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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의 함정... 버텨야 할 이유, 그리고 물어야 할 자리
  • 이원영
  • 등록 2026-09-11 15: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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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 외교·안보의 가장 예민한 지점은 호르무즈 해협이다. 미국은 가시적인 군사 기여를 요구하고, 정부는 규모를 최소화한 비전투 자산 파견을 검토 중이다. 이란은 외국군의 호르무즈 작전 참여를 전쟁 참여로 간주한다는 고강도 경고를 반복해 왔다.


논의는 이미 익숙한 언어로 진행되고 있다. 우리 원유의 몇 퍼센트가 그곳을 지나는가, 참여하면 반도체 압박이 완화될 것인가, 거부하면 동맹 관계는 어떻게 되는가.


이 글은 두 가지를 말하려 한다. 하나는 지금 발을 들여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고, 다른 하나는 그 판단을 누가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이다. 뒤의 것이 더 중요하다.


무엇을 요구받고 있는가


전문가들은 미 해군이 구조적 한계에 부딪혔다고 지적한다. 도크 정비 적체가 심각하고, 좁은 해협의 기뢰를 제거할 소해 능력이 사실상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먼저 물어야 할 것이 있다. 지금 우리가 요구받는 것이 그 빈자리인가.


아니다. 검토되는 것은 해상초계기와 군수지원함이다. P-8A는 미국이 개발해 대량 운용하는 기종이고 우리도 미국에서 사온 것이다. 군수지원함도 미 해군이 넉넉히 보유하고 있다. 미국에 실제로 없는 것은 소해함인데, 지금 요구받는 것은 그것이 아니다.


물론 전 세계에 분산되어 있어 중동에 더 투입할 여유가 없다고 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우선순위 배분의 문제이지 능력의 부재가 아니다. 우선순위는 미국이 스스로 조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요구의 목적은 초계기 한 대의 성능이 아니다. 한국이 참여했다는 사실 그 자체다. 미국의 해군전력이 약화되어 도와달라는 요구는, 설령 그 약화가 사실에 가깝더라도 핑계에 불과하다. 이 판정이 서면 논의의 성격이 달라진다.


우리가 보내야 호르무즈가 열리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없어도 미국은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얻는 것은 군사적 성과가 아니라 미국의 만족뿐이다. 편익은 상징이고 비용은 실물이다. 이란이 우리를 적대 대상으로 삼는 것, 우리 유조선이 노출되는 것, 걸프 국가들의 시선이 달라지는 것은 모두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다. 요컨대 지금 시험받는 것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우리의 순응이다. 그리고 순응의 요구는 끝나지 않는다


군사 개입은 한번 시작하면 통제하기 어렵다. 역사는 그 사실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처음에는 제한적이라고, 비전투라고, 지원일 뿐이라고 시작해도 임무는 확대되고 병력은 늘어난다. 초계기 한 대, 폭발물처리반 수십 명이라도 현장에 있으면 연합작전의 일부가 된다. 그런데 이번 경우에는 그 위험이 한층 크다. 이유가 앞에서 나왔다.


능력의 공백을 메우는 참여는 그 공백이 채워지면 종료된다. 그러나 상징은 계속 갱신을 요구한다. 한번 참여국이 되고 나면 다음 단계를 요구할 근거가 생긴다. 그리고 이미 발을 담근 나라가 더 담그기를 거부하는 것은, 처음부터 거절하는 것보다 훨씬 큰 배신으로 취급된다.


