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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수) 가난한 예수 76 : 악하고 현명한 재산 관리인
  • 김근수
  • 등록 2017-06-27 09:2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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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또 말씀하셨다. “어떤 부자가 청지기 한 사람을 두었는데 자기 재산을 그 청지기가 낭비한다는 말을 듣고 2 청지기를 불러다가 말했습니다. ‘자네 소문을 들었는데 그게 무슨 짓인가? 이제는 자네를 내 청지기로 둘 수 없으니 자네가 맡은 일을 다 청산하게’ 3 청지기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주인이 내 청지기 직분을 빼앗으려 하니 어떻게 하면 좋을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창피한 노릇이구나. 4 옳지, 좋은 수가 있다. 내가 청지기 자리에서 물러날 때 나를 자기 집에 맞아줄 사람들을 미리 만들어놓아야겠다’ 5  그래서 그는 자기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하나씩 불러다가 첫째 사람에게 ‘당신이 우리 주인에게 진 빚이 얼마요?’ 하고 물었습니다. 6 ‘기름 백 말이오’ 하고 대답하자 청지기는 ‘당신의 문서가 여기 있으니 어서 앉아서 오십 말이라고 적으시오’ 하고 일러주었습니다. 7 또 다른 사람에게 ‘당신이 진 빚은 얼마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 사람이 ‘밀 백 섬이오’ 하고 대답하자 청지기는 ‘당신의 문서가 여기 있으니 팔십 섬이라고 적으시오’ 하고 일러주었습니다. 8 그 정직하지 못한 청지기가 일을 약삭빠르게 처리하였기 때문에 주인은 오히려 그를 칭찬하였습니다. 세속의 자녀들이 자기네들끼리 거래하는 데는 빛의 자녀들보다 더 약습니다”


9 예수께서 말씀을 계속하셨다. “그러니 잘 들으시오. 세속의 재물로라도 친구를 사귀시오. 그러면 재물이 없어질 때에 여러분은 영접을 받으며 영원한 집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10 지극히 작은 일에 충실한 사람은 큰 일에도 충실하며 지극히 작은 일에 부정직한 사람은 큰 일에도 부정직할 것입니다. 11 만일 여러분이 세속의 재물을 다루는 데도 충실하지 못하다면 누가 참된 재물을 여러분에게 맡기겠습니까? 12 또 여러분이 남의 것에 충실하지 못하다면 누가 여러분의 몫을 내어주겠습니까?”


13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습니다. 한 편을 미워하고 다른 편을 사랑하거나 또는 한 편을 존중하고 다른 편을 업신여기게 마련입니다.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는 없습니다”(루카 16,1-13) 




언론 기관이 없어서 사람들이 억울한 사연을 하소연할 데가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예수 자신이 걸어 다니는 언론 역할을 했다. 예수는 비유를 들어 사람들을 계몽하고 의식화하는 교육 방법을 즐겼다. 악하고 현명한 재산 관리인 비유는 많은 독자들을 당황시키기도 한다. 이야기 자체뿐 아니라 예수 해설도 우리가 이해하기도 찬성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아주 까다로운 단락이다. 돈을 잘 사용하는 방법이 주제인가. 8절의 주인은 본문의 부자인가 아니면 예수를 가리키는가. 9절에서 세속의 재물로라도 사귀어야 할 친구는 누구를 말하는가. 루카복음에만 나오는 이야기다. 재산을 주제로 여러 이야기가 루카 16,1-15에 있다.


1절에서 예수는 다시 제자들에게 말한다. 앞 단락에서 세리들과 죄인들,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말했었다. 예수는 그리스도교 안팎에 교대로 가르치고 있다. 멍청한 부자 이야기(루카 12,16-20)와 연결해서 이해하면 좋다. 하느님은 그 부자를 멍청하다apron고 표현했었다. 예수는 8절에서 재산 관리인을 현명하다고pronimos 칭찬한다. 부자인 토지 소유주가 재산관리인(루카 20,1-8)을 두고 있던 당시 경제 관계를 배경으로 한다. 오늘도 부자들은 땅을 여러 곳에 사두고 있다.


부자가 재산관리인의 낭비를 근거 있게 입증하고 비판했는지 2절은 말하진 않았다. 부자는 재산관리인을 해고하겠다는 언질을 주고 있다. 3-4절에서 이제 재산관리인은 해고 이후 일을 대비하고 있다. 5-7절에서 재산관리인이 어떻게 처신하고 있는지 두 사례가 소개되었다.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과 약삭빠르게 협상하는 장면이다. 부자가 재산관리인의 행동에 어떻게 반응했는지, 재산관리인의 작전이 성공했는지, 재산관리인이 채무자들에게 나중에 받아들여졌는지, 본문은 말하고 있지 않다.


