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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님, 우리 딸은 왜 죽어야 했나요? ① - 높으신 분들 차번호 외워 인사하는 엄마아빠
  • 특별보도팀 저스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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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7-07-17 11:22:21
  • 수정 2017-07-31 15:5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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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8일, 충주성심맹아원에서는 열두 살 소녀 의문사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날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5년째 길에서 호소하고 있는 엄마아빠에 관한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 편집자주


“전 차라리 우리 주희가 길거리에서 죽었다면 이렇게 억울하지 않겠어요”


▲ 김주희 양 (사진제공=김종필)


엄마아빠는 답답했다. 그저 주희가 죽던 날 그곳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싶을 뿐인데 진실을 찾는 이들 앞에 놓인 보이지 않는 벽은 참으로 거대했다. 


2012년 11월 8일 이른 새벽, 충주성심맹아원에서 주희가 사망했다. 맹아원 측은 처음엔 ‘자다가 편히 죽었다’고 하더니, 어느새 ‘의자 팔걸이와 등받이 사이에 목이 끼어 사망했다’고 말을 바꿨다. 


부모가 도착하기 전 시신은 수습되고 현장은 모두 정리돼 있었다. 12시간이 지나도록 경찰에 신고조차 하지 않았고, 뒤늦게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내 자식 좀 보겠다는 아버지를 끌어냈다. ‘왜 부모가 자식을 볼 수 없단 말인가!’ 설움이 북받쳤다. 경찰들 몰래 장례식장 직원에게 아이 좀 보게 해달라고 사정을 한 후에야 간신히 아이를 볼 수 있었다. 주희 몸 곳곳에 살점이 떨어져 나간 상처, 목 부위에 눌린 자국 등이 있었다. 눈앞이 캄캄했다. 


현장검증도 엉망이었다. 부모에게 알리지 않고 시작된 현장 검증은 폴리스라인조차 설치되지 않았고, 주희가 사망했다는 방은 깨끗하게 정리돼 있었다. 아버지는 재부검을 요구했다. 


▲ 당시 김주희 양이 사망한 충주성심맹아원의 `진실방`


4개월 만에 검사가 이례적으로 직접 현장에 나왔고, 영안실에 있던 주희 시신을 직접 맨손으로 살피며 ‘철저하게 수사하겠다. 저를 믿고 이제 아이를 보내주라’고 말했다. 주희 엄마아빠는 검사의 말에 ‘이제 됐구나’ 희망을 걸었고 마침내 아이를 화장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3일 후 담당 검사는 교체됐고 연락은 닿지 않았다. 


검찰은 피의자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내렸고 재정신청 끝에 2년여 만에 재판을 할 수 있었다. 1심에서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지만 피고인 측은 항소했다. 2심에서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 뒤에는 서울에 있는 대형 로펌 변호인단과 성스러운 줄로만 알았던 집단의 또 다른 그림자가 자리 잡고 있었다.


경찰서는 죄지은 사람들만 가는 곳인 줄 알았다는 주희 양 아버지 김종필 씨와 어머니 김정숙 씨. 억울하게 눈 감은 주희를 위해 5년 넘게 길에서 싸우고 있는 그들을 만났다. 


▲ 주희 아빠 김종필 씨와 엄마 김정숙 씨 ⓒ 곽찬


오전 7시 30분경, 아이들은 학교 갈 준비로 분주했다. 다른 사람들이 직장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서는 그 시간 주희 엄마 아빠는 진실규명을 위해 집을 나선다. 길거리 호소는 이제 일상이 되었다. 


그들의 하루는 주희의 쌍둥이 언니 우희를 통학버스에 태우는 것으로 시작된다. 맹아원에서 함께 생활했던 우희는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반쪽을 잃고는 말문을 닫았다. 밖에 나가기 무섭다며 외출도 거부했다. 1년간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차츰 좋아지기 시작했다. 