미 해군에 정말로 없는 것이 소해함이라면, 그다음 청구서에 무엇이 적혀 올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란의 경고를 단순한 수사로 치부하기 어려운 이유다. 비전투 요원이라도 파견하는 순간 그것은 법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이미 파병이다. 그러나 손익계산으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이 문제에는 손익계산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층위가 있다. 손익만 따지면 결론은 늘 한 방향으로 수렴한다. 손해를 덜 보는 쪽, 그리고 대개는 강한 쪽에 붙는 것이 유리하다는 쪽으로. 계산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을 계산에 올렸기 때문이다. 사람이 죽는 일에 대해 얼마나 이득인가를 묻기 시작하면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먼저 물어야 할 것이 있다. 이 전쟁이 정당한가. 이것은 전문가가 대신 답할 수 있는 물음이 아니다. 군사 전문가는 승산을 계산하고 경제 전문가는 비용을 계산할 수 있다. 그러나 정당한가는 계산의 문제가 아니라 판단의 문제다.


한국인이 그 물음에 민감한 이유


한국인은 보편가치에 유독 민감하다. 그리고 그 민감함은 지난 160년의 역사가 새겨놓은 것이다. 1866년 병인양요, 1871년 신미양요로 시작해, 한국은 강대국의 함포와 군화가 낯선 바다 건너가 아니라 바로 우리 해안과 들녘에 닿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몸으로 배웠다. 경술국치와 35년의 식민 지배, 그리고 동족상잔의 전쟁까지. 한국인은 명분을 앞세운 강자의 군사 행동이 약자의 삶을 어떻게 짓밟는지를 교과서가 아니라 가족사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 기억은 원한으로만 남지 않았다. 동학은 150년 전에 사람이 곧 하늘이라 했다. 우리 편 사람이 아니라 사람 그 자체를 말한 것이다. 3·1운동의 독립선언서는 일본을 원수로 규정하지 않고 동양의 평화와 인류의 공존을 명분으로 삼았다. 침략당한 쪽이 침략자를 미워하는 대신 함께 설 자리를 말한 것은 세계사에 흔하지 않다.


그러니 침략전쟁에, 선제공격과 확전의 논리에 동조할 수 없다는 여론이 절반을 넘는 것은 단순한 반미도 현실 회피도 아니다. 침략받아 본 나라의 도덕적 기억이 여론으로 형상화된 것이다.


그것이 우리만의 정서가 아니라는 것


중요한 것은 미국 내 여론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는 점이다. 여러 조사에서 미국인의 과반 이상이 이란 전쟁을 비용이 이익을 초과한다고 평가하고, 지지율은 30%대에 머물며, 빨리 끝내야 한다는 의견이 강하다. 지상군 투입 반대는 상당히 높다. 중간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전쟁이 정치적 자산이 되기 어려운 구조다.


이 숫자들은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갖는다. 실용적으로는, 동맹에 대한 압박이 무한정 지속되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시간을 버는 전략이 가능하다는 근거다. 


가치적으로는, 불필요한 전쟁에 대한 거부가 한국만의 편협한 정서가 아니라 전쟁 당사국인 미국 시민들도 공유하는 판단임을 보여준다. 한국의 반대 여론은 고립된 예외가 아니라 국제 여론의 주류와 맞닿아 있다.


버틴 나라들


거절에는 비용이 따른다. 공개적 비난과 다른 이슈로의 연계 압박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그 비용을 당장의 고통으로 받아들이고 버티는 선택이, 확전과 관계 악화라는 더 큰 위험을 피하는 길일 수 있다.


스위스는 수세기 동안 유럽 열강의 전쟁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무장 중립을 지켰다. 스웨덴은 두 차례 세계대전에서 양쪽의 압박을 받으면서도 본격 참전을 거부했다. 아일랜드는 영국의 강한 압박에도 중립을 고수했고, 네루의 인도는 냉전 초기 진영 가담 요구를 거부하고 비동맹을 선언했다. 모두 단기적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강대국의 전쟁에 깊숙이 끌려가지 않음으로써 장기적으로 자율성과 생존 공간을 지켰다.


물론 역사의 교훈을 기계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다. 오늘의 한미동맹은 훨씬 더 밀접하고 한반도의 안보 환경도 특수하다. 그러나 제한적 기여라는 명분으로 발을 들이는 순간 그 기여의 범위와 성격을 한국이 단독으로 통제하기 어려워진다는 구조적 위험은 여전하다.