1절 청지기oikonomos는 루카 12,42처럼 종이 아니라 재산관리인을 뜻한다. 2절에서 부자는 재산관리인의 횡령이 아니라 낭비를 문제 삼았다. 회계 장부를 검토하지는 않았다. 주인은 재산 손실과 허위 보고를 문제 삼아야 하지 않았을까. 재산관리인은 처벌받은 게 아니라 해고될 예정이었다. 교회 재산을 낭비하는 사람들은 잘 들어라. 4절에서 재산관리인은 현실적인 대안을 궁리했다. 해고당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해고 이후 살길을 찾는 일이다. 그의 독백을 9절의 수수께끼 같은 말 “세속의 재물로라도 친구를 사귀시오”와 연결하여 생각해야 한다. 그는 시간이 없다.


재산관리인은 주인의 빚 문서를 보관하고 있다. 정직하지 않은 재산관리인은 주인의 재산에 손해를 입힐 수 있다. 재산관리인은 주인의 재산에 손해를 끼칠지라도 자기 살 길을 찾으려 한다. 6절에서 기름 백 말은 올리브 140여 그루 열매에서 생산되는 약 36리터에 해당한다(Kremer, 162). 노동자의 500-600일 일당에 해당하는 재산이다(Bovon, III/3, 78). 재산관리인은 채무자에게 빚의 50%를 없애주었다. 밀 백 섬은 약 12,000평 밭에서 생산되는 364킬로 수확량이다. 재산관리인은 채무자에게 이번에는 빚의 50%가 아니라 20%만 줄여주었다. 재산관리인은 드디어 주인의 빚 문서를 위조하고 조작한 것이다.


8절에서 예수는 세속의 자녀들(루카 20,34)이 자기네들끼리 거래하는 데는 빛의 자녀들보다 더 약다고 말했다. 빛은 하느님의 영역이다(시편 104,2; 디모테오전서 6,16; 요한1서 1,5). 빛의 자녀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스스로를 칭하는 말이다(요한 12,36; 에페소 5,8; 테살로니카전서 5,5). 빛의 자녀들도 세속의 자녀들처럼 일을 약삭빠르게 처리하라는 부탁도 동시에 하고 있다. 신자들은 지금을 마지막 구원의 기회로 여기고 지금 열심히 애쓰라는 말이겠다. 성서 독자들이 각자 재산관리인 입장이 되어 지금 어떻게 처신할 것인지 생각하고 행동하라고 요청하고 있다. 예수가 돈 관리 비법을 가르친 것은 물론 아니다. 예수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하는 비결을 알려준 것도 아니다.


8절은 의문투성이로 가득하다. 주인은 재산관리인이 정직하지도 않고 약삭빠르게 일처리 한 것도 다 알고 있다. 그런데 왜 주인은 그를 칭찬했을까. 예수가 재산관리인을 칭찬한 것이 아니라 주인이 칭찬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주인이 재산관리인의 정직하지 않은 점을 칭찬했을 리 없다. 약삭빠르게 채무자에게 유리하게 일처리 한 것을 칭찬한 것이다. 9절 재물mamonas은 부정하게 번 돈만 가리키는 게 아니다. 정당하게 번 돈까지도 재물mamonas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재물을 긍정적으로도 쓸 수 있다는 점도 명심하자.


9절도 역시 어려운 구절이다. 여기서 친구는 누구를 가리키는가. 가난한 사람들을 말하는 것 같다. 우리 돈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유리하게 행동하라는 말 같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친구가 되라는 뜻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의 친구가 된다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친구가 아직 아니라면, 아직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친구가 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이다.


루카는 가난한 빚쟁이들의 고통을 모르지 않는다(루카 12,33; 18,22). 가계 부채로 신음하는 많은 한국인들의 고통을 잊지 말자. 루카는 재산관리인이 주인에게 금전적 손실을 입힌 사실보다는 채무자들의 고통을 줄여준 것을 더 주목하고 있다. 주인은 재산관리인을 나무라지 않고 칭찬하고 있다. 놀라운 일이다. 그런 주인이 세상에 다 있구나. 주인을 하느님이라고 생각해보자. 하느님은 인간의 모든 빚을 없애주신다. 하느님은 인간의 모든 죄를 없애주신다.



예수는 한편으로 재산관리인의 일처리에 감탄하기도 했지만, 재산관리인에게 분명히 거리를 두고 있다. 예수는 그 이야기를 듣는 청중에게 재산관리인보다 더 높은 수준의 처신을 기대하고 있다. 예수 보기에 재산관리인은 세속의 자녀에 속하지만, 청중은 빛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세속의 자녀들에 속하는 재산관리인조차 자기 살 궁리에 잔머리를 굴리고 채무자들의 고통을 줄여주고 있는데, 빛의 자녀들인 우리는 그들보다 훨씬 더 나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세속의 재물을 충실히 다루는 사람이 참된 재물도 자동적으로 잘 다룬다고 볼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겠다. 세속의 재물을 잘 다루지만, 참된 재물을 잘 다루지 못할 수도 있다. 참된 재물을 잘 다루지만, 세속의 재물을 잘 다루지 못할 수도 있다. 세속의 재물을 충실히 다루는 일은 참된 재물도 잘 다룰 수 있는 연습은 되겠다. 그 연습은 우리에게 중요하다.


