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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어른,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꿀잠’ 선물하고자
  • 최진
  • 등록 2016-07-12 10:28:42
  • 수정 2016-07-12 10:2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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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진



19세 청년이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일하다가 스크린도어에 끼어 생을 다했다. 아이들을 지키려고 세월호 깊숙이 들어간 두 명의 선생님은 마지막 순간까지 제자들과 함께했지만, 순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돌쟁이 아이를 둔 30대 가장이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그의 유서에는 “힘들고 배고팠다”는 가장의 절박한 심정이 담겼다. 



▲ ⓒ 최진



이들 모두는 ‘비정규직’ 이었다. 비정규직이란 뜻은 어느덧 인간이 아니라는 의미가 됐다. 숨죽여 밥을 먹고 숨어서 시계를 본다. 그러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못 살겠다고 내지르는 소리에 국가는 ‘폭력집단’이란 누명을 씌웠다. 



▲ ⓒ 최진



이 원통한 세상을 꾸짖기라도 하듯, 두 노인이 전시회를 열었다. 가난하고 힘없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서울에 올라와 투쟁집회에 참여하기 전, 잠시나마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쉼터 공간을 만들기 위해 기획된 것이다. 뜻있는 길을 걸었던 두 노인의 기획전을 두고 세상은 ‘두 어른’이라고 존경의 뜻을 표했다. 





어두운 시대를 보내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잠은 편히 잘 수 있었을까. 고단하고 피곤한 몸이면서도 밤이면 찾아오는 자괴감과 외로움과 싸우지 않았을까. 얼마 안 되는 희망을 들고 서울로 올라와 광화문에서, 시청광장에서, 거리에서 투쟁할 그들을 위해 두 어른은 ‘꿀잠’이라는 쉼터를 준비 중이다. 



▲ ⓒ 최진



서울 종로구 통의동 한옥 골목 사이에 있는 ‘사진위주 류가헌’ 갤러리에서 ‘두 어른’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전시회가 열리는 류가헌은 한옥 두 채가 나란히 기와지붕을 마주 댄 형태다. ‘두 어른’ 전에 적격인 장소다. 입구에 들어서면 한옥 마당은 이미 활동가들이 서로의 근황을 묻는 만남의 광장이 돼 있다. 



▲ ⓒ 최진



마당 오른편 제1전시관은 올해 일흔여덟을 맞은 문정현 신부의 목판 작품이 자리했다. 1975년 인혁당 수형자들이 사형선고 하루 만에 형장의 이슬이 되고 시신마저 탈취당할 때 영구차를 가로막던 사제, 1976년 박정희 영구집권에 반대하는 3.1 구국선언으로 감옥에 갇혔던 사제, 양들을 위해 거리로 나왔던 사제는 그 때문에 매향리·대추리·용산·강정 등 고통의 땅마다 찾아다니며 시대의 무거운 짐을 나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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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은편 제2전시관은 올해 여든네 살의 백기완 선생의 붓글씨가 자리했다. 1964년 한일협정반대운동에 뛰어든 이래 평생 민주화운동 현장을 지켰다. 1973년 긴급조치 위반으로, 1979년 계엄법 위반으로 옥고를 치렀고, 노동자들의 대통령 후보로 나선 팔팔했던 1980년대나, 해고노동자의 손을 맞잡고 눈물 흘리는 노년의 2016년이나 백기완 선생의 모습은 변한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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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는 목수였던 그 스승을 따라 칼과 망치를 들어 목판을 했고, 선생은 붓을 들어 삶을 담았다. 자신들은 예술가가 아니라며 전시회 개최를 부끄러워했던 두 어른의 글과 목판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이 류가헌을 찾았다. 홍수가 났다기보다는 강물처럼 사람들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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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피를 무릅쓰고 예술가로 나선 두 어른은 같으면서도 다른 글을 내놓았다. 문정현 신부는 괴로울 때마다 심장을 깎는 심정으로 매달려온 서각 70여 점을 내놓았다. 고통 속에서도 신앙은 그에게 희망을 말했을까. 목판에 담긴 글에는 성경 구절과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이 수놓아져 있다. 그는 그렇게 교회에 갇혀 주님을 부르기보다는 거리에서 뙤약볕 아래에서 주님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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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완 선생은 감옥살이하면서 겨우 써내려갔다는 붓글씨 40여 점을 내놓았다. 외부와 단절되고 공권력에 잠식당한 감옥에서 적었다지만 그의 글에는 투쟁과 희망, 그리고 인간의 가치를 부르짖는 포효가 서려 있다. 



▲ ⓒ 최진



벼랑 끝으로 내몰린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쫓아 두 어른은 벼랑 끝에 집을 지으려 한다. 두 어른에겐 지금 이 땅의 비정규노동자야말로 ‘피 흘리는 청년 예수, 세상을 바꿔야 할 사람들’이다. 



▲ ⓒ 최진



‘두 어른’ 전은 이번 달 17일까지 열린다. 전시관 정기휴관 일은 월요일이며,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6시 30분까지 문을 연다. ‘두 어른’전에서는 작품판매뿐 아니라 책자와 배지 등으로 발생하는 모든 수익금을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 건립에 사용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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