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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통신원 - 네팔] 시간이 멈췄다.
  • 이레지나 통신원
  • 등록 2015-05-06 18:38:33
  • 수정 2017-05-30 18:3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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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교적 피해 규모가 적다고 하는 카트만두 시내



거짓말처럼 시간은 4월 25일 토요일 오후 12시 경에 멈췄다.


전화 통화 중 나도 모르게 '지진이에요. 나중에 할게요'하고 끊고는 본능적으로 안전하다 생각되는 곳을 찾아 자세를 낮췄다.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의 흔들림과 새들의 울음 소리가 뒤섞인 강렬한 몇십초가 지나고, 지금 생각해도 놀라울 정도로 민첩하게 밖으로 빠져나왔다.


다른 이들의 안위를 염려하면서도 순진하게 나중에 지진으로 인해 어질러진 것들을 수습할 것 또한 생각했다. 하지만 나에게 진짜 지진은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계속해서 강한 여진이 이어졌고, 주위에 쓰러질 것 없는 안전한 곳에 믿을만한 사람들과 모여 있었지만, 걷잡을 수 없는 공포는 밤이 되면서 더욱 심해졌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 비까지 오며 사람들의 두려움은 더해갔고, 그렇게 모두의 시간을 멈추어 버렸다.


최초 지진 후 24시간 만에 꽤 강한 여진이 다시 한차례 찾아와다.

아무것도 모르고 지나간 첫 지진보다, 이 여진은 사람들을 더욱 공포로 밀어 넣었다.

며칠이 지나 이제 미진만이 계속될 거란 말에도 사람들은 집근처 천막을 치고 집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지진 후 각자 고향으로 내려가기 위해 모여있는 사람들



여진의 위험때문에 공터에 천막을 치고 지내는 사람들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가족, 친구를 잃었다.


평소 잘 알고 지내며 특별히 아끼던 현지인 동생 하나도 목숨을 잃었다. 그 친구의 소식을 들었지만 애도할 여유없이 처음 며칠은 멈춘 시간 안에서 계속해서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다. 언제 또 올지 모르는 강진에 대한 공포는 모두의 시간을 멈추어 버렸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비로소 많은 것들이 안정되어 가고 있다.


일부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도 큰 피해를 입었고, 앞으로도 고통의 시간을 겪게 됐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안타깝다. 정말 그 사람들에게 필요한게 뭘까 잘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선정적인 보도처럼 카트만두가 초토화 된 건 아니다. 카트만두 내 일부 인구밀집지역의 피해가 극심하지만, 나머지 구역은 이미 많은 것들이 정상화 되기 시작했다. 일부 피해지역의 경우를 보면, 자연재해를 왜 인재라고 하는지 알 수 있다. 평소 정부의 부실 관리와 늑장 대응은 이 나라도 비껴가지 않았다. 내가 알던 미소가 참 예쁘던 친구도 바로 그런 이유로 희생당했다.


모든게 마비된 듯 보이던 장면이 다시 재생되기 시작한 건 도로 위 아이들의 자전거 타기를 보면서 이다. 여진이 가시지 않은 도로 위에 자전거를 배우는 한 여자아이와 그 뒤를 붙들어주는 친구들 무리가 하하호호 즐거워 한다. 그 순간 멈췄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나 역시 사소한 것이 중요해지기 시작한 것을 보니 일상으로의 복귀이다.


이 멈췄던 시간은 나를 비롯한 모두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사람들은 차가운 바닥에 천막을 치고 자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집이 무너진 사람들은 언제쯤 다시 집을 짓고 예전과 같은 생활을 할 수 있을까?


막막함과 온갖 생각이 뒤엉켜 어찌할 줄 모르겠는 밤이다.


꿈 같은 그 시간이 현실이 될 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이레지나 : 타문화와의 경계에서 어떻게 하면 더불어 잘 살수 있는지 고민하다보니 8년 째 네팔에 머물고 있는 활동가이다. 네팔지진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이후의 상황과 소식들을 지속적으로 전해줄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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