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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빈 돌 항아리 같은 종교
  • 신성국
  • 등록 2018-02-15 18:23:50
  • 수정 2018-02-15 18:3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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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마리아’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여성들의 지도적인 역할을 강조하는 복음이 요한복음이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사마리아 여인, 마리아와 마르타 자매, 막달라 여자 마리아, 십자가상 아래의 여인들은 요한복음의 주역으로 등장하고 있다.


성서 전통에서부터 오늘날까지 공동체의 생존이 걸린 순간에는 여자들의 지혜가 돋보이고, 하느님의 동반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구약성서에서 이집트 파라오의 히브리인들 학살정책에 맞서 지혜를 발휘해 싸운 인물들은 산모출신인 시프라와 푸아였다. 이 여인들의 지혜와 용기로 히브리 아기들이 살아남고, 모세라는 인물을 배출할 수 있었다. 


가나 혼인 잔치에서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도 요한 신학 안에서 여성들의 위치가 독특하기 때문이다.


‘표징의 책’, 요한복음 


요한복음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앞부분은 ‘표징의 책’(The Book of Signs)이고, 후반부는 ‘현양의 책’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표징의 책은 요한복음 1,19 ~ 12,50 이고 현양의 책은 요한복음 13장~20장이다.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예수의 시간이 아직 오지 않았다’고 표현한다. “여인이여, 아직 제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후반부 현양의 책 부분에서는 “그 시간이 왔습니다.”고 한다. 


표징은 무엇인가? 표징은 예수의 메시지를 보완하는 것이다. 즉 예수의 말씀이 지닌 힘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표징의 목적은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고, 아버지로부터 오신 예수를 믿게 하는 데 있다. 믿음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표징들이다. 


성서학자들은 요한복음 안에서 7가지 유형의 표징이 있다고 하는데 질적 표징, 공간 표징, 생명의 표징, 시간의 표징, 양의 표징, 자연 표징, 운명의 표징을 들 수 있다. 7개의 표징은 모두가 인간 한계 상황의 극복을 상징하고 있다. 표징은 기적이라는 사건에 그 중요성이 있는 것이 아니다. 즉 예수를 마술사나 초능력자로 부각시키기 위함이 아니라는 말이다. 


logos이신 예수를 계시하는데 초점이 있다. 궁극적으로는 하느님의 영광이 예수를 통해 드러나고 있음을 말한다. 사람들이 logos의 표징을 받아들임으로써 생명과 진리가 충만한 삶을 걸을 수 있다.  


시간 표징은 무엇인가? “여인이여, 아직 제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예수의 때는 ‘죽음과 부활 사건’을 통해 온다. 질적 표징이 하느님 사랑의 상징이라고 한다면, 시간의 표징은 하느님 사랑의 실천적 완성으로 보아야 한다. 그 실천적 완성이 바로 십자가상의 죽음이다. 


오늘의 한국 종교를 향해 던지는 표징, 가나의 혼인잔치



가나 혼인 잔치를 정리해보자.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이 사람들에게 요구한 것은 율법의 절대적 실천이었다. 그러나 이 율법 규정을 제대로 지킬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대다수 사람들은 율법을 지킬 수 없는 형편이었다. 가난 때문에, 질병 때문에, 장애 때문에, 여성이라는 이유로, 직업 때문에 율법의 벽을 넘지 못했다. 


율법은 사람들을 죄책감에 시달리게 했고, 죄인이라는 운명의 굴레로 사람들을 착취했다. 사람들 삶은 사회현실 안에서 비참했지만 동시에 종교적으로 율법에 의해 버림받는 처지에 놓였다. 유대교는 사람들에게 하느님마저 너희를 버렸다는 자괴감, 모멸감, 패배감을 심어주었고, 그들을 낙오자로 취급했다. 사람들은 종교를 통해서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체험할 수 없었다. 종교가 사람들을 하느님과 갈라지게 하고, 더욱 멀어지게 만든 장애물이었다.


가나 혼인잔치의 돌 항아리가 상징하는 의미가 많다. 딱딱하고 경직된 종교 제도를 상징한다. 슬프고 어두운 인생을 담고 있는 종교적 삶을 상징한다. 포도주가 없이 텅 비어있는 돌 항아리는 너그러움과 생명이 비어있는 종교다.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종교가 아니라 자신들이 만든 율법과 조직, 제도를 위해 존재하는 종교를 상징한다. 


빈 깡통이 요란하다고 했던가? 속빈 강정이라고 했던가? 겉은 화려하고 웅장하지만 속에는 죽은 시체와 구더기가 가득한 회칠한 무덤이라고 했던가? 가나의 혼인잔치는 오늘의 한국 종교를 향해 던지는 표징이다. 속은 텅 빈 돌 항아리로 살아가는 종교가 아닌지?




[신부열강]은 ‘소리’로 듣는 팟캐스트 방송으로도 업로드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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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진정보]
신성국 : 천주교 청주교구 소속으로 마리스타 교육수사회 파견사제다. 현재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사무총장을 맡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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