여기에 우리의 위치가 겹친다. 우리는 원유 도입과 건설·플랜트, 교민 보호라는 실질적 이해관계를 가진 나라다. 호르무즈를 둘러싼 갈등에 군사적으로 연루되는 순간 이란과의 관계는 물론 다른 걸프 국가들의 시선도 달라진다. 동맹국이 불필요하게 지역 갈등에 말려들어 외교·경제적 비용을 키우는 것은 장기적으로 미국 자신의 지역 관리에도 부담이 된다.


헌법상 침략전쟁에의 가담은 헌정파괴행위


여기까지가 이 글의 판단이다. 지금 발을 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 헌법 제5조 1항은 침략전쟁을 부인한다. 그렇다면 어떤 전쟁이 그에 해당하는지를 판정하는 일이야말로 주권자의 몫이다


그러나 이 판단이 옳아서 관철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앞에서 말했다. 정당한가는 계산의 문제가 아니라 판단의 문제이고, 그 판단의 주체는 주권자라고. 그렇다면 나의 판단도 하나의 견해일 뿐이다. 다르게 판단하는 사람도 있고, 그들의 근거도 있다. 문제는 지금 그 판단을 모아낼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22년 전에도 대통령은 혼자 결정했다


이 장면이 낯설지 않다. 2003년 봄, 미국의 요청이 있었고 정부가 검토했으며 파병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절차를 어긴 것은 없다. 헌법이 요구하는 국회 동의를 다 받았다. 그런데도 이라크 파병은 노무현 정부의 가장 무거운 결정으로 남았고, 대통령 자신도 이 결정을 두고 오래 무겁게 말했다.


왜 절차를 다 밟았는데도 그랬는가. 위임은 구체적인 것에 대해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2003년의 국회의원들은 이라크 파병에 대해 위임받은 적이 있는가. 없다. 2002년 대선에서도 그 전 총선에서도 이라크 파병은 쟁점이 아니었다. 쟁점일 수가 없었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이었으니까.


그러니 그 표결은 그 사안에 대해 위임받은 적 없는 사람들이 하는 표결이었다. 그리고 정부가 안을 만들어 제출하면 국회는 가부만 정한다. 무엇을 왜 보낼지, 어떤 대안이 검토됐고 무엇이 배제됐는지는 이미 정해진 뒤다. 이것은 심의가 아니라 추인이다.


전제가 틀렸을 때 되돌릴 방법이 있었는가


당시 반대가 지금 돌아보는 것만큼 크지 않았던 데는 이유가 있다.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는 주장이 주요 언론을 통해 압도적으로 유통되고 있었다. 유엔 사찰단이 결정적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보고하고 프랑스와 독일이 반대하고 있었으나, 그런 정보는 훨씬 작게 다뤄졌다. 국민에게는 그것을 검증할 수단이 없었다.


그러니 물어야 할 것은 이것이다. 제대로 된 숙의 절차가 있었다면 그 전제가 그대로 통과했을까. 공청회가 열리고 사찰단 보고서가 함께 제출되고 반대 견해가 같은 무게로 발언했다면, 최소한 그것이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 다투어지는 주장이라는 것은 드러났을 것이다. 절차는 정당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오류를 걸러내는 장치이기도 하다.


그리고 전제가 무너진 뒤에는 어떻게 되었는가. 대량살상무기는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파병은 되돌려지지 않았다. 잘못된 전제 위에서 내려진 결정을 되돌릴 절차가 애초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이것은 한 대통령의 판단을 탓하는 글이 아니다. 2003년에 시민이 국가적 결정에 개입할 통로는 사실상 선거뿐이었다. 국민동의청원 제도는 2020년에야 생겼고, 시민의회라는 말은 학계에서도 낯설었다. 무엇보다 광장이 국정을 되돌린 경험이 없었다.


