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청할까요?"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요구하여라." (마르코복음서 6장)
요즘 시대가 어수선합니다.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말을 남용하며 일종의 선동을 일삼는 이들의 모습에서 파시즘의 광기를 예감하게 됩니다.
어느 시대에나 물질적 기반과 사회적 기득권을 쥔 이들에게는 그 힘을 계속 유지, 강화하려는 욕구가 항상 있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윤리적 판단, 이성과 양심의 식별은 결핍되게 마련입니다.
이성과 양심의 결핍은 집단적 광기를 불러일으키고, 대중의 분별력과 용기를 마비시킵니다.
세례운동을 일으키며 하느님계명에 따르는 사회적 쇄신을 꾀했던 요한 세례자의 역할은 그러한 시대적 어수선함을 올바른 분별력으로 바로잡는 데 있었습니다. 예수도 그러한 취지에 깊이 공감하셨고, 또 세례운동에 직접 동참하셨습니다.
세례운동은 고난받는 대다수 민중들에게는 희망이었을 겁니다. 기성종교와 정치사회적 기득권자들에게 구조적으로 언제나 짓눌려있던 기층민중들은 쇄신, 사회적 쇄신을 갈망했기 때문입니다.
어둠의 결탁, 부조리한 권력과의 카르텔을 형성한 이들은 그런 쇄신을 원할 리가 없습니다. 심지어 요르단 강에 세례를 받으러 온 종교적 기득권자들을 보고 요한 세례자는 말했습니다. '위선과 구조적 불의를 뒤집어쓴 채로 어떻게 쇄신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이것이 예언자의 목소리입니다. 예언자는 이러한 "목소리" 그 자체입니다. 오늘날 로마의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도 이런 목소리를 언어와 실천으로 내고 계십니다.
그 목소리를 제거하려는 이들, 그 목소리를 듣지 않고, 무시하고, 외면하며 심지어 곡해하며 역으로 호도하는 이들, 그 예언자를 땅에 묻어버리려는 이들이 하는 말은 이렇습니다.
"그 예언자의 목을 달라고 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