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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말씀을 실행하라”
  • 이기우
  • 등록 2026-09-11 14: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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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3주간 토요일 (2026.09.12) 

: 1코린 10,14-22; 루카 6,43-49



지나간 한 주 동안 교회는 루카가 전해준 평지설교를 나누어 복음으로 선포해 왔습니다. 그 시작은 행복과 아울러 선포된 불행선언이었습니다. 선교적인 관점에서 저술된 루카복음의 의도를 감안해 보면, 이 행복과 불행의 선언은 복음을 전하는 데 있어서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라는 뜻이 들어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굶주리고 슬퍼하는 가난한 이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현실을 체험시켜 주셨습니다. 그 방식은 일단 그들이 겪고 있는 가난의 슬픔을 위로하는 것이었고, 필요하다면 병고에서도 해방시켜주고 마귀도 쫓아내 주는 것이었습니다. 또 필요하다면 가난에서 벗어난 다음 더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 나눌 줄도 아는 사랑을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따라서 이 가난한 이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행복을 선사해 주는 이들에게는 더한 행복을 선언하셨습니다. 이러한 복음을 선포하다가 “사람들이 미워하고 쫓아내고 모욕하고 중상하면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루카 6,22-23)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매우 사실적이고 처절하기까지 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게 가난은, 그리고 그 가난을 몸소 겪고 있는 이들에게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한다는 일은 낭만적이지 않고 현실적일 뿐만 아니라 아주 긴장스러운 국면을 수반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가난한 이들과 나눌 줄 모르는 부유한 자들에게는 불행이 선언되었습니다. 이미 세상에서 위로를 충분히 받고 있고 배부르며 웃고 있는 자들에게는 하느님의 위로가 주어지지 않을 것이며, 하느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양식도 주어지지 않아 성령의 이끄심이 메마를 것이고, 하느님의 자비가 더 이상 베풀어질 필요가 없으니 슬퍼하며 울게 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가난한 이들의 슬픔과 고통을 외면하며 자신들의 행복에만 만족해 하는 자들의 운명이 이러한 것이 되리라는 선언입니다. 한처음부터 계셨고, 현세와 내세의 현실을 두루 살피고 계시는 분께서 우리 믿는 이들에게 계시하여 주시는 진리입니다.


평지설교의 결론으로 제시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에 관한 당신의 가르침을 실행하라고 강조하십니다. 그리하여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듯이 우리네 삶에서 말씀의 결실을 맺으라고 권고하십니다. 그 결실은 두 말할 것도 없이 사랑입니다. 교회는 신자들이 사랑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행할 수 있도록 기도생활과 성사생활을 권장합니다. 


기도생활을 세상을 섬기려는 우상 숭배를 멀리하고 하느님을 섬기려는 기본 자세입니다. 기도생활을 바탕으로 하는 성사생활은 예수님 안에 머물게 하는 은총을 가져다 줍니다. 기도생활과 성사생활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처럼 사랑할 수 있는 능력과 기회를 줍니다. 그래서 기도와 성사는 사랑의 나침반과도 같습니다. 


기도는 우리에게 하느님께로부터 나오는 생기를 얻게 해 줍니다. 하느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며 그분께 감사드리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일정한 시간에 의식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이런 일정한 시간은 그리스도인의 기도에 깊이와 지속성을 주는 특별한 시간이 됩니다. 


성사는 예수님의 공생활을 재현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모든 말씀과 행위들은 우리를 하느님 나라에로 이끌어 구원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성사는 언제나 살아계시며 생명을 주시는 그리스도의 몸에서 나오는 힘이요,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 안에서 일하시는 성령의 행위입니다. 


기도와 성사는 우리의 삶과 일을 하느님의 사랑으로 채워줍니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과의 인간관계를 사랑의 관계로 성숙시키게 해 주며, 우리가 일을 하며 계획하고 결정하며 선택하는 가치를 사랑의 가치로 승화시켜줍니다. 


평지설교의 결론으로 말씀드린 기도와 성사에 대해서, 서론에 나왔던 행복과 불행 선언에 담긴 선교적 지향을 상기하여 보면 이러합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는 일은 기도와 성사를 통해 성령의 도우심을 받지 않고는 어렵습니다.


이상과 같이 한 주간에 선포된 복음 말씀의 흐름을 보여드렸으니, 이제 그 흐름이 어떠한 구도 속에 자리잡고 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복음화 제3천년기를 앞두고 20세기 중반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열어 제3천년기에 인류를 복음화하려는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공의회 이후에 선출된 바오로 6세, 요한 바오로 2세, 베네딕토 16세, 프란치스코, 레오 14세 교황 등 역대 교황들은 이 공의회의 노선을 따라 현대 가톨릭 교회가 걸어가기 위한 ‘새 복음화’의 노선을 걸어가자고 외쳤습니다. 이 노선의 주요한 이정표는 공의회 이전 레오 13세 이후 비오 11세, 요한 23세 교황들이 반포한 사회교리 정책에 의해 제시된 바 있는, 가난한 이들의 복음화였습니다.


이 명제는 초대교회 이래 우리 교회가 무려 천8백년 만에 되찾은 교회의 보물이었고, 이는 천동설 대신 지동설을 발견한 과학 흐름과도 비견될 수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워낙 거대한 역사적 흐름이다보니 일반 신자들로서는 그 흐름과 구도가 한 눈에 잘 보이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지가 알아챈 바와 같이(11963.1.4) 세상의 시선은 이 공의회를 ‘현대의 성령강림 사건’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거대한 강물이 하류에 이르러서는 거의 멈춘 듯이 아주 천천히 흐르지만 넓은 바다로 흘러가게 되어있습니다. 이처럼 성령께서 이끄시는 가톨릭 교회의 복음화 흐름도 그러합니다. 그러니, 여러분께서도 일상 생활에서 기도와 성사와 사랑의 실천으로 선교 활동에서도 좋은 열매를 맺으시기 바랍니다. 





[필진정보]
이기우(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성사전담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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