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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쟁시민칼럼] 최소의 집
  • 편집국
  • 등록 2015-09-18 10:53:54
  • 수정 2015-10-28 10: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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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건축 전시 포럼에 패널로 초청된 일이 있다. 건축 문외한이라고 처음에는 청탁을 고사했지만, 패널 중 한 명을 인문학자로 초대하고 싶다고 해서 결국 참석하기도 했다. 내가 이 포럼에 참석하게 된 데에는 이 포럼의 주제가 ‘최소의 집’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있어서 궁금증을 유발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집’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최소’에 대해서는 많은 생각을 해왔던 터라, 건축가들이 생각하는 ‘최소’라는 개념을 내 생각과 견주어 보며 대화해 보고 싶은 생각도 조금은 있었다.


포럼에 앞서 전시된 ‘최소의 집’ 모형을 보니 건축가들이 생각하는 ‘최소’는 문학평론가인 내가 생각하는 ‘최소’의 개념과 상당한 차이가 있는 듯했다. 모형 집은 대개 큰 평수의 땅에 아주 작은 집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최소’의 의미를 ‘규모’의 차원에서 생각하는 것으로 보였다. 


청중의 대부분이 건축가와 건축학도들이었던 포럼에서 ‘집’에 대해 잘 모르는 나는 유일한 ‘인문학자’로서 ‘시’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시’란 최소 문장으로 지어진 말의 집이라는 점에서 내겐 ‘최소의 집’과 유사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소의 문장으로 이루어진 시는 경제적인 문장이 아니라, ‘최소’ 규모에 ‘최대’의 함의를 담고 있는 문장이다. 한 떨기 꽃에 우주를 담은 화엄처럼 한 편의 좋은 시는 수십 권의 책 이상, 거대한 사유를 담은 최대 사유의 집일 수 있다. 


반대로 어떤 시 중에는 매우 긴 문장들의 연쇄로 이어진 산문적인 시도 있다. 그런데 그런 시 역시 그 시가 좋은 시라면 영락없이 ‘최소’ 문장으로 씌어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여기에서 ‘최소’란 무슨 뜻인가.


좋은 시의 필수적인 요건인 ‘최소’는 ‘필연적인’ 말들로만 만들어졌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과장도 과잉도 군더더기도 허영도 기만도 그렇다고 누락도 없다. 


사유는 사물을 궁구하고서는 핵심에 도달한 말들로만 구성된다. 핵심으로만 구성된 말은 최소지만 필연으로만 지어진 집이기에 ‘최대’가 된다. 이게 시의 윤리이며, 말을 짓는 윤리가 생활을 짓는 윤리가 될 수 있는 근거이기도 하다.



함돈균 ㅣ 시민행성 상임운영위원, 문학평론가


덧붙이는 글

화쟁시민칼럼은 화쟁문화아카데미(http://goo.gl/1UX8Y9)에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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