검찰 개혁이 어려웠다면 사법 개혁은 더 어려웠고, 사법 개혁이 어려웠다면 정치 개혁은 그보다도 더 어렵다'는 것이 곽노현의 진단이었다.


왜 정치 개혁이 가장 어려운가. 답은 단순하다. 다른 모든 개혁은 국회가 했지만, 정치 개혁은 국회가 자기 자신에게 칼을 대는 일이기 때문이다. 국정원 개혁은 문민정부가 시작했고, 검찰 개혁은 두 번의 시민 혁명이 완수했으며, 사법 개혁은 '내란 사법'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밀어붙였다. 모두 외부의 힘이 내부의 저항을 이긴 결과였다. 그러나 정치 개혁은 그 외부의 힘을 빌릴 통로조차 제도화되어 있지 않다. 국민발안도 없고, 시민의회도 없다. 그래서 국회는 지난 40년 내내, 마치 어떤 비밀 협약을 맺은 듯, 자신들의 편에 서 있는 룰을 건드리지 않았다.


그는 여기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독한 백성'의 역설


한국 유권자는 지독한 사람들이다. 지난 40년 동안 대통령을 5년에 한 번씩 꼬박꼬박 갈아치웠고, 300명 국회에서 4년마다 평균 100명 — 물갈이율 30% 이상 — 을 교체해 왔다. 이는 전 세계 선진국 의회 중 단연 최고 수준이다. 미국 의회 물갈이율은 5% 남짓이고, 유럽 대륙의 주요국들도 대개 10%를 넘지 않는다.


직접 대통령을 감옥에 보낸 적도 있고, 대통령을 보내지 않으면 대통령의 자식이라도 보냈다. 그것도 평화적으로 했다. 권력에 대한 응징의 강도로 보자면 한국 시민은 어느 선진 민주주의 국가의 시민보다도 맹렬했다. 그러나 그 맹렬한 응징에도 불구하고, 정치판은 바뀌지 않았다. 얼굴은 바뀌었지만, 판은 그대로였다.


노회찬의 유명한 비유처럼, 한국 정치는 '낡은 불판'에 고기 종류만 계속 바꿔 올리는 것과 같았다. 고기는 늘 새로웠지만, 불판이 바뀌지 않으니 맛은 매번 질겼다. 곽노현은 이 비유를 이어받아 물었다. "왜 불판이 안 바뀝니까?" 그리고 스스로 답했다. "사람 탓이 아닙니다. 제도 탓이에요. 제도 뒤에 버티고 있는 법과, 그 법이 주는 이해관계와, 그것을 정당화하는 관념의 탓입니다."


여기서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 제도를 만드는 사람들 — 국회의원 — 이 바로 그 제도로부터 이익을 얻는 당사자다. 그들에게 제도를 바꾸라는 것은, 자기 손에 쥐어진 권력과 특권을 스스로 내려놓으라는 것과 같다. 그런 일을 기대하는 것은, 그가 보기에, "약 먹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누가 바꿀 수 있는가. 이 질문이 곧 이 강연의 출발점이자 도착점이었다.


특권의 재분류 — 진짜 표적은 따로 있다


의원 특권 하면 흔히 떠올리는 것은 불체포특권과 면책특권이다. 회기 중 국회의원을 함부로 체포할 수 없게 한 특권과, 공식 회의에서의 발언을 면책하는 특권. 두 가지 모두 헌법에 규정된 특권이며, 시민들은 대체로 이 두 특권에 대해 부정적인 인상을 갖고 있다. 부패 비리 정치인들이 걸핏하면 불체포특권의 방패 뒤에 숨어 온 기억 때문이다.


