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산을 푼다고 집값이 잡히지는 않는다. 집값은 공급의 문제가 아니라 화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집값을 잡겠다며 또 공급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의 경험이 증명하듯, 공급 확대는 집값을 잡는 약이 아니라 불을 더 지피는 기름이 되어왔다. 원인을 잘못 짚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집값 폭등은 물량 부족의 산물이 아니라, 부동산 담보 대출을 통해 무한정 창출되는 화폐의 산물이다.
냉정하게 보자. 주택담보대출이 실행되는 순간 원화는 그만큼 새로 태어난다. 은행 대출의 압도적 담보가 부동산이라는 사실은, 우리 원화가 금본위도 국채본위도 아닌 사실상의 '지가본위(地價本位) 화폐'임을 뜻한다.
아직 발생하지도 않은 미래의 지대가 오늘 담보가 되어 오늘의 구매력으로 발행되는 것이다. 부동산 폭등은 화폐 팽창의 결과가 아니라 팽창 그 자체다. 이런 구조에서 공급을 늘린들, 땅값이 담보가 되어 화폐를 찍어내는 회로가 돌아가는 한 집값은 다시 오른다. 용산을 풀고 재건축 규제를 풀어도 마찬가지다.
보유세는 세금이 아니라 통화정책이다
그래서 해법은 세제가 아니라 화폐제도에서 찾아야 한다. 지대 환수를 '세금을 더 걷는다'는 조세의 프레임으로 다뤄온 것 자체가 실패의 출발이었다.
보유세는 단순한 세금이 아니다. 자본화 계수를 낮춰 담보 기반을 축소하고, 부동산발 화폐창조 회로의 밸브를 잠그는 거시 조절판, 곧 통화정책이다. 기준금리가 소비자물가를 조절하는 밸브라면, 보유세(기본지대)는 자산가격을 조절하는 제2의 밸브다.
이름부터 바꾸자. 필자는 이것을 기본지대(基本地代)라 부를 것을 제안한다. 국가가 재산을 빼앗는 '세금'이 아니라, 공동체의 자산인 토지 사용권을 빌려 쓰는 대가로 치르는 '사용료'이자 '정산'이라는 뜻이다. 이름 안에 이미 통화적 지위가 새겨져 있다. 지가본위에서 기본지대본위로의 전환, 그것이 이 정책의 본질이다.
사후납부제를 폭넓게 인정하라 — 그 자체가 금리인상 효과다
"세금은 좋은데 현금이 없다"는 반론에 대한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사후납부제(Deferred Payment)를 폭넓게 인정하면 된다. 소득 없는 고령 보유자든 일시적 현금 사정이 어려운 보유자든, 매각·상속 시점까지 납부를 이연할 수 있게 문을 활짝 열면 현금흐름 부담 논란은 사라진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 방식이 단순한 유예책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후납부로 쌓인 지대 채무는 보유 기간 내내 자산에 붙어 다니는 일종의 고정 부담이다. 보유자 입장에서는 부동산을 계속 들고 있을수록 미래에 갚아야 할 몫이 늘어나니, 추가 매수의 유인이 줄고 매각의 유인이 커진다. 기준금리를 한 번도 올리지 않고도 보유세 자체가 금리인상과 같은 효과를 내는 것이다. 투기 수요에는 확실한 제동이 걸리고, 실수요 서민의 이자 부담은 건드리지 않는 정밀한 정책이다.
똘똘한 한 채의 불공정 — 금융혜택 받은 자가 세금을 면제받는 나라
1주택자 보호론도 재검토해야 한다. 물론 실수요 한 채를 징벌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이른바 '똘똘한 한 채'는 이미 각종 금융혜택을 누려왔다. 장기 모기지, 생애최초 대출 우대, 각종 세제 감면, 그리고 무엇보다 지가본위 시스템이 만들어준 자산 상승 자체가 가장 큰 혜택이었다.
은행이 찍어낸 화폐가 집값을 밀어 올리는 구조에서 그 과실을 가장 크게 챙긴 이들이 보유세마저 면제된다면, 이는 무주택자와 다주택 실수요자 사이에 놓인 명백한 불공정이다. 혜택을 본 만큼 지대로 정산하는 것이야말로 공정의 시작이다.
부자에게 명예를 — 시행 가능성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정책의 성패는 설계가 아니라 수용성에서 갈린다. 해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첫째, 모두가 내고 모두가 받는 구조를 만들자. 걷힌 기본지대를 토지배당으로 전 국민에게 돌려주어, 첫날부터 순수혜자가 다수가 되게 하면 된다. 내 돈을 뺏는 세금이 아니라 공동체의 몫을 정산하고 나누는 배당이 되는 순간 반대의 정치학은 힘을 잃는다.
둘째, 부유층에게는 명예를 주자. 지대를 많이 낸 이들을 '공유부 건설의 공로자'로 예우하는 제도를 붙이면 된다. 인류학이 보여주듯 부의 축적 다음에 오는 인간의 욕망은 명예다. 고액 지대 납부자를 국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기록하는 장치는, 반발을 자부심으로 바꾸는 가장 값싼 레버리지다. 조세저항을 억누르는 대신 명예로 전환하는 것, 이것이 정치적 실현 가능성의 열쇠다.
셋째, 결정 권한을 정치로부터 분리하자. 금리를 금융통화위원회가 결정하듯, 기본지대율은 독립적인 '기본지대위원회'가 자산시장 과열 여부에 따라 조절하게 해야 한다. 선거를 앞두고 눈치를 보는 세금이 아니라, 경기를 읽고 움직이는 통화정책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미룰 이유가 없다
일본은 지가본위를 끝까지 밀어본 나라다. 그 끝은 붕괴였고, 이후 본위를 땅에서 국채로 옮겼을 뿐 미래를 당겨 쓰는 구조 자체는 해결하지 못했다. 우리가 같은 길을 갈 이유는 없다. 평가 인프라와 제도 논의는 이미 충분히 쌓여 있다.
꿀벌은 꿀만 만들지 않는다. 날아다니며 꽃을 수분시켜 온 생태계를 먹여 살리고, 꿀은 그 부산물일 뿐이다. 공동체가 함께 키워낸 지대라는 꿀을, 꽃이 피기도 전에 가져가는 양봉가의 시대를 이제 끝내야 한다. 집값을 잡고 불공정을 바로잡는 길은 공급이 아니라 지대다. 당장 기본지대 통화정책을 시행하라.
이 글은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와 <불교닷컴>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