그러니 그때 대통령이 혼자 결정한 데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는 사정도 있다. 물으려 해도 국민투표 하나뿐이었고, 그것은 부치는 순간 정권의 명운이 걸리는 전부 아니면 전무의 도구였다. 중간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두 번의 광장이 있었다. 1700만 명이 23주를 지키고도 폭력 사태가 한 건도 없었다. 계엄이 선포된 새벽에는 국회로 먼저 달려간 것이 시민이었고, 그 앞에서 총구가 멈췄다. 시민이 국가의 중대 결정을 되돌릴 수 있다는 것을 두 번이나 실증했다. 세계 어느 나라도 하지 못한 일이다.


그런데 그 실증이 제도로 옮겨지지 않았다. 광장은 두 번이나 열렸는데, 광장이 열리지 않아도 시민이 물을 수 있는 통로는 여전히 없다. 2003년에는 역량이 없어서 묻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역량이 있는데 통로가 없다.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 묻지 않는 것은 미숙함이지만, 준비된 자에게 묻지 않는 것은 배제다.


무엇을 요구할 것인가


지금 당장은 국회 동의 절차의 실질화다. 표결 전에 공개해야 할 것들이 있다. 미국에 전달한 기여안이 무엇인지. 어떤 대안들이 검토됐고 무엇이 왜 배제됐는지. 파병의 규모와 기간과 임무의 범위, 교전 규칙은 무엇인지. 예상되는 위험과 그것이 현실이 됐을 때의 대응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놓고 공청회를 열고 숙의할 시간을 두어야 한다. 방향과 근거를 먼저 공개하라는 요구다. 지금은 그것이 감춰진 채 절차만 진행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개헌이다. 헌법 제72조는 국민투표를 대통령 한 사람의 재량에 가둬둔다. 국회도 국민도 국가적 중대사에 대해 국민투표를 요구할 수 없다. 이 조항의 골격은 유신헌법에서 넘어왔고, 1987년 개헌 때 대상을 한정하는 수식이 붙었을 뿐 독점 구조는 그대로 남았다.


스위스는 일정 수의 서명으로 국민발안이 가능하고, 이탈리아는 이미 통과된 법률도 국민투표로 폐지할 수 있으며, 대만은 국민발안의 문턱을 낮춰 사회적 갈등이 큰 사안들을 그 절차로 풀어왔다. 다만 대만이 법률 개정만으로 그것을 해낸 것은 대만 헌법에 발의 주체를 특정하는 조항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은 "대통령은"이라고 주체를 못 박았으므로 이 길은 개헌으로만 열린다.


하나의 범주가 보인다. 파병과 원전과 개헌에는 공통점이 있다. 선거에서 쟁점이 아니었고, 되돌릴 수 없으며, 세대를 넘어 영향을 미친다. 이 범주에 속하는 결정은 대의기관이 받은 일반적 위임만으로 처리하기에 무겁다. 그렇다면 이것을 요건으로 정해두면 어떤가. 요건에 해당하면 자동으로 절차가 열리도록 하는 것이다.


두 번이나 증명했는데, 왜?


군사적 개입은 한번 시작되면 되돌리기 어렵고, 그 대가는 주로 약한 쪽이 치른다. 그리고 한국인은 그 사실을 남의 일로 배우지 않았다. 주권자에게 물어서 파병하기로 결론이 날 수도 있다. 그것은 그때 가서 정할 일이다. 묻지 않고 정하는 것은, 우리가 어떤 사람들인지를 스스로 부정하는 일이다.


한 사람이 혼자 짊어지기에 너무 무거운 결정이 있다. 그런 결정 앞에서 대통령을 고립시키는 것은 그를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방치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고립의 대가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이 치른다.


22년 전에 물어야 했던 것은 왜 혼자 결정했는가였다. 지금 물어야 할 것은 다르다. 두 번이나 증명했는데도, 왜 아직 물을 자리가 없는가.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울산저널i>에도 실렸습니다.


[필진정보]
이원영 : 시민인권위원회 공동위원장, 국토미래연구소장, 전 수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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