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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큰 탓이옵니다’하는 가톨릭은 어디로… - 수녀님, 우리 딸은 왜 죽어야 했나요? ④
  • 특별보도팀 저스티스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17-07-28 12:56:11
  • 수정 2017-07-28 14: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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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8일, 충주성심맹아원에서는 열두 살 소녀 의문사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날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5년째 길에서 호소하고 있는 엄마아빠에 관한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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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 뿌려준 곳에 있는 돌이라도 하나 집어오고 싶어요. 그곳은 주희 일부분이나 마찬가지잖아요. 내 침대 맡에 두고 ‘죽을 때까지 같이 산다’는 마음으로 살고 싶어요. 


눈이 안 보여 갇혀 산거나 마찬가진데 마음껏 세상 구경 다니도록 흐르는 물에 뿌려주면 어떻겠냐는 한 어르신의 제안에, 엄마아빠는 주희를 강에 뿌렸다. 이제 주희를 한번 보러가라는 지인들의 조심스러운 권유에도, 진실을 못 밝히고 찾아가는 것이 너무 미안해서 갈 수 없었다.


진실을 밝히고 주희를 다시 보는 날만을 기다리며 엄마아빠가 5년여 동안 만든 피켓들도 수차례 보완되고 점점 진화했다. 최종적으로 피켓에 어떤 문구를 넣고 싶은지 묻자, 엄마는 내심 당황스러워 하면서도 한참 생각에 잠겼다. 


저는 지금 생각한 건데…, 진실은 속일 수가 없잖아요.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그런 문구를 새기고 충주성심맹아원 앞에서 (1인 시위를) 해보고 싶어요. 


▲ 주희 양 엄마 김정숙 씨 ⓒ 곽찬


진실이 반드시 이길 것이라는 마음으로 한결 같이 길 위에 선 엄마아빠 곁에는, 미약한 힘이라도 보태고자 손 내미는 시민들이 있었다. 이들이 있었기에 힘든 가운데 위로받고 오로지 진실만을 위해 오늘까지 올 수 있었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손 내밀 수 있는 사람이 되자


자신을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을 바라는 평범한 엄마’라고 소개한 황민아 씨는, 2014년 가을이 지날 무렵 3개월 동안 부천에서 충주를 오가며 청주지법 충주지원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1심 첫 공판에서 주희 엄마아빠를 만나고 가는 길에 ‘이건 아니지 않나… 내가 미약한 사람이지만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1인 시위를 시작했다.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하는 황민아 씨에게 간혹 사정이 생겨 시위를 하지 못할 때는 제자가 선생님 대신 나서 시위를 이어갔다. 황 씨는 제자들에게 ‘살아가면서 외면은 하지 말자. 관심 갖고 있다가 나중에 어른이 되면 손 내밀 수 있는 사람이 되자’고 말해주는 선생님이다. 


▲ 황민아 씨는 주희 양 엄마아빠를 보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 문미정


2심에서 ‘무죄’라는 상식 밖의 판결이 나는 순간, 권력 앞에 무력함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무력함에서 멈춰있을 수 없었다. ‘여기에서 묻히면 안 된다’는 생각에 상고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모든 일이 가능했던 건 부모님의 힘이에요.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오신 주희 부모님 모습을 보고 힘을 낼 수 있었어요. 


황민아 씨는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구 아동학대방지시민모임) 회원들과 함께 서명운동을 하기도 했다. 시민들에게 사건을 설명해주면 모두 ‘말도 안 된다’며 입을 모았다. 상식적인 판단이 이럴진대, 여러 사건을 접하는 곳에서 그런 판결을 했다는 것이 납득할 수 없었다. 

 

황민아 씨는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 변화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인식 변화를 위해 정부가 나서야 하고, 제대로 된 감시기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황민아 씨는 부모님이 힘내주셔서 감사할 뿐이라면서, “그 끝에 결실이 있기를 바란다”고 간절한 마음을 전했다. 덧붙여 시민들의 관심도 호소했다. “직시하는 것은 분명 힘든 일이지만, 모든 일은 바로 보는 데서 시작된다”고 분명한 어조로 호소했다. 


외면하지 않고 지금 내 자리에서 관심 가지는 것만으로도 세상이 바뀔 수 있어요.


가해자 없는 피해자, 그러나 진실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위 중인 박준기 씨(좌)와 박준호 씨(우) (사진제공=박준호)


부천에서 충주를 오가며 1인 시위를 한 황민아 씨가 있다면, 광화문 1번가 국민마이크에서 충주성심맹아원 사건을 알린 박준호 씨도 있다. 그의 동생 박준기 씨는 ‘박준기 중사 자살조작미수사건’의 피해자로, 형제는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24년 동안 국방부를 상대로 싸우고 있다. 