그러나 곽노현은 이 통념을 뒤집었다. "불체포특권과 면책특권은 나쁜 특권이 아닙니다. 오히려 필요한 장치입니다." 그의 근거는 최근의 기억에서 나왔다. 윤석열 정부 시절, 야당 의원들이 검찰과 정권의 전방위적 압박에 노출되어 있을 때, 만약 불체포특권이 없었다면 야당의 저항은 더 일찍 무너졌을 것이다. 면책특권이 없었다면 의원들은 대통령 비판을 꺼렸을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제가 관철되는 국면에서, 이 두 특권은 소수파 야당을 보호하는 거의 유일한 방벽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한 사람을 구체적으로 거명했다. 당시 민주당 혁신위원회 위원장(김ㅇㅇ)이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고 검찰에 출두하라"고 요구했던 일이었다. 곽노현의 평가는 가혹했다. "그 특권이 뭔지 모르는 겁니다. 쥐뿔도 모르는 사람이 혁신위원장이랍시고 앉아 있었던 거예요." 이 지점에서 곽노현은 특권을 재분류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헌법상 불체포·면책특권은 유지되어야 한다. 그러나 진짜 없애야 할 특권은 따로 있다. 그것이 바로 이날 강연의 핵심어, 셀프 입법 특권이었다.

 

셀프 입법 특권 — '자기대리 금지 원칙'의 중대한 예외


곽노현은 법학자답게 근본 원칙에서 출발했다. 법의 역사에는 두 개의 오래된 금지 원칙이 있다. 하나는 '자기재판 금지의 원칙'이다. 재판관은 자기 사건을 재판할 수 없다. 이해관계가 있는 당사자가 판단자가 되면 그 판단은 공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자기대리 금지의 원칙'이다. 대리인은 자기 자신의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에서 주인을 대리해 결정할 수 없다. 민법의 쌍방대리 금지가 그 한 예다.


이 원칙을 입법 영역에 적용해 보자. 그러면 자연스럽게 '자기입법 금지의 원칙'이 도출된다. 대리인이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스스로 정할 수 없다면, 국민의 대리인인 국회의원 역시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스스로 정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다. 한국에서는 국회의원의 권리·의무를 국회의원이 정한다 (국회법, 공직자 처우 관련 법들). 또, 정당의 권리·의무를 국회의원이 정한다 (정당법, 정치자금법). 또, 국회의 권한을 국회의원이 정한다 (국회법, 각종 국회조직법). 나아가 헌법조차 국회의원이 사실상 독점적으로 발의·심의·의결한다. 국민투표는 형식에 불과하고, 대통령 발의권은 실질적 견제력이 없다.


"제가 이것을 셀프 입법 특권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전 세계 어떤 비교정치학 논문이나 헌법 논문에서도 이 용어를 쓰는 사람을 보지 못했어요." 곽노현의 말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이것이야말로 '선거 대의정(代議政)의 쥐약이자 아킬레스건'이다. 아무리 유권자가 4년마다 국회의원을 갈아치워도, 새로 뽑힌 국회의원이 게임의 룰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정하는 한, 판 자체는 바뀌지 않는다. 이것이 지난 40년간 한국 정치개혁 실패의 1번 원인이다. 그리고 이 셀프 입법 특권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영역이 있다. 선거법이다.


게임의 룰 — 왜 소선거구 단순다수제는 바뀌지 않는가


야구에서 3아웃을 4아웃으로 바꾸면 게임이 완전히 달라진다. 사사구를 삼사구로 바꾸어도 마찬가지다. 룰이 곧 게임이다. 선거도 그렇다. 선거 제도에는 101가지의 변수가 있지만, 한국인들은 초등학교 반장 선거에서부터 어른들의 대통령 선거까지, 하나의 룰에만 익숙해져 있다. 단순다수대표제, 즉 "한 표라도 더 얻으면 당선"이라는 룰이다.


그런데 이 룰을 유지하고 있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매우 드물다. 미국, 영국, 프랑스 정도에 불과하다. 이 세 나라에는 공통의 '원죄'가 있다. 이들은 전 세계가 절대군주정이던 시절에 가장 먼저 왕이 없는 정치 체제를 실험했다. 영국은 1688년 명예혁명으로 입헌군주제와 의회 중심 제도를, 미국은 1776년 독립혁명으로 '임기 있는 왕' 즉 대통령제를 창안했다. 프랑스는 1789년 이후 여러 차례 공화국을 시도했다. 그 시대에 가장 이해하기 쉬운 집계 방식이 단순다수였다. 그 뒤로 경로 의존성이 너무 강해져, 이 나라들은 이제 와서 제도를 바꾸지 못하고 있다.