▲ 아빠 김종필 씨와 어린 주희 양 (사진제공=김종필)


우희 손은 내 손 안에 다 들어올 만큼 작았다. 그 고사리 같은 손으로 우희는 피곤함에 지쳐 집에 들어오는 부모님 다리를 주물러주기도 한다. “걱정하지 마세요” “엄마, 아빠 오늘도 파이팅!” 예쁜 소리도 할 만큼 성장했다. 


큰길가에 통학버스가 우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희는 2015년부터 시각장애·지적장애 특수학교에 다니고 있다. 엄마아빠는 우희를 통학버스에 태워 보내고 곧장 차를 타고 대법원을 향해 40분을 달렸다. 기름값, 통행료로 한 달에 약 70만 원을 쓰고 있다. 


대법원 시위에 앞서, 서초경찰서 앞에 차를 세우고 장갑을 착착 끼고는 트렁크에서 둘둘 말린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책임자 처벌 촉구와 대법원의 파기환송을 바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었다. 아동학대방지시민모임(이하 아시모)에서 현수막을 맞춰주고 설치신고까지 해준 덕분에 대검찰청과 서초경찰서 인근에 현수막 3개를 달 수 있다. 


▲ 엄마아빠는 한 사람이라도 더 보길 바라면서, 아침마다 충주성심맹아원 사건을 알리는 현수막을 단다. ⓒ 문미정


처음에는 시민단체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했지만, 멀리서 버스를 타고 나와 현수막을 다는 모습이 미안하고 안타까워 엄마아빠는 더 일찍 나와 현수막을 직접 달고 있다. 현수막을 펼치는 부부의 손발은 물 흐르듯 막힘없이 착착 잘 맞아 떨어졌다. 


현수막을 모두 달고 곧장 대법원으로 이동했다. 1인 시위 물품을 챙겨 차에서 먼저 내린 엄마가 1인 시위 첫 번째 주자로 나섰다. 주차를 마친 아빠가 돌아오자 1인 시위 바통은 아빠에게 넘어갔다. 


▲ ⓒ 문미정


시위 바통은 아빠에게 넘어갔지만, 엄마는 쉬지 않고 마치 한 몸처럼 아빠 곁을 지켰다. 많은 차량들이 끝없이 오갔다. 오전이었음에도 햇볕이 무척 뜨거웠지만, ‘자유’ ‘평등’ ‘정의’가 새겨진 대법원 앞에서 그들은 가만히 미동도 않고 서 있었다.   


궁금했다. 그들이 어딜 그렇게 하염없이 바라보는지. 엄마가 아빠 등 뒤를 살짝 두드리자 곧이어 검은색 차량 한 대가 대법원 정문으로 들어섰다. 아빠는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안녕하세요’라는 단순한 인사는 아닐 터였다. ‘제 아이가 억울하게 죽었어요, 그날의 진실을 알 수 있도록 해 주세요’ 그야말로 수많은 의미가 담긴 인사였다.


▲ 대법원 정문으로 검은색 차량이 들어오자 고개 숙여 인사하는 아빠. ⓒ 문미정


마지막으로 걸어 둔 현수막을 걷어 들이는 것으로 대법원 시위 일정을 마치고 청와대로 이동했다. 최근엔 고정적으로 대법원과 청와대 사랑채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지만, 그 전에는 전국을 돌며 시민들의 성명을 받으러 다녔다.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날도 수두룩했다. 


“이제 법원과 청와대 앞에 서는 것이 두 분의 또 다른 일상이 된 것 같네요”


그렇죠. 통한의 세월이 녹은 자리죠. 주희의 영혼과 저희의 한이 맺힌 곳입니다.


주희의 억울한 죽음은 단지 한 사람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다. 단란했던 한 가정이 산산조각 났다. 아빠는 너무 억울해 청와대에서 홀로 10시간 동안 1인 시위를 하다 쓰러지는 일도 있었다. 


