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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수) 가난한 예수 32 : 씨 부리는 사람의 비유
  • 김근수
  • 등록 2016-05-17 10:15:01
  • 수정 2016-05-17 14:3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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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여러 동네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어 마침내 큰 군중을 이루자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5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습니다.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은 길바닥에 떨어져서 발에 밟히기도 하고 하늘의 새가 쪼아먹기도 하였습니다. 6 어떤 것은 바위에 떨어져서 싹이 나기는 하였지만 바닥에 습기가 없어 말라버렸습니다. 7 또 어떤 것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는데 가시나무들이 함께 자라서 숨이 막혀버렸습니다. 8 그러나 어떤 것은 좋은 땅에 떨어져서 잘 자라나 백 배나 되는 열매를 맺었습니다.” 하시고는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들으시오.” 하고 힘주어 말씀하셨다. (루카 8,4-8)

 


마르코복음 4,1-9에서 나오는 비유를 루카는 조금 다듬었다. 도마 복음 9에도 나오는 이야기다. 하느님 말씀을 잘 들으라는 내용이다. 루카 9,18 이하에 나오는 메시아 고백을 준비하는 단락이다. 평지설교에서와 달리 예수는 제자들이나 여자 제자들에게 설명하지 않고 직접 군중에게 가르친다. 대조 비유라는 문학 장르에 속하는 이야기다.


들으시오akouein 라는 단어가 여러 번 반복되고 있다. 어떻게pos 옳게 듣느냐가 주제다. 네 문장으로 이루어진 비유다. 마르코 4,1과 다르게 호숫가에서 설명된 이야기는 아니다. 씨를 뿌릴 때 뿌려진 씨를 쪼아 먹으려 새가 쫓아온다. 한라산에 오를 때 음식을 쫓아오는 까마귀들이 많이 있다. 


4절에서 예수와 군중의 만남이 인간과 하느님 말씀의 만남과 어우러져 있다. 언제 밭을 가는지 토론되어 왔다. 씨 뿌리기 전에 밭을 가는 경우도 있었고, 뿌린 후에 밭을 가는 사례도 있었다. 예레미아스는 씨 뿌린 후에 밭을 간다고 주장하였다 (Jeremias, Gleichnisse 5).  


5절에서 길 옆이 아니라 길 위에 씨가 뿌려졌다. 5절에서 씨가 발에 밟히기도 했다는 말은 마르코에 없다. 길 위에 씨를 뿌린 다음 길을 갈아엎을 예정인 것이다. 그 사이에 새가 뿌려진 씨를 먹을 수 있겠다. 잃어버린 씨앗은 하느님 말씀이 손상되었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말씀을 듣는 사람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다. 6절은 씨 뿌린 후 시간이 제법 지난 후의 일을 묘사하고 있다. 바위 위에 얇은 흙에 습기는 많지 않다. 싹이 트긴 하지만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해 금방 말라버린다. 


7절에서 akantha을 어떻게 번역하는게 적절할까. 가시덤불은 다년생 식물이다. 엉겅퀴는 일년생 식물이다. 둘 다 이스라엘에 많이 있었다. 가시덤불로 옮긴다면, 씨 뿌릴 때 이미 가시덤불이 있었다는 말이다. 가시덤불에 일부러 씨를 뿌리는 농부가 있을까. 엉겅퀴로 옮긴다면, 씨 뿌릴 때 엉겅퀴는 보이지 않는다. 뿌려진 씨가 싹이 틀 때 엉겅퀴도 같이 싹이 트고 자란다. 엉겅퀴로 번역하는게 적절할 것 같다.


7절은 시간이 한참 더 지난 후 씨앗을 설명하고 있다. 씨도 많이 컸지만 엉겅퀴도 함께 자랐다. 한국의 산에 아카시아가 많듯이 이스라엘에 엉겅퀴와 가시덤불이 많다. 뿌려진 씨앗의 성장에 필요한 영양분을 엉겅퀴가 빼앗아간다. 그러니 씨앗이 제대로 자라기 어렵다. “들에서 나는 곡식을 먹어야 할 터인데, 땅은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리라” (창세기 3,18) 그러니 이런 말이 있는 것이다. “엉겅퀴 속에 씨를 뿌리지 말고, 땅을 새로 갈아엎고 심어라” (예레미야 4,3) 가시덤불과 엉겅퀴는 여러 곳에서 언급되고 있다 (이사야 5,6; 7,23;욥기 31,40).


8절에서 마침내 좋은 땅에 떨어져서 잘 자라난 씨를 예수는 소개하고 있다. 마르코 4,8처럼 열매가 씨앗의 30배, 60배, 90배 되었다는 말은 루카에서 삭제되었다. 루카는 그저 ‘백 배나 되는 열매’를 말하고 있다. 실제로 그렇게 열매 맺는 일이 있었는지 아니면 단순한 과장된 말인지 논의되어 왔다. 이사악이 하느님 축복으로 100배 열매를 수확했다는 말이 창세기 26,12에 있다. 그리스 문헌들에서 300배, 400배까지 소개된 경우도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씨앗의 운명을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씨앗의 성장 과정에서 여러 어려움과 손실을 겪을 수 있지만 결국 어느 정도 수확하게 된다는 것을 농부들은 안다. 


마르코에서 씨뿌리는 사람의 노동이 강조되었다면 루카는 뿌려진 씨의 운명에 더 집중하고 있다. 오늘 비유는 자연과 환경에 관심을 가지라는 교훈을 준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 「찬미 받으소서」도 같은 관심을 요청하고 있다. 성서 시대보다 더 우리 시대 자연은 훼손되고 신음하고 있다. 


우리 삶과 역사 속에 보이지 않게 커져 가는 하느님 나라의 존재와 성장을 느끼라는 가르침도 있다. 인간에게 주신 하느님 말씀의 매력과 위력을(이사야 55,10-) 루카는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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