반면 유럽 대륙 국가들은 이야기가 다르다. 1차 세계대전 직전후인 1910~1925년 사이, 독일·벨기에·네덜란드·스웨덴 등 거의 모든 대륙 국가들이 '비례대표제'로 전환했다. 결정적 계기는 노동 운동의 성장과 도시 인구의 폭증이었다. 단순다수 소선거구제 아래에서는 재산이 적고 인구 밀집도가 낮은 귀족 영지가 과대 대표되는 반면, 노동자와 빈민이 밀집한 도시 선거구는 과소 대표되었다. 영국의 차티스트 운동이 보통선거권을 요구했듯, 대륙에서는 한발 더 나아가 '인구 비례에 따른 의석 배분 — 비례대표제'가 답이라는 합의가 형성되었다.


한국은 어느 쪽인가. 한국은 미국·영국을 모델 삼아 출발했다. 그래서 소선거구 단순다수제가 지금도 국회와 지방의회 지역구 선거의 기본 골격이다. 비례 의석은 국회에서 13~16%, 광역의회에서 10% 수준에 불과하다. 이 제도의 폐단은 잘 알려져 있다.


첫째, '사표 심리'가 유권자의 소신 투표를 억누른다. 둘째, '일당 독식' 현상이 반복된다. 이론상 51% 지지율의 정당이 49% 지지율의 정당을 모든 선거구에서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제3당의 의회 진입이 구조적으로 봉쇄'된다. 한국에서 이 현상은 지방선거에서 극단적으로 나타났다. 곽노현이 제시한 수치는 충격적이다.


2018년 문재인 정부 1년차에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서울시의회 지역구 100석 중 97석을 석권했다(비례 10석을 포함하면 110석 중 105석). 경기도의회에서도 135석 중 130석 이상을 가져갔다. 수도권 광역의회에서 국민의힘 계열은 원내 교섭단체조차 구성하지 못했다. 원내 교섭단체 기준은 20석인데, 5~7석에 그쳤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4년 뒤인 2022년 지방선거에서는 정확히 반대 현상이 일어났다. 윤석열 당선 직후의 바람을 탄 국민의힘은 17개 광역 중 10곳을 석권했고, 서울·인천에서 70% 이상을 득표했다. 이후 이들 광역의회에서는 학생인권조례, 도시인권조례, 무상급식조례, 탈시설조례 등이 시장·지사의 거부권을 3분의 2 재의결로 무력화하는 방식으로 잇따라 폐지되었다.


이것은 민주주의인가. 곽노현의 진단은 단호하다. "이건 일당 독재입니다. 국민들에게 좋은 일이 아니에요. 견제가 없으니 마음 놓고 해 먹는 구조죠." 그런데 정작 국회의원들은 이 문제를 방치한다. 왜인가. "4년 있다가, 아무리 오래 걸려도 8년 있으면 풍향이 바뀌어 이번엔 내가 싹쓸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계산이 여야의 암묵적 공모를 낳았다.


민주주의의 두 얼굴 — 아리스토텔레스의 통찰


이 지점에서 그는 2천 몇백 년 전의 한 철학자를 호출했다. 아리스토텔레스다. 그는 아테네 민주정의 현장을 관찰하며 이렇게 정리했다. "선거는 귀족정의 원칙이다. 추첨은 민주정의 원칙이다." 곽노현은 이 한 문장을 "너무 깔끔하고 명쾌하다"고 칭찬했다. 선거는 반드시 '탁월한 자', 즉 귀족 을 뽑는 장치다. 유권자는 자연스럽게 더 뛰어나 보이는 사람, 돈을 많이 벌었거나 유명하거나 학벌이 좋거나 혹은 최소한 10번 떨어져도 포기 않는 끈기라도 있는 사람을 뽑는다. AI 수석으로 영입되는 하정우 같은 전문가, 배우 이순재나 코미디언 이주일 같은 유명인이 국회에 입성하는 이유도 같다. 그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탁월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선거를 민주주의의 수단으로 생각하는가. 답은 단 하나, 1인 1표라는 평등 원리에 있다. 이 세상에서 남녀노소 빈부 교육 성격이 모두 다른 인간들을 평등하게 대우하는 거의 유일한 제도가 1인 1표다. 이 점에서 선거는 민주주의적이다. 그러나 그 한 표로 뽑아 올리는 결과물은 여전히 귀족, 정확히는 '임기(任期) 있는 귀족' 이다.


