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정해진 규칙이 있다. 어떤 이들은 글자 그대로 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규정을 내세운 폭력도 있다. 규칙에 얽매여 본질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목적을 잃는다.
세월호에서 희생된 단원고 김초원, 이지혜 선생님은 기간제 교사라는 이유로 3년 넘게 순직을 인정받지 못했다. 지난 스승의 날 문재인 대통령은 교사들의 순직 인정 절차를 진행하라고 지시했다. 정의를 회복하고 상식이 통하는 나라가 됐다는 여론의 목소리가 들렸다.
십계명에 얽매인 생각은 안중근 의사를 100년이나 기다리게 했다. 2010년 3월 26일,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지 100년 만에야 첫 추모미사가 열렸다. 안 의사는 부활절에 맞춰 자신의 사형 집행일을 요청하고 형장으로 향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기도를 올렸던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지만, 한국천주교회는 한 세기 동안이나 십계명으로 금하고 있는 ‘살인’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그를 품지 못했다. 안 의사의 총은 끝없는 침략정복의 야욕을 보인 이토 히로부미를 멈추게 했지만, 의거가 ‘평화’를 위한 선택이라는 본질은 종교적 교리의 그림자 뒤에 서야 했다.
천주교회와 주교는 조선의 독립운동에 협조적이지 않았지만 신앙인으로서 안중근 의사는 본질에 대한 믿음을 굳건히 했다. 당시 조선 교구장이었던 프랑스인 뮈텔 주교는 안 의사의 대학 설립 제안을 거절한다. 이후 안 의사는 외국인을 믿지 않았지만 종교적 믿음만은 이어갔다. 교구의 비협조적인 태도도 그의 믿음을 꺾지 못했다. 그는 의거 후 십자성호를 그었고, 마지막으로 남긴 ‘유묵’에는 하느님을 공경하라는 뜻인 ‘경천(敬天)’을 남겼다. 그의 의로운 삶에 종교적 진리의 향기가 깃들어있었다.
안 의사에게 고해성사와 미사를 집전해 준 빌렘 신부도 종교의 참 뜻을 실천하려 했던 인물이다. 교구가 안 의사의 성사 요청을 거절했지만 빌렘 신부는 안 의사 생전 마지막 성사를 책임진다. 이 일을 문제 삼은 뮈텔 교구장은 빌렘 신부에게 60일 간 성무(聖務)를 금지시킨다. 빌렘 신부는 불의라고 생각한 처분 앞에서 순명하지 않고 단호하게 반박했다. 교회를 움직이는 사람의 뜻이 아니라, 진정으로 교회를 이끄는 본질적인 진리와 가치에 주목했던 것이다.
일제 강점기의 천주교회는 제국주의에 협조했고, 광복 후에도 안 의사에 대한 평가는 박했다. 한국천주교회가 안 의사를 자랑스러운 신자라고 공표한 것은 불과 최근 7년의 일이다.
본질에 귀를 기울이는 태도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용기를 필요로 한다. 세월호 선생님들은 3년을 기다렸고, 안 의사는 강산이 열 번 변하는 시간을 인내해야 했다. 기다림에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정의를 지향하는 참 뜻은 결국 ‘움직임’을 이끌어냈다. 그렇게 세상이 본질과 닮게 역동하는 힘은 한 사람 한 사람의 뜻에서 시작했음을 기억하고, 앞으로의 역사에서도 우리가 승리를 만들어가기를 소망한다.
안중근 평화기자단 - 이정원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