정권이 바뀌기 전 청와대에 서슬 퍼런 기운이 감돌 때, 차를 타고 외부로 나가는 박 전 대통령이 주희의 억울한 죽음을 봐주십사 앞으로 조금 더 나갔다가 출동한 수십 명의 경찰들에 의해 제압당하고 끌려나간 일도 있었다. 3일을 꼬박 앓았다. 


아빠가 흐트러지면 가족들이 더 슬퍼하고 불안해할 것을 알고 있다. 심근경색으로 건강이 위태로운 와중에도 아빠는 대법원과 청와대 앞을 굳건히 지켰다. 엄마는 그런 아빠가 고마운 한편 걱정이 가득해 늘 곁을 지킨다.


▲ 엄마는 1인 시위를 하는 아빠 곁을 지켰다. ⓒ 문미정


땡볕에서, 영하 20도에서, 폭우 속에서 1인 시위를 하는 건 힘들지 않았다. 아빠 엄마를 힘들게 하는 것은 자꾸만 감춰지는 진실 그리고 뿔뿔이 흩어지고 남은 가족들이 제2, 제3의 피해자가 된다는 것이다. 금전적인 문제도 무시할 수 없었다. 전국으로 서명을 받으러 돌아다니며 차 안에서 쪽잠을 자고 배를 곪기도 했다. 


집에 남은 아이들은 전기가 끊겨 냉골에서 잠들어야 했다. 우산을 챙기지 못했던 막내는 비를 쫄딱 맞고 집에 돌아오기도 했다. 힘든 싸움에 가족들은 점점 지쳐갔다.  


모진 세월이 되고 한이 맺히니까, 시간이 갈수록 지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강해지더라고요.


엄마아빠를 버티게 하는 것은 힘내라는 아이들의 응원과 곳곳에서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선량한 시민들 덕분이었다. 


인천에서 충주까지 달려와 법원 앞에서 1인 시위를 한 시민, 대학가에서 서명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준 시민, 생활에 필요한 물품들을 보내주는 시민, 광화문1번가 국민마이크에서 충주성심맹아원 사건을 알린 시민, 지금도 전국 곳곳에서 성명서를 보내주는 시민들. 고마운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다.  


그래도, 세상에 나쁜 사람보다는 좋은 사람이 더 많은 것 같아요.


▲ 대법원 앞에서 진실규명을 위해 1인 시위를 하는 아빠. 그리고 그 곁을 지키는 엄마. ⓒ 문미정


주희 엄마아빠는 참 선하신 분들이었다.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말은 분명 이분들을 두고 하는 말 같았다. 


‘진실규명’과 ‘진정한 사과’. 너무 거창한 걸 바랐던 것일까. 칼바람에 못 이겨 피켓과 함께 바닥에 나뒹굴면서도, 그날의 진실을 위해 5년 8개월을 하루도 빠짐없이 길거리로 나선 주희 엄마아빠. 대체 2012년 11월 8일 이른 새벽, 충주성심맹아원에 ‘진실방’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주희 죽음을 둘러싼 의혹에 관한 이야기는 2편에서 이어집니다. 



5년째 길에서 호소하고 있는 주희 엄마아빠는 하나 있던 집을 팔아 전세로 옮겼고 얼마 후 전세금을 빼 월세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오천여 만원의 빚이 남아있습니다.


모바일 일시결제를 통한 이번 기사 후원금전액 주희 부모님께 전해집니다.  


< 가톨릭프레스 >는 힘없고, 돈없고, 빽없고 그래서 목소리조차 낼 수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해 오늘도 겁 없이 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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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총 1 개)
  • 아이구2017-07-17 18:35:19

    그 어린것을... 가엾은 아이를... 정말 눈물이나네요..
    꼭 밝혀주십시오!! 정의로운 사회가 되려면 약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합니다.
    변호사가 23명이 붙었다는것만봐도 감추고싶은 비리가 많은 곳같다.
    가톨릭프레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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