이 통찰이 왜 중요한가. 곽노현은 이 대목에서 갑작스레 미래 예측으로 도약했다. 지금의 기술관료주의와 인공지능 시대가 그대로 진행된다면, 향후 30년 안에 1인 1표 원칙이 허물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무식한 놈들이 뭘 안다고 표를 행사하나, 꺼져, 이렇게 되거나, 아니면 재산 1억당 한 표씩 줘서 100억 가진 사람이 100표를 행사하는 식으로 갈 겁니다. 지금 같은 추세면 막을 힘이 없기 쉬워요." 물론 이 예측의 정확성은 논쟁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권위주의적 퇴행이 세계 곳곳에서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관찰은 반박하기 어렵다. 곽노현의 결론은 이렇다. 지금의 대의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강화하지 않으면, 민주주의 자체가 허물어질 것이다. 그 강화의 구체적 내용이 바로 이날 강연의 남은 절반을 차지했다.


게임의 룰을 바꾸는 법 — 순위투표제라는 발명


어떻게 선거제도를 개혁할 것인가. 곽노현이 제시한 답은 순위투표제(Ranked Choice Voting, RCV) 와 이를 중선거구에 확장한 단기이양식 투표제(Single Transferable Vote, STV)였다. 순위투표제의 작동 방식은 단순하다. 유권자는 후보들에 대해 1순위, 2순위, 3순위… 하는 식으로 순위를 매긴다. 개표는 이렇게 진행된다.


1) 1순위 표를 집계한다. 과반수 득표자가 있으면 당선 확정.

2) 과반수가 없으면 최저 득표자를 탈락시키고, 그 후보를 1순위로 찍은 표들의 2순위를 살아남은 후보들에게 이양한다.

3) 이 과정을 과반수 득표자가 나올 때까지 반복한다.


이 단순한 룰이 만들어 내는 효과는 놀랍다. 승자에게는 과반수의 정당성이, 유권자에게는 사표 없는 소신 투표와 투표 효능감이, 정당에게는 정책 선거의 강제가 주어진다. 왜 정책 선거가 강제되는가. 네거티브 선거를 하면 2·3순위 표를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상대 후보의 지지자들로부터 2순위 표를 얻으려면, 그들의 마음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


곽노현은 이 제도의 '모범생'을 그가 아끼는 말투로 소개했다. 뉴욕시장 조란 맘다니(Zohran Mamdani)다. 맘다니는 2025년 뉴욕시 민주당 경선에서 이 순위투표제의 수혜자가 되어 2라운드 만에 과반수를 확보했다. 그 이전 뉴욕시장 민주당 경선에서는 후보가 13명 출마했고 5순위까지 기표했는데, 8차례 개표 끝에 50.6%로 당선자가 결정되었다. 8차까지 이양된 표가 여전히 살아 있었다는 것, 이것이 순위투표제의 매력이다. 사표가 없기 때문이다.


비슷한 원리를 여러 명을 뽑는 중선거구에 확장하면 단기이양식 투표제(STV)가 된다. n명을 뽑는 선거에서 당선 확정 득표율(쿼터)은 1/(n+1)에 한 표를 더한 값이다. 4인 선거구라면 20% + 1표, 5인 선거구라면 약 17% + 1표가 당선선이다. 1순위 표가 쿼터를 초과한 후보의 잉여표는 차순위로 이양되고, 탈락 후보의 표 역시 차순위로 이양된다. 그 결과는 거의 정확한 비례대표제다. 다만 유권자는 정당 명부가 아니라 사람에게 직접 기표하므로 '투표의 손맛'이 살아 있다.


