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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수) 가난한 예수 41 : 불안한 헤로데
  • 김근수
  • 등록 2016-08-02 11: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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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한편 갈릴래아의 영주 헤로데는 이런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어리둥절해졌다. 죽은 세례자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8 엘리야가 나타났다고도 하고 또 옛 예언자 중의 하나가 되살아났다고 하는 말도 들려왔기 때문이다. 9 그러나 헤로데는 “요한은 내가 목 베어 죽이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소문에 들리는 그 사람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하면서 예수를 한번 만나보려고 하였다. (루카 9,7-9) 



헤로데 안티파스(루카 3,1)는 예수가 활동한 지역을 다스리는 영주였다(루카 23,7). 그에게 왕이라는 호칭은 적절하지 않다. 


헤로데를 괴롭힌 여론은 세 가지였다. 헤로데가 투옥시키고(마르코 6,17; 루카 3,19) 처형한(마르코 6,27) 세례자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는 소문이 있었다. 유다인들은 마지막 시대에 엘리야(말라기 3,1.23, 요한 1,21)가 올 것이라고 기대했었다. 세례자 요한을 엘리야라고 생각하는 여론이 있기도 했다(마르코 9,11-13; 마태오 11,14). 옛 예언자 중의 하나, 즉 예레미야가(루카 7,16.19-; 요한 1,21.25; 6,14) 나타날 것이라고 기대하는 여론이 있었다.


헤로데는 여론에 신경쓰지 않았다. 헤로데의 궁금증은 루카가 이미 독자들에게 소개했었다.(루카 7,19; 8,25) 헤로데가 궁금했던 것은 예수가 어떤 인물이냐는 것이다. 그는 예수를 만나보려고 하였다. 그 역사적 만남은 이루어졌던가. “헤로데는 예수를 보고 매우 기뻐하였다. 오래 전부터 예수의 소문을 듣고 한번 만나보고 싶었을 뿐만 아니라 예수가 행하는 기적을 한번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헤로데는 이것저것 캐어 물었지만 예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루카 23, 8-9) 

 

9절에서 루카는 세례자 요한의 죽음을 헤로데의 입을 빌려 간단히 언급하고 지나간다. 마르코 6,17-29나 마태오 14,6-12처럼 자세히 보도하지 않고 있다. 헤로데는 예수를 다시 살아난 세례자 요한으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루카는 알려주었다. 그러나 마르코 저자는 다르게 말했다. “그러나 예수의 소문을 들은 헤로데 왕은 "바로 요한이다. 내가 목을 벤 요한이 다시 살아난 것이다." 하고 말하였다”(마르코 6,16)


7절에서 헤로데는 예수의 소문을 듣고 어리둥절했다. 독재자는 예언자 소식에 당황한 것이다. 독재자는 예언자를 두려워한다. 부패한 종교인이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도 바로 예언자다. 예언자를 좋아할 부패한 종교인이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오늘 단락은 실제 일을 보도한 것은 아니겠다. 당시 예수에 대한 여론을 헤로데의 입을 빌려 독자들에게 전하는 것이다. 예수 죽음에 대한 헤로데의 죄를 독자들에게 미리 알린 것이다(루카 13,31; 23,8). 헤로데는 예수 죽음의 과정에서 빌라도를 편들었다(루카 23,12; 사도행전 4,27). 헤로데는 예수를 모욕했다(루카 23,11). 그는 세례자 요한과 예수의 죽음에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 


예수에 대한 다양한 의견은 오늘도 당시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서점과 도서관에 가면 금방 알 수 있다. 예수에 대한 어떤 종류의 책이나 영화도 일단 성공한다. 어느 관점에서 나온 작품도 일정 지지자를 충분히 확보하기 때문이다. 


오늘 단락에서 여론의 공통점은 무엇이었나. 사람들이 예수를 적어도 예언자로 보았다는 것이다. 군중은 예수의 활동에서 메시아적 모습이나 사제적 면모를 별로 발견하지 못한 것 같다. 예수의 예언자적 특징이 군중에게 가장 인상깊게 남은 것 같다. 루카는 군중의 여론을 많이 받아들여 예수의 예언자적 특징을 기록하였다(루카 4,24; 7,16; 13,33; 24,19). 루카에서 예수는 우선 예언자다. 가난한 사람들을 편드는 예언자였다. 


예수를 받아들이지 않던 유다인조차 최소한으로 인정했던 예언자 예수를 그리스도교는 어떻게 보고 있는가. 그리스도교는 예수를 예언자로 부르고 있는가. 가톨릭 신학은 예수에게 왕직, 예언직, 사제직이라는 전문 용어를 선사해 왔다. 그러나 예언자 예수 호칭은 가톨릭 전례에서 거의 사라졌다. 미사에서 기도문에서 대화에서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더 이상 예수를 예언자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리스도교는 예수를 예언자로 여기지 않는다는 말인가. 한국천주교회는 예수의 사제직은 강조해도 예수의 예언직은 거의 외면해 왔다. 뭐가 한참 잘못되었다.


헤로데처럼 권력자 한 사람은 잘못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백성 전체는 잘못 판단할 수 없다. 신앙에서도 마찬가지다. 추기경 한 사람은 잘못 생각할 수 있다. 신학자 한 사람도 잘못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하느님 백성 전체는 잘못 생각할 수 없다. 성령이 하느님 백성을 보호하신다. 그것을 하느님 백성의 신앙감각sensus fidei이라 부른다.


한 가지 또 배울 수 있다. 헤로데처럼 나쁜 정치인은 좋은 종교인을 싫어하고 미워한다. 나쁜 정치인은 나쁜 종교인을 좋아한다. 나쁜 종교인들이 나쁜 신자들과 함께 종교를 부패시킨다. 성직자 중심주의도 문제지만 나쁜 성직자를 감싸고 도는 나쁜 신자들도 큰 문제다. 어느 종교에서나 마찬가지다. 


유다인들은 누구를, 왜 기다렸을까. 유다인의 삶이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이었다. 이방인의 통치 아래 살아온 역사가 지긋지긋하게 고통스럽기 때문이었다. 로마군대의 식민지 통치에 시달리던 가난한 유다인 백성들이 마지막 날을 기다렸던 심정을 우리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유다인에게 하느님은 우선 해방자였다. 


하느님이 침략자들을 심판하실 그날을 기다리지 않은 피식민지 백성이 어디 있었을까. 일제 식민지 치하의 백성들, 박정희 시대의 백성들,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의 백성들 모두 예수 당시 유다인들과 비슷한 심정이었다. 자유와 해방을 고대하는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정치와 역사는 종교가 처한 삶의 자리다. 한국 어느 시골 성당에서 드리는 평일 미사가 남·북 분단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금방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다. 복잡한 정치가 평범한 개인의 생활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얼른 눈치채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남·북 분단은 20세기 후반 이후를 살아가는 남·북한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중요한 삶의 자리중 하나다. 분단 문제를 외면하고서 지금 제대로 신학할 수는 없다. 성서공부도 마찬가지다. 분단으로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남·북한 형제자매들을 생각하지 않으면 신앙, 신학, 성서공부가 무슨 소용일까. 


예수는 누구인가(루카 9,20; 요한 6,68). 인간으로 태어나 살면서 한번 제대로 집중해도 좋을 질문이다. 우리 삶과 무관하지 않으니. 역사의 희생자, 가난한 사람들과 연결된 분이니. 나는 한평생 그 질문으로 지금까지 살았다. 예수가 나를 잊은 적은 있을지 몰라도, 나는 예수를 잊은 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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