같은 피해자 입장에서 박준호 씨는 충주성심맹아원 사건이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주희가 자식처럼 느껴져 국민마이크를 잡았다. 


박준호 씨는 현재 사법권 피해자들이 사실상 100만 명이 넘는다면서 가해자 없는 피해자만 있다고 말했다. 


왜 피해자들이 증거를 찾아야 하고 쫓아다니면서 부탁을 하고, 피켓 시위를 해야 하는지… 가해자들은 안 그렇잖아요. 가만히 있어도 법이 알아서 면책 해주잖아요. 이걸 묵인하고 감싸는 것이 지금의 사법권이에요.


허술한 초동수사도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사법권은 초동수사에서 모든 것이 이뤄지는데 정작 그 과정에서 왜곡되고 조작되는 일이 생긴다고 말했다. 증거 하나 놓치지 않도록 철저하게 초동수사가 이뤄지고 사법권이 바로 섰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남겼다. 


박준호 씨는 공소시효 때문에 피해자들이 두 번 운다면서 공소시효가 없어져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진실에는 공소시효가 없다”고 힘 있게 말했다. 


지금까지도 긴 싸움을 하고 있는 박준호 씨는 잘못된 것을 알고 바로 잡아야 하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우리는 싸워서 이겼다’고, 군에서 억울한 일을 겪은 사람들을 비롯해 피해자들에게 희망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박준호 씨는 정당한 법 테두리 안에서 충주성심맹아원 사건이 해결되기를 바란다며 주희 엄마아빠에게 “희망을 잃지 말고 조금만 더 버텨달라”는 말을 전했다. 


‘저의 큰 탓이옵니다’하는 가톨릭의 모습 보이지 않는다 


▲ 전국 곳곳에서 아동학대 방지를 위해 서명운동을 펼친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와 김종필 씨 (사진제공=김종필)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회원들은 충주성심맹아원 사건을 알리고 진실규명을 위해 시위를 하고 서명운동 등을 벌였다. 상고를 안 하겠다는 검사실에 진정서를 200통도 넘게 넣었다. 현수막을 제작해서 엄마아빠가 대검찰청과 서초경찰서 인근에 달 수 있도록 대신 설치신고를 해줬다. 


‘제 탓이오, 제 탓이오, 저의 큰 탓이옵니다’하는 게 가톨릭 아닌가요? 그런데 그런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아요.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는 잘못한 게 있으면 인정하고 사과하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하는데 그런 모습을 지금까지도 보지 못했다고 했다. 오히려 재단에 누가 될까봐 유명 변호사를 선임한다면서, 사람들이 이런 일에 변호사 선임비용 대라고 후원금을 내는 게 아니라고 꼬집었다. 


이 시점에서 사각지대에 있는 장애인복지시설을 철저하게 감독할 수 있는 시민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동학대와 관련한 사건에 발 벗고 나서는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는 보다 많은 시민들의 관심이 필요하다며 “마음으로, 진정서로 동참해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부모님과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약속했다. 


▲ 지금도 전국 각지에서 시민들이 진실규명에 동참하고 있다. (사진제공=김종필)


땡볕에서,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 1인 시위를 하는 일이, 엄마아빠는 힘들지 않다고 말한다. 정말로 엄마아빠를 정말 힘들게 하는 건 주희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들고, 진실이 감춰지는 것이다. 


거대한 권력이란 벽 앞에서 엄마아빠는 한없이 작아진다. ‘부모가 능력이 없어서…’라고 한탄한다. 그러나 이내 마음을 다잡고 주희를 위해, 또 다른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해 길 위에서 꿋꿋하게 사람들을 만난다. 


음료수 한 통, 진정서 한 통… 마음으로 보탠 작은 힘들이 모여 결국 진실을 밝혀낼 것이라고 응원하는 사람들 곁에서 오늘도 엄마아빠는 어깨에 피켓을 걸쳐 멨다. 머지않아 이 피켓에,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라고 쓸 수 있을 거라며 엄마아빠는 흔들림 없이 거리에 섰다.  


▲ ⓒ 곽찬


▲ 오늘도 엄마아빠는 한결같은 모습으로 진실규명을 위해 길거리 위에 선다. ⓒ 곽찬



▶ 후속 보도는 계속 이어집니다. 


5년째 길에서 호소하고 있는 주희 엄마아빠는 하나 있던 집을 팔아 전세로 옮겼고 얼마 후 전세금을 빼 월세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오천여 만원의 빚이 남아있습니다.


모바일 일시결제를 통한 이번 기사 후원금 전액 주희 부모님께 전해집니다.  


< 가톨릭프레스 >는 힘없고, 돈없고, 빽없고 그래서 목소리조차 낼 수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해 오늘도 겁 없이 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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