그는 이 지점에서 가짜 개혁론자를 가려내는 리트머스 시험을 제시했다. "선거제 개혁을 말하지 않으면서 권력 구조 개혁을 외치는 자들은 모두 가짜입니다. 내각책임제로 바꾸자면서 국회의 비례대표제화를 말하지 않는 자도 마찬가지예요. 권력의 단물만 노릴 뿐, 실제로 바뀌는 게 없거든요."


밴쿠버의 91% — 시민이 시민을 대표했을 때


곽노현이 한국 청중에게 가장 강렬하게 권하고 싶어 했던 사례는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BC)주 시민의회였다.


배경은 이렇다. BC주는 79석 단원제 내각책임제 주의회를 운영한다. 1996년 선거에서 BC자유당(당수 고든 캠벨)이 득표율 41%로 38%의 상대를 앞섰다. 그러나 소선거구제의 농간으로 BC자유당은 오히려 6석 차로 패배했다. 득표 1등, 의석 2등이 된 것이다. 불합리를 경험한 캠벨은 4년 뒤 2001년 선거에서 79석 중 77석을 싹쓸이하며 복귀했다. 그리고 공약대로 선거제 개혁 프로세스를 출범시켰다.


BC주가 택한 방식은 주의회가 아니라 '시민의회'였다. 남녀 동수, 지역·연령 비례를 맞춘 160명의 시민 대표를 무작위 추첨으로 선발했다. 이들은 11개월 동안 매주 주말 200시간 이상 학습하고, 토론하고, 상반된 견해의 연구자들로부터 자문을 들었다. 사람들은 결과를 두고 내기를 벌이기도 했다. 대세는 당시 뉴질랜드가 1996년에 도입한 독일식 혼합연동형 비례대표제였다. 그런데 뚜껑을 열었을 때 시민 대표들의 선택은 다른 곳에 있었다. 2~7인 중선거구제 + 단기이양식 순위투표제(STV). 찬성 146명, 반대 7명, 기권 7명. 찬성률 91%였다.


곽노현은 이 수치의 의미를 짚었다. "독재사회가 아닌 이상 90%는 사실상 100%에 가까운 합의입니다." 보통 사회적 합의로 인정되는 기준은 3분의 2, 약 66%다. 시민의회 권고 채택 기준은 통상 70%다. 91%는 그 모든 기준을 압도적으로 넘는다.


왜 시민들은 독일식이 아니라 STV를 택했는가. 곽노현의 해석은 설득력이 있다. 독일식 비례대표제는 결국 정당 명부에 기표하는 것이기 때문에 유권자에게 '사람을 뽑는 손맛'을 주지 않는다. 반면 STV는 사람에게 직접 순위를 매기면서도 2·3순위 이양을 통해 비례대표제의 효과를 낸다. 전문가들이 이론적으로 우아하다고 본 독일식보다, 시민들은 유권자 효능감과 비례성의 조합을 택한 것이다. "일반 시민이 바보가 아닙니다. 정확하게 본인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봐요."



▲ ⓒ 시민인권위원회



시민의회 —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가능한가


BC주 사례가 한국에 주는 시사점은 분명했다. 국회의원이 자기 게임의 룰을 스스로 바꾸지 않는다면, 다른 주체가 그 역할을 대신해야 한다. 그 다른 주체가 곧 시민의회다. 그런데 한국 헌법에는 국민발안이 없다. 국민청원은 있지만, 21대 국회가 임기 말에 적법하게 성립된 시민청원 120여 건을 회기 종료 하루 전날 일괄 기각한 사례에서 보듯, 실질적 구속력이 없다. 그러므로 시민의회가 현실적 유일 경로다.


곽노현이 제안하는 한국형 시민의회의 구성은 이렇다. 300명의 시민 대표로 남녀 50%, 연령별·지역별·교육수준별·정치성향별로 인구통계학적 대표성을 반영한 무작위 추첨. 100시간 이상의 학습과 토론, 숙의. 그리고 입법 권고를 국민투표에 붙여 확정짓거나, 국회가 심의·의결하게 하되 수정은 극히 제한하는 것.


