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떠나는 다람쥐
아랫동네에 사는 이장 내외가
비닐봉지를 들고 와서는 산을 훑는다.
검은 혀가 반짝인다.
한 접시에 담아낼 묵을 쑤겠다고
일 년 농사를 싹쓸이한다.
겨울과 봄과 여름을 기다렸다.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
빈 곳간에 채울 양식이 여물기를
두 손 모아 기도했건만
몸뚱이 하나 건사하기가 힘들다.
아는 작자들이 제 목구멍 앞에서는
허튼소리를 내뱉는다.
몸에 좋은 거라고 속닥거린다.
더는 배고파서 못 살겠다.
내 새끼들은 어찌 살라고
떨어진 낙엽 사이로 꼭꼭 숨은
한 무더기의 씨알 굵은 도토리가
검은 입속으로 들어간다.
날름 처먹는 것이 이기적이다.
사납게 생겼다.
짐 싸는 게 낫겠다.
먹고 살려면 떠나야겠지.
다른 동네는 반갑게 맞아 주려나.
만만한 텃새가 쪼아대겠지.
검은 비닐봉지만 배 터지는 날이다.
+ 시대창작 소개
“시대창작”을 통해서 시인은 시대를 논하고자 한다. 시대가 불편하다면 불편함을 기록할 것이고 시대가 아름답다면 아름다움을 표현할 것이다. 따뜻함이 우리의 삶에 가득하다면 시인의 시는 따뜻한 단어와 밝은 문장으로 가득찰 것이다. 다만, 시인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의 편에 서서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작정이다. 소통의 장으로, 공감의 장으로 역할을 수행하며 울고 싶을 때는 함께 울고, 웃고 싶을 때는 함께 기뻐하는 “시대창작”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