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휴천재일기] 어느 ‘농아사제’의 23년만의 서품
  • 전순란
  • 등록 2017-07-17 10:13:17

기사수정


2017년 7월 16일 일요일, 흐림


사람이 살지 않아도 먼지는 내려앉는다. 집안 대청소. 우리 집 4대 집사 박 총각이 집을 비운지 벌써 20여 일. 장마로 웃자란 마당의 풀을 뽑으면서 내가 모기떼의 엄청난 공격을 당하는데 집사는 강원도 어느 시골을 찾아가 마을 사람들에게 연극을 가르치고 주민과 함께 연극을 만들어 상연함으로써 각박한 삶의 질곡으로부터 진정한 공동체, 삶의 참 모습을 끌어내도록 돕는 ‘문화 운동’을 하고 있단다. ‘몽우(夢友)’ 그러니까 ‘꿈꾸는 사나이’를 자부하는 30대 초반의 총각이다. 본인이 놀거나 남에게 놀이를 시키면서 먹고 살 수만 있다면 최고의 직업 아닐까, 아무리 빈한한 밥상이라도?


서울집 마당 풀 뽑기 



오늘 만난 친구들의 대학 동창들 얘기에서도 그렇다. 대학교수를 하는 동창이 아들을 하버드에 보내고서 학비를 대느라 정신이 없단다. 아들이 하버드대학 다닌다고 부모가 행복하지도 않고 다니는 아들도 행복하지 않아 보인단다. 어느 여자 동창은 딸이 국내 유수 기업을 다니는데 날마다 ‘너무 불행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언제 그만둘까?’를 헤아리고 있다니! 그 동창 앞에서 먼저 자리를 뜨며 내 친구가 한 마디 했단다. “우리 아들은 무지 행복하게 산다!” 그 말에 다들 호기심 반 부러움 반의 눈으로 “도대체 무슨 직업이야?”고 묻기에 “만화를 그려. 열심히 그려도 한 달에 200만원도 못 벌어. 동종업계의 누구도 그 이상은 못 벌지. 그래도 좋아하고 재미있어하고 행복해해!”


그 말을 하고 그 지겨운 자리를 빠져나오니 자기도 기분 좋았고, 그 말을 전해들은 아들도 기뻐했단다. 남부러운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자기 일에 만족하고 행복할까? 하느님은 사람들이 행복하라고 만드셨는데… 인간 욕심이 커지다보니 갈수록 인간을 더 불행하게 만든다. 더구나 엄마들이 자기 욕심을 ‘사랑의 이름으로’ 포장하여 아이들을 얼마나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지… ‘하루 세 끼만 먹을 수 있으면 하고 싶은 일을 하라! 행복한 일을 하라! 단 남을 행복하게 만들면서 자기가 행복해지는 길을 찾아라!’가 우리 집 가훈이라니까 친구는 ‘행복하기만 하다면 하루 두 끼를 먹어도 좋다!’고 한 술을 더 뜬다.



문섐과 김원장님이 보스코의 생일을 축하하고(길게도 간다, 10일에 미루가 차려준 전야제로부터 딱 7일이니 그야말로 보스코의 ‘탄신주간’을 지내는 중이다), 우리 여행의 무사귀환을 위해 점심을 냈다. 문섐은 공공의료에 관해 대중들이 알아들을 책을 집필 중인데 오랫동안 의사로 살다보니 일반인이 쓰는 언어를 찾는데 어려움이 많단다. 어려서 부모님이 쓰는 언어의 수준으로 언어능력이 잡히고, 그 다음 친구와의 대화와 독서로 글 쓰는 재주를 익혀 가는데 전문지식이 의외로 언어구사를 한정시키더란다. 우리는 서울대병원 안에 있는 문섐의 연구실로 자리를 옮겨 4시간 넘게, 마음에 담았던 이야기를 나눴고, 그만큼 서로에게 더 가깝게 다가갔다.



오늘 우이성당 9시 주일 미사에는 예의 그 아이들 소란과 재롱 속에서 서울교구 농아선교회 박민서 신부님이 농아들의 성전건립기금을 마련하는 강론을 하러 오셨다. 신부님은 제단에서 수화로 아래서는 한분이 통역을 해줬다. 신부님은 두 살에 청력을 잃었단다. 보지 못한다는 것은 사물과의 단절이지만 듣지 못한다는 것은 깊은 심해 같은 정적 속에 홀로 갇히는 일이요 모든 인간관계의 단절을 의미한단다. 소통의 단절, 사회활동으로부터의 배재, 환경의 빈곤화, 취업거부의 악순환 속에 스스로에게서까지 배재되더란다.


그런 부모님과 이웃들과 살면서 하느님의 부르심을 느꼈단다. 가톨릭대학교에 가려다 거절당하고, 10년간 노력한 끝에 어느 신부님 도움으로 미국에 갔다. 영어 수화와 영어 공부로 10년을 보내며 철학과 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다시 3년간 가톨릭대학에서 신학을 더 공부하여 2007년에 사제서품을 받았다. 사제직에 뜻을 품은 지 23년 만에 첫 ‘농아사제’가 되어 농아들을 돕고 있다.


우리 귀가 잘 들리는 것은 그들이 우리를 대신 하여 아파하니 그들을 도우라는 하느님의 초대다. 세상을 돌아보면 나를 대신해서 고통 중에 있는 수많은 그리스도들을 만난다. 그들 앞에서 우리가 내리는 소소한 아량과 결단들에 우리 사회의 장래가 달려 있고, 무엇보다도 각자의 영원한 구원이 좌우됨을 깨닫는 것만도 대단한 은총이다.


“보지 못한다는 건 사물과의 단절, 듣지 못한다는 건 모든 인간관계의 단절을 의미한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TAG
키워드관련기사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가스펠툰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