이 시민의회의 특징은, 그 대표들이 1인 1표로 뽑힌 대표가 아니라 인구통계학적으로 국민을 대표하는 '미니 국민'이라는 점이다. 여론조사가 표집을 통해 국민의 의사를 추정하듯, 시민의회는 추첨을 통해 국민의 의사를 숙의된 형태로 형성한다. 결정적 차이는, 그들에게 이해관계도, 권력 욕망도, 정당 기율도 없다는 것이다. 곽노현의 표현대로, 그들은 "일당 받으면서 공부하는 사람들"일 뿐이다.


질문이 나왔다. 한 참석자가 물었다. "국회의원들은 절대로 이런 제도를 만들어 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실현할 수 있습니까?" 이것은 오래된 딜레마였다. 제도를 바꿀 제도가 없는 상태에서 제도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곽노현의 대답은 한 사람의 정치 지도자에게로 향했다. 이재명 대통령이었다.


"이 양반은 지지율 70% 아닙니까? 호루라기 하나 불면 권리당원 150만 명의 70%가 움직이는 절대 권력을 갖고 있어요. 그리고 더 할 대통령 자리가 없습니다. 권력욕으로부터 자유로운 거예요. 그러니 이 사람이 시민의회 시대를 열겠다고 결단해도 권력에 누가 되지 않아요. 오히려 위대한 대통령의 길이 열리는 겁니다."


정치적 평가는 차치하고라도, 이 논리 구조 자체는 흥미롭다. 셀프 입법 특권을 가진 자들이 그 특권을 내려놓지 않을 때, 이미 그 특권의 수혜 단계를 지나 더 바랄 것이 없는 자만이 제도 개혁을 앞장설 수 있다는 것이다. 권력을 내려놓는 조건은 오직 권력의 정점뿐이라는, 역설적이지만 꽤 설득력 있는 진단이었다.


파생 특권들 — 셀프 입법의 그림자


강연 후반부에서 곽노현은 셀프 입법 특권이 낳은 파생 특권들을 하나씩 짚었다. 이것들은 언론에서 거의 다루어지지 않지만, 그의 말에 따르면 "이런 거 10개쯤 더 얘기해줄 수 있는" 목록의 일부였다.


첫째, 세비 자기결정권. 국회의원의 급여는 '월급'이 아니라 '세비'라고 불린다. 이 세비와 각종 수당을 누가 정하는가. 국회의원 자신이다. 월급쟁이가 자기 월급을 스스로 정하는 제도가 이 세상 어디에 또 있는가. 곽노현의 표현을 빌리면, "이게 특권이 아니고 뭐가 특권입니까?"


둘째, 징계 면책 특권. 국회의원의 징계는 국회 윤리특별위원회가 담당한다. 그런데 이 윤리특위는 전원 국회의원으로 구성되어 있고, 무엇보다도 처리 기한이 없다. 징계안이 접수되어도 그냥 묵혀 두다 4년 임기가 끝나면 자동 폐기된다. 민주화 이후 국회 윤리특위가 실제로 의결한 징계 사례는 사실상 전무하다. 1979년 유신 말기에 김영삼 총재가 본회의 의결로 제명당한 것이 예외적인 한 건일 뿐이다.


셋째, 무기명 투표 관행. 국무총리·대법원장·헌법재판관·대법관 임명동의 등 가장 중대한 인사 사안을 국회는 무기명으로 표결한다. 미국 상원과 하원에는 무기명 투표가 없다. 명부를 알파벳 순으로 호명해 예(yea)와 아니오(nay)를 소리 내서 표시하는 네이 롤(Nay Roll) 방식이다. 의원 100명이 공개리에 자기 입장을 밝힌다. 가장 공적인 결정을 프라이버시 뒤에 숨기는 한국의 관행은, 곽노현이 보기에 "대법원장 인준처럼 중대한 결정일수록 반드시 공개되어야 한다"는 원칙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심지어 국회의장·상임위원장 선출까지 무기명이다.


