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화쟁시민칼럼] 시민과 인문
  • 편집국
  • 등록 2015-11-11 10:29:28
  • 수정 2015-11-11 10:29:57

기사수정



누구의 것도 아닌 소박한 정자, 말 그대로 띠풀로 지붕을 이은 모정(茅亭)은 아무리 솜씨 좋은 이의 손길로 엮었어도 변변한 이름 하나 지어받기 힘들었다. 어느새 할머니들이 된 간난이나 서운이, 언년이 등 아무렇게나 불리던 소녀들에게도 그런 호사는 애초 관심거리가 아니었다. 늦게라도 까막눈 면해 이따금 어깨 펴지는 기쁨은 좀 누렸으나 자연으로 돌아갈 기다림 말고 따로 무슨 꿈을 꿀 수 있었겠는가. 


그에 비해 반가의 어른들은 안주인이 될 며느리에게 ‘개성댁’이니 ‘한산댁’이니 하는 택호(宅號)로 그 출신지를 호명해 품격을 세워주었다. 시집살이 고달파도 마음 한 구석에는 세상의 보물 인삼이 나고 모시가 나는 고장이라, 친정 마을 자랑거리 하나씩은 품고 살았으리라. 그 명성에 흠 되지 않으려 꿈결에서 옛 동무 만나 회포 풀 적에도 억울한 하소연쯤은 꿀꺼덕 삼켰으나, 그런 결기만으로 시민이 되는 것은 정녕 아니었으리. 


그에 비해 기와 얹은 가문의 정자든, 혹은 혈통과 가계 잇는 그저 관념적 차원의 집이든 사임당이며 난설헌, 호연재, 사주당, 영수각, 빙허각 같은 당호(堂號)를 벗 삼았던 이들은 비록 임금 받들며 살던 시절이었어도 세상 주인이라는 시민 의식에 절로 눈뜰 수밖에 없었으리라. 허물없이 부르라 지은 당호였지만 그 이름에 수천 년 보편의 가르침이 담겼으니 목숨 하나 그저 피었다지는 자연일 수만은 없었다. 


하늘의 무늬를 밝혀 천문(天文)을 읽듯, 무심한 시공(時空)에 금 그어 시간과 공간으로 나눈 사람들 생각의 무늬, 인문(人文)의 어여쁨에 설레고 숱한 변모의 이치가 궁금한 운명에 들어설 밖에. 생각의 걸음마를 연습하다 제 길 찾아 먼 길 떠나니 아무 쓸모없어 보여도 세상엔 낫과 호미뿐 아니라 훨씬 더 정밀한 인문의 도구가 널렸다는 사실에 환호하고, 사람들 성미와 살아 온 세월에 따라 춤과 노래 또한 제 각각으로 빚어내는 무늬의 리듬은 또 얼마나 짜릿했던고! 


시대를 거스르는 오적(五賊)이 다시 나타나 숨쉬기가 힘들고 눈이 따갑고 목젖이 마구 아려도 어느덧 제 삶의 주인이며 세상의 주인이 되신 시민들의 모정은 더 이상 익명의 농부가 아닌 이름 자 번듯한 예술가들이 뚝딱거리며 지어대고, 더 이상 익명의 정자가 아니라 인문의 꽃을 찾아 길 떠난 이들의 오아시스 되어 마땅한 이름을 얻고 짙푸른 숲의 동지들을 불러 모은다. 밤이 열리면 빛나는 별들 사이 새로운 천문이 펼쳐져 이를 읽어내는 담박한 소리, 곧 먼동이 트려고 저토록 더 어둡다는 희망의 전조도 함께 영롱하다.



김재희 ㅣ 시민행성 상임운영위원


덧붙이는 글

화쟁시민칼럼은 화쟁문화아카데미(http://goo.gl/1UX8Y9)에 올라옵니다.

TAG
키워드관련기사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가스펠툰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