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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라뿌니!” 그리고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 전순란
  • 등록 2016-03-30 10:2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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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29일 화요일 맑음


부활절에 제일 좋아할 사람은? “성모님!” 그런데 그 효성스러운 예수님이 엄마에게 나타나셨다거나 더구나 제일 먼저 발현하셨다는 얘기가 복음서에 안 나온다. 영적독서 책들을 보면 당연히 어머니에게 제일 먼저 나타나셨거나(‘엄마, 나 살았어!’) 성모님은 신앙심이 워낙 깊으셔서 영안(靈眼)으로 이미 무덤 속을 훤히 보고 계셔서 아드님이 굳이 발현하실 필요가 없었다고 적혀 있다.


그리고... 오늘 복음처럼 흑흑 흐느껴 우는 여인 막달레나, 뒤의 인기척이 들리고 말까지 걸어오시는데도 예수님인 줄 몰라보는 서러움, 그리고 “마리아!” “라뿌니!”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보스코는 마리아를 부르시는 예수님 음조가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풍(마리아, 마리아, 마리~아)이었을 거라면서 이 장면을 퍽 에로틱하게 설명한다. (관련 기사보기)




날씨가 좋다. 이렇게 맑은 날은 뭔가 특별한 일을 해야겠다. 식탁에 앉아 밥을 먹으면서도 보스코는 계속 망원경으로 바라보며 강 건너 과수원이 궁금하다. 여보, 오늘은 큰 도관을 묻는 것 같아. 큰 포클레인을 놔두고 작은 포클레인이 또 왔어. 긴 도관이 너댓 개 내려져 있는데 트럭이 실어 나르고 있어.... 밥 먹을 생각은 않고 생중계로 딴전이다. 나이 들면 길가에 살며 지나가는 차를 보고 행인들을 구경하는 게 재민가보다고 노인들을 놀렸는데 이 산속에서 나무와 꽃, 새와 나비와만 놀다가 무슨 새로운 문명의 세상이라고 망원경을 쓰고 놀다니...


창가에 지난겨울 창문턱에 붙여 놓았던 문풍지를 다 떼 내고, 창틀을 씻고, 창문을 말끔히 닦았다. 3월이 되면서 창문을 닦으리라 맘만 먹으면 그 다음날 비가 오거나, 어디 갈 일이 생겨서 오늘까지 미뤘는데... “모레 또 비 온다는데.” 하면서 보스코가 말리면서 하루 좀 쉬라지만 “비오고 나면 한 번 더 닦지.” 하고 나섰다.


창문이 깨끗해지니 거기 걸린 커튼이 더럽다. 사다리를 놓고 커튼을 떼고 핀을 빼낸 뒤 세탁기에서 꺼낸 커튼에 다시 일일이 핀을 꼽아 제자리에 다는 일은 해마다 보스코 몫이다. 말없이 사다리에 올라가 커튼을 걷어내린다. 공해도 없는 산속에 걸려 있고 누가 만지지도 않고 걸어만 두었는데도 지난 가을에 빨아 걸어놓은 커튼이 왜 이리 더러울까? 고비사막에서 불어오는 중국 황사와 공해 때문이라는데 별로 신빙성은 없는 말 같다.



하고 한 날 놀러만 다녔더니 문밖만 나서면 할 일이 줄을 서서 단체로 기다린다. 우선 눈에 띄는 대로, 발에 걸리는 대로, 손에 잡히는 대로 한다. 어차피 다 내가 해야 할 일이니까.... 우선 마당 끝의 화단에 풀을 뽑다가 잔디가 경계석을 넘어 화단을 침범했기에 일일이 돌을 들어내고 잔디를 파내고 경계석을 다시 세웠다. 그러면서 나도 중동댁이 하듯이 돌을 한바퀴씩 굴려 땅(화단)을 한 뼘씩 넓혔다. “아하~ 이래서 땅 욕심에 이웃간에 쌈이 나는구나!”



경영주에 해당하는 보스코는 “제발 일 좀 그만 하고 좀 쉬라.” 하고, 피고용인 전순란은 “어디 일이라는 게 그런가? 끝장을 봐야 일이지.” 경영주와 노동자의 입장이 전혀 다른 형태로 진행되는 곳이 가정인 듯하다.


오늘 어떤 친구가 종일 우울하다기에 “우리 집에 와서 김 좀 매면 나아질거에요.” 라고 답글을 썼는데 시골에서 땅파는 일에 매달리면 우울할 틈새가 없다. 내가 보스코에게 여보, 나도 조울증(躁鬱症) 걸리겠어라고 할라치면 아냐, 당신은 조조증(躁躁症)이야. 라고 웃어넘긴다. 휴천재에서는 우울할 여가가 없다. 커튼을 빠느라 세탁기를 세 번 돌렸고 밤 11시인데도 아직 두 번은 더 돌려야 한다.


나를 만난 모든 것이 나처럼 고달픈 숙명을 안고 왔나보다. 그 대상은 보스코도 예외는 아니어서 여보.. 커튼 떼고 다느라 허리가 아파 일찍 자야겠어.라며 침실로 들어간다. “저 남자가 앞으로 몇 년을 이 일을 더 해줄까??” 40년 넘도록 커튼 떼고 다는 일을 해준 게 고마워 이불을 잘 여며 준다. 그믐으로 넘어가는 밤하늘에 별이 유난히 밝고 아름답다.


신학대사전(Sacramentum Mundi)은 키가 작아 사다리 위에서도 발돋음할 때 쓰인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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