넷째, 장관 겸직 특권. 대통령제는 입법부와 행정부의 엄격한 분리를 원칙으로 한다. 미국은 현역 상·하원 의원을 장관으로 발탁할 수 없다. 그런데 한국은 국회의원의 장관 겸직을 법으로 보장한다. 이 제도는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가. 여당 중진 의원과 대통령 양쪽 모두다. 3선 이상의 여당 중진에게 장관 자리는 4선을 보장하는 거의 유일한 통로다. 대통령에게는 그 중진들의 쓴소리를 틀어막는 입마개다. 초선은 감히 대통령에게 비판할 엄두를 못 내고, 재선 이상으로 대통령을 꿈꾸는 중진만이 쓴소리를 할 수 있는데, 그 입을 장관 자리로 틀어막으면 여당 내부 견제가 사실상 소멸한다.


곽노현의 결론은 이렇다. "셀프 입법 특권을 인정하는 순간, 이 모든 파생 특권이 불가피해집니다. 이 고리를 끊어야 합니다. 진짜 없애야 할 특권은 불체포특권이 아니라 이런 것들이에요."


삼종 혼합 민주정 — 공화주의 신화를 넘어


강연의 마지막 10분은 곽노현 자신의 민주정 구상이었다. 그는 이 구상을 삼종(三種) 혼합 민주정이라 이름 붙였다. 출발점은 공화주의 신화에 대한 비판이었다. 일부 공화주의자들은 고대 로마 공화정을 혼합정 — 집정관의 군주정적 요소, 원로원의 귀족정적 요소, 민회의 민주정적 요소가 결합된 — 이라 찬양한다. 그리스 역사가 폴뤼비오스 이래의 관찰이다. 곽노현의 반론은 단호했다.


"로마 공화정이 군주정·귀족정 요소를 포함했던 것은 당시 주변 국가들이 모두 군주정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타협한 결과입니다. 익숙해서 타협한 거죠. 그런데 후세 사람들이 이걸 금과옥조처럼 받들어요. 창피한 일입니다. 군주정 요소와 귀족정 요소는 지금도 남아 있다면 극복 대상이지, 어떻게 찬양 대상이 됩니까?"


그가 제안하는 새로운 혼합정은 이렇다.


1) 대의민주정을 근간으로 삼는다. 단, 선거제도는 STV 등 비례성 높은 방식으로 개혁하고, 제왕적 대통령제와 제왕적 대법원장제는 수술한다.

2) 추첨 민주정을 결합한다. 국회의원·정당·국회의 권리 의무를 정하는 정치관계법은 이해관계자가 결정할 수 없으므로, '시민의회의 입법 권고 + 국민투표 확정'으로 돌파한다.

3) 직접 민주정을 추가한다. 국민발안권·국민거부권·국민소환권을 헌법에 명문화한다.


이 세 가지를 결합한 것이 삼종 혼합 민주정이다. 곽노현은 이를 "보관(補冠)된 민주주의 대폭발"이라 표현했다. 왕관 대신 관(冠)을 씌운다는 뜻이다. 그리고 덧붙였다. "이런 민주주의 대폭발이 일어날 때만, 앞서 말씀드린 1인 1표가 사라지는 기운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기술관료주의와 인공지능 시대는 반드시 1인 1표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를 허물고야 말 것입니다."


그는 또한 국민발안·국민거부·국민소환이 결코 이상주의적 공상이 아니라는 점을 역사적 사실로 뒷받침했다. 스위스는 1880년대에 연방헌법 차원의 국민발안제를 도입했다. 미국은 1910년대 진보주의 시대(Progressive Era) 에 19개 주 이상이 이 삼권을 주헌법에 명문화했다. 캘리포니아주가 대표적이다. 우리가 미국보다, 스위스보다 130년 뒤처질 이유는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한국에도 이미 지방정치 차원에서는 이 제도들이 존재한다. 시·도지사부터 시·군·구의원까지 주민소환이 가능하고, 주민발안도 존재한다. 다만 현행 주민발안은 지방의회의 심사를 거치는 간접 발안이라, 의회에서 부결되면 그만이다. 그럼에도 이 제도로 실제 입법을 해낸 사례가 있다. 곽노현이 서울시 교육감 시절 이끌었던 학생인권조례(55개 조문)가 주민발안으로 발의되어, 당시 민주당이 다수였던 서울시의회가 일점일획도 수정하지 않고 통과시킨 사례였다. 그보다 앞서 서울광장 조례 즉 서울시청앞 광장을 시민에게 돌려준 조례도 이 방식으로 제정되었다. 두 사례 모두 약 9만 명의 서명이 동원되었다.