세속의 자녀들이 자기네들끼리 거래하는 데는 빛의 자녀들보다 꼭 더 약을까. 세속의 자녀들보다 더 약아빠진 빛의 자녀들도 많지 않은가. 예수 믿는 사람들을 빛의 자녀로,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을 세속의 자녀들이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 물론 사제를 빛의 자녀라고 평신도를 세속의 자녀라고 할 수도 없다. 돈 욕심이 가득한 그리스도교 신자들과 성직자들을 우리는 실컷 보아오지 않았는가.


12절에서 예수는 재산관리인의 처신을 비판하고 있다. 남의 것에 충실하지 못하면 자신의 몫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13절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는 없다는 말은 세상의 모든 부자들이 솔직히 가장 싫어하는 말일 것이다. 그리스도교가 성서에서 삭제해 버리고 싶은 구절인지도 모르겠다. 이 말을 약화시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신학자와 성서학자들이 온갖 논리를 개발해왔는지 모른다. 그러나 하늘과 땅이 사라진다 해도, 이 성서 구절은 사라지지 않는다.


돈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잘 사용하라는 교훈을 말한 뒤 루카는 13절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본문의 결론이다. 아무리 돈을 좋은 용도로 쓴다 하더라도 돈에 너무 의지하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가정 경제뿐 아니라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돈을 하느님처럼 여길 위험이 있다. 자본주의를 겪어보지 못한 예수였지만 돈의 매력과 위험을 이미 동시에 깨달았다. 예수는 가난한 사람들의 잘못과 약점을 모르지 않았고 부자들의 선행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는 가난한 사람들은 행복하다고 말했지만 부자는 행복하다는 말은 한번도 하지 않았다. 예수는 부자들을 자주 비판하고 경고했지만 가난한 사람들을 한번도 비판하거나 경고하지 않았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살고 있는 그리스도교는 오늘 본문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자본주의 아래 살다 보면 교회가 복음의 중요한 점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의 삶과 가르침을 보면 자본주의보다 사회주의에 가깝다. 자본주의에서 교회가 살기는 아주 편안하다. 부자와 권력자들과 친하면 교회는 살아남을 수 있다. 자본주의는 교회에 돈, 특혜, 편리함을 제공한다. 자본주의는 성직자들에게 가혹한 윤리를 요구하지 않는다. 교회와 성직자는 돈을 하느님처럼 착각할 위험이 있다.


예수가 사회주의를 요구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사회주의 체제에서 교회가 살기는 아주 불편하다. 사회주의는 교회에 돈, 특혜, 편리함을 제공하지 않는다. 사회주의는 종교와 성직자에게 엄격한 윤리를 요구한다. 사회주의 체제에서 교회와 성직자의 세속화는 거의 불가능하다. 교회와 성직자가 가난과 평등을 실천하지 않으면 사람들을 설득하기 어렵다. “그리스도는 하늘나라를 부자들에게 주지 않았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스도는 하늘나라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정말로 주었습니다”라고 쿠바 혁명가 피델 카스트로는 말했다.(카스트로, 종교를 말하다, Fidel and religion, 조세종 옮김, 355)



재산관리인은 주인의 재산에 해를 입혔지만 가난한 채무자의 빚을 줄여주었다. 재산관리인은 주인에겐 나쁜 놈이지만 채무자들에게는 고마운 은인이었다. 본문을 오늘 제3세계의 채무 문제에 비유하고 싶다. 가난한 나라에게 돈을 빌려준 강대국은 원금뿐 아니라 이자를 원금 총액의 몇 배도 더 많이 빼먹고 있다. 그것이 정당한 일인가. 악덕 사채업자들의 악행은 말할 것도 없겠다. 가난한 신자들에게 지나친 헌금을 요구하고 걷어가는 악덕 종교인은 더 말할 필요도 없겠다.


본문의 재산관리인처럼 우리도 교회도 가난한 사람들의 경제적 고통을 줄이는 데 앞장서야 하지 않을까. 그런 교훈을 성서신학적으로 본문에서 직접 이끌어내기는 조금 곤란하다고 해도 말이다. 돈은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정의로움을 드러내는 표지라는 점을 본문은 말하고 있다. 하느님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느냐 하는 점은 돈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서 노골적으로 탄로 나고 만다. 하느님은 시간을 창조하셨고, 인간은 돈을 창조했다. 돈과 시간을 다스리는 존재여, 그대는 인간이다. 돈과 시간을 어떻게 관리하고 쓰느냐에서 인간됨이 드러난다.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도 있다고 믿고 싶은 신자들이 많을지 모른다.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도 있다고 설교하고 싶은 종교인들이 많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복음이 아니다.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는 없다는 말은 평신도보다 오히려 성직자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돈 욕심이 가득한 성직자들을 자주 보았기 때문이다. 미사에서 돈 이야기 자주 하는 사제, 부자와 가까이 지내는 성직자는 흔하다. 가난한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는 사제는 쉽게 의심받는다. 부자와 자주 어울리는 사제가 교회에서 처벌받은 적은 언제 있기나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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