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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오스티아)에 차렸던 '무료급식소'
  • 전순란
  • 등록 2016-01-15 10: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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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14일 목요일, 맑다 흐려지다


80년대의 로마생활은 이곳으로 비하자면 60년대 초반 한국여인들이 삶이었다. 그곳 문화나 그곳 여자들이 그랬다는 말 아니고,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유독 '음식으로 애국하는' 별스런 한국남들을 건사하는 한국여인들의 곤고한 살림 얘기다.


그 즈음 이탈리아의 한국인 교민이라야 성직자 수도자 일반인을 합쳐도 100명이 안 되고 너나없이 가난한 유학생 신분이어서, 또 한인식당은 비행기로 식재료를 실어날라 장사하는 곳이어서 우리음식이 먹고 싶어도 섣불리 드나들 처지들이 못되었다.


그러니 살림하는 주부들이 집에다 ‘무료급식소’를 차리고 지인들을 대접하는 자선시대였다고 할까?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보스코와 또래가 비슷한 교구 신부님들이나 살레시안들은 리타네 '피네타사케티'와 우리 '오스티아식당'을 즐겨 찾아오셨다. 우린 로마에 살다 월세에 밀려 인천쯤 떨어진 오스티아에 살고 있었다.




18평쯤의 아파트로 거실과 침실 하나, 부엌, 화장실이 전부여서 빵기와 빵고는 거실 소파를 침대로 펴서 잠을 잤다. 오스티아는 지중해 바닷가였다. 사람도 고양이나 진배없어 온기가 있는 곳으로 모이는 까닭에 신부님들은 주말이면 로마~오스티아간 먼 거리를 ‘경인선’ 기차를 타고들 찾아오셨다. 


해거름에 부두에 도착하여 막 들어오는 배에서 잡어를 한 상자 사들고 오시곤 했다.그러면 이 주부가 큰놈들로는 회를 치고나서 매운탕을 끓이고 작은 것들은 튀기거나 굽고 해서 쌀밥과 김치와 함께 식탁에 올리면 세상천지에 없는 산해진미로 여겨졌다. 내게 조금이라도 요리솜씨가 있다면 그때 그 신부님들 덕택이다.


두부는 비토리아 동양식품점에서 사온 흰콩을 불려 유난히 짠 지중해 바닷물로 초당두부를 만들고, 그 콩으로 콩나물을 기르고, 오스티아 숲에서 주운 도토리로 묵을 쑤었다. 대학졸업까지 소위 “손가락에 물 한번 안 묻히고 공부만 하던” 여자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기치 아래... 부지런했던 30대 주부였다.


우리 밥상을 다녀간 분들의 안부가 가끔 궁금하다. 30년 넘어 지금은 다들 은퇴하고 편안한 노후를 즐기고 계시려니... 보스코의 안식년(1997~98)이나 공직생활(2003-07)에는 그런 절절함과 그 수고에 따른 행복은 없었다.



지리산에 살면서 할머니들이 다람쥐처럼 기어 다니다 시피해서 쑨 도토리묵이 지천이고, 콩나물은 읍에 가면 사고, 두부는 ‘원터마을’에만 가도 구할 수 있어서 나까지 나설 일이 거의 없다. 그러다 어제 그 지병이 도져 두부를 만들어보려고 콩을 불렸다.


콩물을 해서 내 단식 후 보식용으로 남기고 내 ‘두부집 실력’이 아직 건재하신가 알아볼 참으로 콩물에 아무리 간수를 넣어보고 소금과 식초를 넣어봐도 엉기질 않는다. ‘두부도사’인 ‘우리밀농산’ 안사장님께 전화문의를 했더니만 삶은 콩으로는 두부가 안 된단다! 내일 다시 한 번 시도해서 확인할 생각이다.



보스코의 임시치아가 아침에 빠져나와 치과에서 붙여 넣으러 함양읍으로 나갔다. 그 길에 희정씨집에 잠시 들렀다. 귀여운 딸 주원이가 며칠에 걸쳐 우리 휴천재 모빌종을 고쳐 놓았다. “땡글땡글” 유난스러운 소리를 내면서 휴천재 식당문을 지켜 줄 게다. 작은 아씨가 얼마나 애를 썼을까만 뭐든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성실함이 딱 엄마 희정씨다.



빵기가 일주일간의 방콕회의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고 꼬마들이 좋아한다. 더구나 빵기네가 제네바에 산지 10여년 만에 처음으로 눈 같은 눈을 본다니 아이들에게는 생애 최초로 눈사람을 만들며 동무들과 우정을 쌓을 게다. 

로마에서 눈이 많이 내렸던 1983년엔 로마시 전체가 휴무에 휴교였다. 하느님이 주신 특별보너스였다! 우리나라 전방 군인들이나 도회지 미화원들에게는 눈은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쓰레기요 ‘악마의 똥가루’라고 미움받는다 지만 제네바의 두 손주는 출장에서 돌아온 아빠와 눈사람을 만들며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있으리라...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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