"정치는 정치인이 하는 것 같지만, 사실상 시민이 하는 겁니다. 시민이 들고 일어날 날이 오면, 이 제도는 반드시 도입됩니다."


 대리운전 기사의 권력을 함께 행사하기


강연이 끝나자 사회자는 자신이 메모한 것을 바탕으로 전체를 한 장의 비유로 압축했다. 대리운전 기사 비유였다. "우리는 국회의원이라는 기사에게 우리의 대리운전을 맡긴 주인이다. 그런데 지금 이 체제의 기괴함은 다음과 같다. 1)기사의 임금을 기사가 스스로 정한다. 2) 주인이 정해야 할 월급을 기사가 마음대로 정하고 있다. 2) 기사의 징계를 기사들끼리 서로 한다.술 마신 기사를 옆자리 기사가 봐준다. 3) 기사가 바른 길로 가지 않고 딴전 피워도 주인이 제재할 방법이 없다.감시와 책임추궁의 수단이 없다. 4) 그리고 가장 치명적인 것, 기사를 뽑는 방식(선거제도)과 면접·채점의 룰을 선임 기사들이 미리 정해 놓고 후임 기사들을 뽑는다.


"대리운전 권력은 주인이 되찾아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강연의 핵심입니다."


좌장의 비유는 강연의 현학적인 개념들을 일거에 손에 잡히는 것으로 바꿔 놓았다. 그리고 그것은 공교롭게도 전태일기념관이라는 장소와 맞물렸다. 전태일이 1970년에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쳤다면, 2026년의 이 교실에서는 "우리는 대리운전 기사를 부리는 주인이어야 한다"고 외치고 있었다. 둘 다 도구가 주인을 지배하는 구조에 대한 거부라는 점에서 같은 계보였다.


물론 곽노현의 처방에는 쟁점이 있다. 시민의회가 실제로 얼마나 대표성과 숙의성을 동시에 담보할 수 있을지, 추첨 민주주의가 전문적 판단이 필요한 영역에서 어떻게 작동할지, 국민발안이 포퓰리즘의 도구로 전락할 위험은 없는지, 이런 질문들은 그의 강연 한 번으로 해소되지 않는다. 또한 이재명 대통령에게 개혁의 선창자 역할을 기대하는 대목은, 그 자체로 "권력 정점에 기댄 개혁"이라는 오래된 딜레마를 다시 끌어안는 것이기도 하다. 이재명 대통령이 실제로 이 길을 갈지, 간다면 얼마나 갈지도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의문들에도 불구하고, 2시간의 강연은 한국 정치 담론에 잊혀진 한 조각의 어휘를 되돌려 놓았다. '셀프 입법 특권'이라는 이 다섯 글자는, 왜 한국 유권자가 그토록 열심히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갈아치웠는데도 정치판이 바뀌지 않았는가에 대한 가장 간결한 답이었다. 그리고 그 답은, '답을 찾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답을 찾으려는 이들이 드물었다'는 것을 드러냈다. "학계의 게으름이 결국 시민 상식의 부족과 제도 상상력의 결핍으로 나타난다"는 그의 지적은, 청중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돌려진 것이었다.


강연이 글이 되는 동안에도, 서울 어느 국회 회의실에서는 여야 정개특위 위원들이 예비후보 등록 마감이 한참 지난 시점에서야 비로소 광역의회 비례대표 비율을 몇 퍼센트 올릴 것인가를 놓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곽노현이 그날 오후 던진 질문은 정확히 그 실랑이의 한복판을 향해 있었다. 게임의 룰은 선수가 정하는가, 주인이 정하는가.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한겨레:온>에도 실렸습니다.


[필진정보]
이원영 : 시민인권위원회 공동위원장, 국토미래연구소장, 전 수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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